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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장 두번째 분단 ㉘ 피난민 통제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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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핵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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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25일 북한군이 전면 남침했고 정부는 비상조치를 내렸다.
  • 서울로 피난민이 몰리며 교통과 치안이 마비되고 혼란이 커졌다.
  • 정부와 학생·의료진은 수용·치료·구호에 나서며 혼란을 수습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1950년 6월 25일 새벽. 날이 밝기도 전에 38도선 전역에서 포성이 터졌다. 서쪽의 옹진반도로부터 개성 축선, 동두천·포천 축선, 춘천 축선, 주문진 축선에 이르기까지 북한군의 지상 공격이 일제히 시작되었다. 강릉 남쪽 정동진과 임원진에는 육전대와 유격대가 상륙하고 있었다.

전쟁은 어느 한 곳에서 번진 불길이 아니었다. 한반도의 허리를 따라 길게 쌓여 있던 화약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었다.

정부가 당면한 과제는 무거웠다. 전방에서는 적의 돌파를 저지해야 했다. 후방에서는 민심의 동요를 막아야 했다. 그리고 북쪽에서 서울로 밀려드는 피난민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도 시급하였다.
전선과 후방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민심이 무너지면 후방의 질서가 흔들리고, 후방이 흔들리면 전선도 버텨내기 어려웠다.

대통령은 6월 25일 긴급명령 제1호인 「비상사태하의 범죄 처단에 관한 특별조치령」을 하달하였다. 전쟁의 혼란을 틈타 각종 범죄를 자행할 경우 사형에서 20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었다. 치안을 안정시키고 질서를 유지하며 민심의 동요를 막기 위한 엄중한 조치였다.

[AI이미지=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이날 05:00, 내무부 장관은 치안국장으로부터 북한군의 남침 보고를 받았다. 보고는 짧았으나 사태는 컸다.
06:30, 전국 경찰에 비상경계령이 하달되었다. 경찰은 평시의 임무를 멈추고 전투태세에 돌입하였다. 각 경찰서에서는 인원을 소집하고 무기와 탄약을 점검하였다. 국군과 협조하여 후방의 질서를 지키고 국가 기능을 보호해야 했다.

아울러 시민들의 동요와 불순분자들의 만행을 방지하고 적기의 공습에 대비하기 위하여 치안명령 제26호가 각 시·도에 긴급히 시달되었다. 통행금지 시간을 연장하라. 등화관제를 실시하라. 주요 기관과 산업시설의 경비를 강화하라.

명령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철도와 발전소, 통신시설, 관공서와 산업시설에는 경비가 강화되었다. 밤이 되면 도시의 불빛은 하나씩 꺼질 것이었다. 어둠은 적기의 표적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으나, 사람들의 불안까지 감추지는 못하였다.

정부는 6월 28일 긴급명령 제2호인 「금융기관 예금 등 지불에 관한 특별조치령」을 발령하였다. 전쟁의 불안으로 예금 인출사태가 일어나 경제적 혼란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전쟁은 전선의 병력만 흔드는 것이 아니었다. 시장의 쌀값과 은행의 예금, 사람들의 생계와 마음까지 함께 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가장 먼저 마주한 현실은 북쪽에서 밀려오는 사람들이었다. 전쟁 당일부터 38도선 접경지대의 주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몇 사람씩 보이던 행렬이 시간이 흐르면서 마을이 되고,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대열이 되었다. 부상자를 업은 사람도 있었고, 병약한 노인을 부축한 가족도 있었다. 어린아이의 손을 붙든 어머니와 이불 보따리를 등에 멘 노인들이 말없이 길을 걸었다.

그들은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포성이 들리는 북쪽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정부는 피난민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심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우선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서울 철수에 따른 대책이었다.

그러나 정부와 국군은 사전에 서울 철수의 필요성을 예견하지 못하였다. 철수 계획도 수립하지 못하였다. 서울 시민과 북쪽에서 내려온 피난민을 체계적으로 통제하며 남쪽으로 이동시키기에는 준비도 시간도 부족하였다.

서울과 수원을 잇는 국도에서도 군경은 피난민의 이동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였다. 길마다 사람과 수레, 자동차와 군 수송차량이 뒤엉켰다. 전방으로 올라가야 할 차량은 남쪽으로 내려오는 피난민 행렬에 막혔고, 피난민들은 군용차량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나아갔다.

모든 도로상의 군 수송작전이 방해를 받았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한강은 적의 전면 남침 시 자연 장애물로서 양호한 지연진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 언급되었을 뿐이었다. 대규모 병력과 수십만 피난민을 함께 철수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는 없었다.

