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정치

속보

더보기

박 대통령 "세월호 당일 대통령으로서 할 일 다했다"

기사입력 : 2017년01월01일 16:59

최종수정 : 2017년01월01일 18:34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청와대 출입기자단 신년인사회…'최순실 사태' 관련의혹 전면 부인
탄핵안 가결 후 첫 공개일정…"삼성 합병 국가의 올바른 정책판단"

[뉴스핌=이영태 기자]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정지 상태인 박근혜 대통령은 1일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으로서 제 할 것은 다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삼성그룹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지원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국가의 올바른 정책판단이었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29일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3차 대국민담화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기자들과 신년인사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 "혼란을 주면서 오해가 오해를 만들고 오보를 바탕으로 오보가 재생산되고 있어 마음이 무겁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9일 국회 탄핵 이후 청와대 참모진과 탄핵심판 대리인단 외에 외부인을 만난 것은 23일 만이다. 박 대통령은 직무정지 이후 대외 활동을 중단한 채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직접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해왔으나 이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제기된 각종 의혹들을 전면 부인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 중 하나가 세월호 참사 당일"이라며 "처음에는 참사가 벌어졌을 때 대통령이 밀회를 했다, 말도 안되고 입에도 담기 민망한 얘기를 했다. 대통령이 어떻게 밀회를 하겠나. 그 시간 지나니 굿을 했다는 얘기가 기정사실화됐다. 너무 어이 없었고. 그러다가 이번에는 성형수술 의혹도 (나왔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저는 그날 정상적으로 사건이 터졌다는 것을 보고 받으며 계속 체크하고 있었다. 마침 그날 일정이 없어서 관저에 있었던 것"이라며 "가족도 없는데 손님도 받을 수 있어서 일정이 없으면 관저에서 일을 챙긴다. 제가 그런 날은 관저에서 일을 계속 챙긴다. 그날은 마침 일정이 비어서 그렇게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런데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가 있어서 걱정하면서 해경 상황 챙기고 그러다가 수석실 보고도 받고 일 보다가 전원구조됐다고 해서 너무 기뻐서 마음 안심했는데 시간 지나니까 오보였다고 해서 너무 놀랐다"며 "그래서 중대본(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빨리 가서 현장에서 할라고 하니까 경호실에서 적어도 경호에서는 필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마음대로 제가 못움직였다. 거기다가 중대본도 무슨 상황이 생겨서 확 떠나지 못했다"고 당일 상황을 서술했다.

더불어 "물론 현장에서는 해경이 제일 잘 알아서 하겠지.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제 할 것은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어느날 갑자기 밀회를 했다고. 이런 식으로 나니까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헌재도 그에 대해서 상세한 내용 제출해 달라고 해서 대리인단 통해 다 정리하고 추가하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제출하면 헌재에서 재판하게 될 텐데 이번 만큼은 그런 허위가 완전히 걷어졌으면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본관 집무실에서 근무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사실 현장이 중요하다. 앉아서 회의를 해도 보고받고 지시받고 돌아가는 거 보고받아도 현장에서 잘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때는 기초연금 설명 때문에 고용복지수석실에서 연락도 오고, 교육문화수석실에서도 온 것 같다. 계속 연락받고 자료 필요한 거 얘기 진행했다. 처음에는 그런 엄청난 참사라고 생각 못하고 큰 일이라고 생각하고 귀기울이고 보고 받고 하다가 나중에 알고나서 이렇게 됐고. 미용시술 건은 전혀 아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나. 상식적으로도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참사 당일 외부인 출입의혹에 대해선 "그날 기억을 더듬어보니 머리 만져주기 위해서 오고 목에 필요한 약(가글을 지칭한 듯) 들고 오고 그 외에는 아무도 없고 그날은 누가 다른 일을 어떻게 상상할수 있겠냐. 큰일이 터지지고 학생들 구하는데 온 생각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다른 것 생각하는 게 대통령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냐"며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선 "보도 보니까 굉장히 숫자도 많고 하지만 저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다.

◆ "헤지펀드 공격으로 삼성 합병 무산되면 국가적·경제적 큰 손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최순실씨가 관여했고 국민연금이 지원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완전히 엮은 것이다. 누구를 봐줄 생각 이런 것은 손톱만큼도 없었고 제 머릿속에도 없었다"며 "삼성합병은 당시 국민들, 증권사 등 많은 국민들 관심사였다. (엘리엇) 헤지펀드의 공격이 우리나라 대표적 기업이 공격을 받아서 무산된다면 국가적 경제적 큰 손해라는 생각으로 국만들도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었고 20여 개 우리나라 증권사도 한두 군데 빼고 다 해줘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저도 국민연금이 바로 대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고 국민연금도 챙기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결정이든간에 국가의 올바른 정책판단이다. 그러나 여기를 저기를 도와주라고 한 적은 없다. 나를 엮은 것"이라고 답변했다.

