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보다보면 강렬하게 꽂히는 인물들이 있다. 흔히 눈빛이 살아있는 인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눈동자가 자신감으로 빛나는 사람들이다. 경기민요를 전공한 박정미를 처음 만난 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국립국악원 한 카페에서 조용조용한 목소리 속에 열정을 담아 한마디 한마디를 꺼냈던 그녀.
"엄마가 어느 날 병원에 가셨는데, 의사 선생님이 건강을 위해 노래를 하면 좋을 거란 처방을 하신 거예요. 바로 엄마는 민요 수강을 등록하셨는데 그 때 제 나이가 4살이었거든요. 저는 4살부터 엄마 손 잡고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집에서 민요 공부하면서 온 벽에 민요 가사가 적혀있고 그랬어요. 제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순간엔 늘 경기민요가 있었습니다."
자신만의 악보를 만들어 연습하고 또 연습하시던 어머니 또한 그 후로 경기민요 소리꾼이 되셨고 지금도 왕성한 활등을 하신다는 걸 보니, 집안 내력에 소리가 흐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소리를 배워가던 어머니, 흥이 많은 아버지,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박정미는 민요라는 단어가 나올 때 마다 두 눈을 반짝이는 국악인이다. 자신의 직업이라 부를 때 흔히 사람들은 익숙함을 갖고 무던히 직업을 대하곤 하는데 말이다. 박정미는 국악예술중학교, 국악예술고등학교,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이력을 밟아왔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솔직히 말하면 (겸연쩍게 웃곤) 어느 대회를 가건 상을 타고 1등을 하니까, 가만히 있어도 잘한다고 생각했었어요. 어렸으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근데 예중을 가고 나서부터 너무 놀랐어요. 잘하는 친구들이 세상에 정말 많구나. 놀라운 친구들이 아주 많았거든요. 그러면서 매일 학교 끝나면 연습하고 또 하고, 가만히 있다가는 저는 잘하는 사람이란 소리를 못 듣겠더라고요. 그만큼 동기들이 대단했어요."
1988년생들이 함께 만든 그룹 공상소리그룹 '아양'도 그렇게 대단한 동기들이 모여 만들었다. 같은 멤버 김보성도 중학생 때 처음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온다고 한다. 빛나는 소리꾼들이 만났으니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녀에게 관객들을 만나면 어떤 소리를 가장 하고 싶은지 물었다.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은데요. 다 하고 싶어요. 모든 민요 다 들려드리고 싶어요. 좋은 곡들이 아주 많거든요. 요즘 젊은 친구들이 잘 모를 곡 중엔 '진갑섬 타령'이란 곡이 있는데 이 곡은 특히 '청사초롱'이랑 같이 불러도 좋고, 가사가 알콩달콩 귀여운 것이 많아요. 시대가 흐를수록 이런 곡들이 잊혀지는게 아쉽고 두려워요. 사람들에게 모든 민요를 다 들려줄 수 있는 늘 공부하는 소리꾼이 되고 싶어요."
한참을 그렇게 대중을 위한 곡이 무엇인지, 민요가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대화했다.
"사실 제가 국악을 그만 할까하고 고민할 때가 있었어요. 어떤 국악인이 돼야할지 고민되더라고요. 답을 모르겠고. 그 때 열정을 다시 살려준 건 당시 피리를 전공하던 제 동생이었어요. 동생의 (중앙대학교) 졸업연주회를 보고 느꼈어요. 이 친구가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느꼈어요. '국악, 멋있다. 나 다시 소리 하고 싶다.'"
그 날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는 박정미, 그녀에게선 가족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히도 느껴졌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우리 국악을 사랑하고 또는 이어가고 있으니 이 얼마나 멋진 모습인가. 우리 문화가 잊혀가지 않게 성실히 애쓰는 사람들이다.
"제가 늘 말하지만 저는요 늘, 잘하고 싶어요. '의리 있게'. 무대에서 완벽한 게 좋아요. 틈이 없이 몰아치고 싶어요. 관객을 위해서, 그리고 전공한 이 음악을 위해서도. 저 정말 의리 있는 사람이거든요."
여리여리한 몸에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20대의 이 국악인 마음엔 열정이 살아있다. 결코 꺼지지 않을 불씨, 국악을 향한 태양과도 같은 사랑이 가득 차 있다.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