이와 같은 복합적인 상황의 악화는 군 병력과 피난민의 신속한 철수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다. 적시에 한강을 도하하는 일도 어려워졌다. 군은 싸우며 물러나야 했고, 주민은 살기 위해 내려가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이용할 길은 하나였다. 적의 압력이 서울 가까이 다가오자 도시는 차츰 공포와 혼란에 휩싸였다. 서울 이북 지역에서 내려온 피난민들로 시내는 더욱 혼잡해졌다.

38도선 접경지대 주민들은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공격준비사격을 개시하자 포격 소리에 놀라 황급히 집을 나섰다. 어느 집은 밥솥에 쌀을 안친 채 떠났고, 어느 집은 대문도 닫지 못하였다. 아이를 깨워 업고, 손에 잡히는 것만 챙겨 길로 나왔다.

지역에 따라 피난 상황은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떠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드리운 빛은 다르지 않았다. 경기도 장단서장 홍은식 경감은 당시38도선 접경지 주민들의 피난 상황을 이렇게 증언하였다.

"6월 25일 10:00쯤 벌써 고랑포 지서를 비롯한 모든 지서와의 연락이 끊어졌고, 피난민이 열을 지어 내려왔다."
지서와 초소의 연락은 하나씩 끊어졌다. 연락이 끊어진 자리에서는 곧 사람들이 내려왔다. 전선의 붕괴는 보고서보다 먼저 피난민의 얼굴에 나타나고 있었다.

군용트럭과 지게꾼/ 광복~1950년대 / 1952-53. [사진=대한민국역사박물관]

당시 고려대학교 조지훈 교수는 서울 거리에서 그 불길한 징조를 보았다.

"라디오에서는 전황이 좋다고 하지만, 기분 나쁜 것은 분명히 동두천이나 의정부 쪽에서 오는 피난민 대열을 보았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는 전황이 좋다고 하였다. 그러나 동두천과 의정부 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방송의 목소리와 거리의 현실 사이에는 이미 깊은 틈이 벌어지고 있었다.

유진오 박사도 당시의 청량리를 이렇게 기록하였다. "바깥 큰길에 피난민들이 들어왔다. 청량리 거리는 피난민들로 떠들썩하였다."

개전 당일부터 서울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로 시내는 가득 메워지고 있었다. 청량리와 동대문 일대에는 북쪽에서 온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먼지와 땀에 젖은 얼굴, 울음을 참지 못하는 아이, 가족을 잃고 두리번거리는 노인들이 거리마다 늘어났다. 평소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서울의 길은 이제 피난과 전쟁의 길로 바뀌고 있었다.

서울 이북의 주민들이 맨몸으로 피난길에 오르자 경기도지사는 관할 각 군에 지시하여 급식과 치료대책을 마련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피난민 대열은 끊어지지 않았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은 계속 서울로 쇄도하였다.

경기도지사는 보건부 장관과 서울시장을 찾아 이들의 수용과 치료 대책을 긴급히 강구하도록 건의하였다. 먹을 것을 주어야 했다. 다친 사람을 치료해야 했다. 밤을 지낼 곳도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사람은 계속 늘어났다.

보건부는 서울 시내의 모든 개업의와 간호원에게 비상대기명령을 하달하였다. 병원마다 의료진이 호출되었고, 환자를 수용할 공간이 마련되었다. 동두천과 의정부 방면에서 내려온 피난민 환자들은 서울대학교 부속병원과 서울시립병원 등에 수용하여 치료하도록 하였다. 개성 방면에서 온 환자들은 세브란스병원과 철도병원으로 보냈다. 옹진반도에서 온 환자들은 인천도립병원에 수용하였다.

피난민의 길을 따라 부상과 질병도 함께 내려오고 있었다. 임시 방역반도 편성되었다. 많은 사람이 좁은 장소에 모이면 전염병이 번질 위험이 컸다. 전쟁이 총칼로 사람을 죽인다면, 전염병과 굶주림은 그 뒤를 따라 조용히 사람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방역반은 피난민이 모인 곳을 찾아다니며 전염병 예방활동을 전개하였다. 사회부도 서울시에 긴급히 지시하였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을 비롯하여 돈암초등학교, 무학초등학교 등 시내6개소에 피난민 수용소를 설치하였다.