대통령이 비선실세 최씨의 의견을 모두 들어줬다는 비판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 춘추관에서 밝혔듯이 몇십년 된 지인이다. 지인이 지인이지 오랜 세월 아는 사람 생길 수 있고, 그렇다고 지인이 모든 걸 다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대통령 책무와 판단이 있는데 어떻게 지인이 모든 걸 다한다고 어떻게 역어서. 전 대통령으로서 철학과 소신 갖고 국정운영해 왔다. 복지나 외교 안보 경제 등등은 참모들과 의논하면서 저 나름대로 더 정교하게 좋은 생각이나 아이디어 얻게 되고. 계속 외교안보 부분 등 발전시켜와 지금은 그런 틀 갖춰왔다고 생각하고 뿌리내리게 마지막까지 좋은 마무리해야지 생각하다가 이런 일 맞게 됐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국정조사 과정에서 제기된 '김영재의원'의 불면증 의혹에 대해선 "대통령부터 모든 사람은 자기의 사적 영역 있다. 어디 아플 수도 있고 그러다가 좋은 약 있다고 하면 할 수도 있고. 그런 걸 일일이 다 내가 무슨 약 먹고 어디 알리고 다 까발려서 하는 것은 민망하기 그지없다. 그런 걸로 국가에 손해 끼친 일은 한번도 없다고 생각한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라며 "어느 나라에서 대통령이 어느 병 앓고 어떻게 치료했는지를 리스트로 만드느냐. 순방 때는 특히 피곤해서 힘들 때 있다. 피곤하니까 다음날 일찍 일해야 해서 피로회복 영양주사 맞을 수도 있는데. 그걸 큰 죄나 지은 것처럼 하면 대통령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어디냐. 주사도 의사가 알아서 처방하는 거지 어떻게 환자가 알겠나"라고 말했다.

광고감독 차은택씨의 추천으로 문화부 장관과 교육문화수석이 임용된 것에 대해선 "대통령으로서 누구와 친하다고 누구 봐줘야 되겠다고 한 적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다. 여러 사람 중 이 사람 제일 잘할 수 있겠다 싶어서 한 것"이라며 "추천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다. 이 자리 있는 분들도 추천 가능하다. 그러나 추천 받았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검증도 하고 세평도 알아보고 제일 잘할 수 있는 분 뽑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최근 생활에 대해 "국민들께도 미안한 생각으로 무거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며 "저를 도와줬던 분들이 뇌물이나 뒤로 받은 것 하나 없이 많은 일을 열심히 한 것인데 뒤로 이상한 것 받은 일 없는 분들인데도 고초를 겪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프다"고 소개했다.

이어 "기업인들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민관이 창의적 아이디어로 문화융성과 창조경제 잘해보자, 창조경제나 문화로 세계로 뻗어나가면 한류도 힘을 받고 국가브랜드도 높아지고 기업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동참한 것인데 압수수색 등 어려움 걲는 것 보고 미안스럽고 마음 편할 날이 없다"고 관련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박 대통령이 이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개최한 데는 본인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9일 제3차 대국민담화에서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 질문을 받아달라고 요청하자 "가까운 시일 안에 여러가지 경위를 소상히 말씀 드리겠다"며 별도의 기자회견을 예고한 바 있다.

