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강소영 기자] 8일 오후 서울에 사는 중국인 후배한테서 메신저가 날라왔다. 아시아나항공 사고 관련 사망자가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이어서 천만다행'이라는 요지의 한 방송사 아나운서의 발언을 중국 인터넷 매체를 통해 접했다며,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묻는 내용이었다. 짧게 주고받은 몇 마디 대화에서 그녀의 흥분한 기색이 역력히 느껴졌다.
후배는 해당 소식이 중국 주요 포탈과 뉴스사이트에 삽시간에 퍼졌고, 수십만 건의 댓글이 달렸다고 전했다. 또한, 중국 네티즌들의 한국사회에 대한 반감이 치솟고 있다며 자신은 그냥 아나운서의 실수라고 생각하고 싶다고 말한 뒤 메신저를 종료했다.
한 언론인의 '실언'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 사태가 본질과는 전혀 관계없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탑승객 중 중국인이 절반에 달하고 초기 사고 사망자가 모두 자국인으로 밝혀져 가뜩이나 슬픔에 잠긴 중국사회에, 한국 방송인의 '지각 없는 발언'은 비통함을 더해주고 '느닷없는 반(反)한류 정서까지 촉발시키고 있다.
자국민 탑승객이 많았던 탓에 중국 매체들은 무겁고 침통한 목소리로 아시아나항공기 사고 소식을 전했다. 한국 언론들이 승객 구출을 위한 여승무원의 투철한 직업 정신 등 '미담'을 전할때도 중국 매체들은 '초상집' 분위기하에서 절대다수인 자국민 탑승객들의 안전을 염려했다.
이런 상황에서 채널A라는 국내 한 종편방송이 "사망자 2명이 모두 중국인이다. 우리로서는 다행이다."라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으니 마치 울고 싶은 자의 뺨을 때려 주는 격이 됐고, 중국인의 분노는 극도로 고조됐다.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가운데, 한국을 '노골적으로' 원망할 수 없었던 중국 사회는 채널A 아나운서 발언이 전해진 뒤 마치 '너 잘 만났다'는 듯이 억눌렀던 감정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 매체와 블로그에는 해당 언론사와 아나운서를 비난하는 보도와 의견이 빗발쳤고,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불명예스런 과거를 들춰내는 기사까지 쏟아졌다. 관련 기사에는 한국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댓글도 이어지고 있다.
한 언론인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양국이 애써 쌓아온 신뢰와 협력의 '공든탑'을 흔들고 있는 격이다. 이번 사고로 가뜩이나 어려울 금호아시아나, 이번 사고와 관련이 없는 한국 기업과 청와대도 '채널A 실언'의 '2차 피해자'가 되고있다.
중국인들 사이에 혐한(嫌韓) 정서가 고조되면서 자칫 한국 기업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불매운동 분위기가 조성될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방문으로 어렵사리 다져놓은 양국 간 우호 협력 분위기와 중국인들의 대 한국 호감도 반감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채널A 관련 중국 매체 기사에는 "앞으로 한국 항공사를 이용하지 말자.", "박근혜 대통령 중국방문으로 한국에 좋은 감정을 느꼈는데,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의 본질을 알았다. 역겹다."라는 부정적인 내용의 댓글이 무수히 이어졌다.
뒤늦게 채널A가 8일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중국 현지 분위기는 오히려 더욱 험악해졌다. 현지 네티즌은 "이런 형식적인 사과는 필요없다.","중국이 만만해 보이냐. 해당 아나운서는 직접 나와 사과하라."라며 채널A에 대한 질타를 이어갔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한 언론인의 실수에 중국인들이 너무 격분하는게 아니냐는 생각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먼저 대방의 슬픔을 헤아려야한다. 누구네 가족이든 어느나라 사람이든 막론하고 인명은 소중한 것이다. 가뜩이나 사고 항공기는 우리 한국의 국적기이고 절반인 중국 탑승객들은 '한국의 서비스'를 구매한 고마운 고객들이다.
한 사회 구성원의 사려깊지 못한 말 한마디가 국가 전체 이익을 해칠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방문에서 중국 국민과 현지 언론의 극찬을 얻어낼 수 있었던 비결은 중국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모습을 취했기 때문이다. 믿음을 쌓아가는 여정이라는 방중 슬로건 '심신지려(心信之旅)'는 매우 시의적절했고, 중국인들의 마음을 얻기에 충분했다.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 후 박 대통령이 중국 시진핑 주석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달했다는 소식에 많은 중국인들은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어린 두 학생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이를 계기로 한국과 중국 국민의 신뢰와 믿음은 더욱 공고해 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몰지각한 한 언론인의 '실언'이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언론인이라면 더욱더 말을 가려서 할줄 알아야 한다. 중국과 대만 홍콩 등 중화권에는 한류인기 만큼이나 한국을 미워하는 정서도 강하다. 중화권 반한파의 마음에는 "한국이 중국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겉과 달리 속으로는 중국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중국인 후배가 메신저에서 밝힌데로 단순한 말실수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실언의 파문은 잦아들 것이다. 하지만 신중치 못한 언행으로 상대를 얕잡아보는 태도가 고쳐지지 않는다면 언제고 이런 사태는 다시 재발할수 있다.
"한국 언론인 한 명의 발언으로 한국 전체를 매도해선 안된다. 해당 아나운서도 무의식중에 실수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무의식중에 '중국(인)을 무시하는 마음'을 들키고 말았다". 그간 한국에 우호적이었다는 중국의 한 네티즌이 채널 A 아나운서의 실언 소식을 접하고 냉정하게 털어놓은 소감 한 마디는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뉴스핌 Newspim] 강소영 기자 (js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