이후 직무정지 상태에 들어가면서 예고했던 기자회견 등이 무산되자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와 특별검사팀의 수사상황 등을 지켜보면서 대외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본인에게 제기된 의혹에 대해 줄곧 "억울하다"는 심경을 수차례 표출해왔다. 이날 간담회는 오후 1시23분부터 2시20분까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기자 (medialyt@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광복군, 일본군 무장해제 "항복사실 모르느냐?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전의(戰意)가 없는 것을 보이기 위해 기관단총을 모두 어깨에 걸쳤다. 그러고도 만일을 위해서 각각 산개하면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몸을 날렸다. 아. 그때 그 바람 냄새, 그 공기의 열기, 아른대는 포플러의 아지랑이, 그리고는 아무것도 순간적이었지만 보이지 아니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가? 우리 주변엔 돌격 태세에 착검한 일본군이 포위하고 있었다. 워커 구두 밑의 여의도 모래가 발을 구르게 했다. 코끼리 콧대 같은 고무관을 제독총에 연결한 험상궂은 방독면을 뒤집어쓴 일본군이 차차 비행기를 중심으로 원거리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너무나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것이 그리던 조국 땅을 밟고 처음 맞은 분위기였다. 동지들은 눈빛을 무섭게 빛내면서 사주경계를 했다. 그러나 아직 기관단총을 거머쥐지는 아니했다. 여의도의 공기가 움직이지 않는 고체처럼 조여들어 왔다. 뿐만 아니었다. 타고 온 C46형 수송기로부터 한 50여m 떨어진 곳의 격납고 앞에는 실히 1개 중대나 되는 군인들이 일본도를 뽑아 든 한 장교에게 인솔되어 정렬해 있었다. 그 앞에는 고급장교인 듯한 자들이 한 줄 또 섰고, 장군 몇 명도 있는 듯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8월 18일 한낮의 그 뜨거운 여의도 열기가 우리를 더욱 긴장시켰다. 격납고 뒤에까지 무장한 군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중형전차의 기관포도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환호하는 광복군.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비행장 아스팔트 위엔 한여름의 복사열이 그 위기의 긴장처럼 이글대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는 땀에 젖어 있었다. 기막힌 침묵이 십여 분이나 지났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행동도 취해 오지 않았다. 마침내 우리가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일본군 고급 장교들이 늘어선 쪽으로 한걸음 씩 움직였다. 각자 산개, 조심하라! 누군가가 이렇게 나직하게 말했다. 서해 연안으로 비행기가 고도를 낮출 때 누군가가 유서를 쓰던 일이 이 순간 내 머릿속에서 상기되었다. 일본군 병사들은 우리가 다가서자 의외로 포위망을 풀 듯이 비켜섰다. 우리는 아직 기관단총을 어깨에 멘 그대로였다. 일본군이 길을 열어주자, 그들도 일본군 육군 중장을 선두로 한 장교단이 우리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그가 바로 조선주차군사령관 죠오쯔끼(上月良夫)였다. 쬬오쯔기는 그의 참모장 이하라 소장과 나남 사단장과 참모들을 뒤로 거느렸다. 우리도 좌우로 벌려 섰다. 쬬오쯔기가 「나니시니 이라시따노?(무슨 일로 왔소?)」말문을 열었다. 퍽 야무지게 보였다. 우리는 말 대신 영등포 상공에서 뿌리다 남긴 선전 전단을 내밀어 주었다. 우리의 임무가 일본어와 우리말로 적힌 전단이었다. 거긴 또 우리가 이렇게 들어오게 된 사연도 적혀있었다. 우리는 한 장씩 그 전단을 다른 일본군 장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쬬오쯔끼는 이를 받아 읽고, "일본은 정전만 한 상태이니 일단 돌아갔다가 휴전 조약이 체결된 다음에 재입국하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위협했다. 자기네 병사들이 꽤 흥분되어 있으니, 만약 돌아가지 않으면 그 신변 보호에 안전책임을 지기가 어렵다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에 이범석 장군이 "네 놈들의 천황이 이미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 사실을 모르느냐? 이제부터는 동경의 지시가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맞섰다. 그러나 쉽사리 양보하지 않았다. 옥신각신 말이 몇 번 건너 왔다 갔다. 갑자기 쬬오쯔끼는 한 일본군 대령에게 일을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동경서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어 마중을 나와 있던 참이란 말을 하고는 물러가 버렸다" 이범석 장군은 일본군 측에 "조선 총독을 만나 담판 짓겠다'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일본군 무장해제 임무를 띠고 국내로 들어 온 '광복군 국내정진군'은 아무런 소득도 올리지 못한 채 다음 날 8월 19일 14:30분 여의도 기지를 이륙하여 중국으로 돌아갔다. 광복군은 미군정이 시작되고 나서 한참이나 지난 다음에 개인 자격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29 08:00
사진
중국 전기차 주행거리 두배 증가 배터리 개발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중국이 에너지 밀도를 두 배 증가시킬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해 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칭화(淸華)대학 화학공학과의 연구팀은 '음이온이 풍부한 용매화 구조 설계'를 개발해 냈으며, 이를 기반으로 불소 함유 폴리에테르 전해질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중국 관찰자망이 30일 전했다. 해당 연구 성과는 논문 형식으로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에 등재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폴리에테르 전해질은 고체이며, 연구팀은 해당 전해질을 사용하여 전고체 배터리를 제작했다. 제작된 전고체 배터리는 604Wh/kg의 에너지 밀도를 기록했다. 이는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150~320Wh/kg인 점을 감안하면 에너지 밀도가 두 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동일한 무게의 배터리이지만 해당 전해질을 사용한 전고체 배터리는 두 배 이상의 전력을 충전할 수 있는 셈이다. 이론적으로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 거리가 두 배 증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500km가량을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가 1000km를 주행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전고체 배터리는 안전성 테스트도 통과하였다. 못을 박아도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120도의 높은 온도의 박스 안에 6시간 동안 방치되었지만, 연소나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500회 이상 충방전을 거치면서도 에너지 저장 용량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된다면 많은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해진다. 전기차의 주행 거리는 두 배 증가하며, 드론의 비행 거리도 두 배 증가하게 된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역시 부피당 저장 용량을 크게 끌어올리게 되며 ESS 소형화가 가능해진다. 칭화대 연구진이 개발한 전고체 전해질의 도식도 [사진=네이처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9-30 10:35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사제목
기사가 번역된 내용입니다.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