학교 교실에는 책상과 걸상 대신 침구가 놓였다. 아이들이 공부하던 자리에는 지친 피난민들이 몸을 누였다. 운동장에는 보퉁이와 수레가 늘어섰다. 급식이 마련되고 식사가 제공되었으나,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기에는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붕 아래 몸을 누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 한숨을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전황은 계속 악화되었다. 피난민 대열은 서울에 머물지 못하고 다시 남쪽으로 밀려 내려갔다. 사회부는 내무부와 협조하여 각 시·도에 피난민 수용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였다.

충북 37개소. 충남 55개소. 전북 43개소. 전남162개소. 경북 66개소. 경남 117개소. 제주 24개소. 합계 504개소의 피난민 수용소가 마련되었다. 숫자로는 504개소였으나, 그곳마다 떠나온 고향이 있었고 헤어진 가족이 있었으며 돌아갈 날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황의 악화로 피난민이 계속 남하하기 시작하자 보건부는 각 시·도에 긴급 지시를 내렸다. 공공의료기관을 개방하고 개업의와 간호원으로 의료방역반을 편성하여 피난민에 대한 진료와 방역을 실시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200개의 의료방역반이 활동하였다.

의사와 간호원들은 낯선 학교와 관공서, 임시 수용소를 돌며 환자를 살폈다. 부상자에게 붕대를 감고,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진료하고, 탈진한 노인에게 약과 물을 건넸다. 전쟁은 모든 것을 부족하게 만들었다. 약도 부족했고, 침상도 부족했으며, 사람의 손도 부족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6월 28일 아침까지 38도선 접경지에서 수도 서울에 이르는 길의 모습은 그야말로 공황의 도가니였다. 서울 이북지역 주민에 대한 소개계획 없이 시작된 피난 행렬은 통제할 수 없는 무질서를 초래하였다. 피난민들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남쪽으로 향하였다.

자동차에 올라탄 사람도 있었고, 우마차와 손수레를 끄는 사람도 있었다. 자전거에 짐을 매단 사람, 지게에 아이를 업은 사람, 보따리를 머리에 인 사람도 있었다. 그마저 없는 사람은 맨몸으로 걸었다.

주민들은 탈출로를 찾아 아우성쳤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한강을 건널 수 있는가. 기차는 떠나는가. 가족은 어디에 있는가. 누구도 분명한 대답을 해주지 못하였다.

모든 거리는 사람들로 메워졌다. 모든 도로는 피난민과 전방부대에 보급할 탄약 및 보급품 추진차량이 뒤섞여 혼잡하였다. 남쪽으로 향하는 사람들과 북쪽 전선으로 올라가야 할 차량이 한길에서 맞부딪쳤다.

예기치 못한 수십만 명의 피난민이 모든 도로를 점하게 되자 병력과 보급품을 가득 실은 수송차량은 움직이지 못하였다. 운전병은 경적을 울렸지만 사람들은 비켜설 곳이 없었다. 군경이 길을 터보려 했으나 피난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던 병력도 적시에 전선에 투입되지 못하였다. 병사는 북쪽으로 가야 했고, 피난민은 남쪽으로 내려와야 했다. 서로가 서로의 길을 막고 있었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모두가 살아야 했고, 모두가 급했다. 그러나 그 혼란은 방어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전선의 어려움만 가중시켰다. 전쟁은 사람을 한 방향으로만 몰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피난길에 올랐고, 어떤 사람은 전선을 향해 갔다.

많은 학생들이 자원하여 피난민 구호를 담당하고 군을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남침 당일 각급 학교 교정에는 학도호국단원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북한군의 남침을 규탄하고 김일성도당 타도 궐기대회를 열었다.

교정에는 구호가 울렸다. 학생들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누군가는 가족을 북쪽에 두고 왔고, 누군가는 형이나 아버지가 군에 나가 있었다. 전쟁이 무엇인지 온전히 알기에는 어린 나이였으나, 나라가 위태롭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마침내 학도결사대가 조직되었다. 많은 학생들이 혈서까지 써가며 자원입대를 하였다. 손가락을 깨물어 쓴 글씨에는 전쟁을 막아내겠다는 젊은 혈기가 배어 있었다. 의과대학생들은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총을 들 수 없다면 부상자를 치료하겠다는 것이었다. 여학생들도 적십자 완장을 두르고 간호에 나섰다. 교실과 강의실에 있어야 할 학생들이 병원과 피난민 수용소, 군부대와 방어선으로 흩어졌다.

1950년 6월 26일, 학생대표들은 국방부 정훈국을 찾았다. 그들은 학도결사대의 참전을 간청하였다.

"우리도 싸우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군은 만류하였다. 훈련도 받지 못한 학생들을 전선에 내보낼 수는 없었다. 뜻을 이루지 못한 학생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자체적으로 학도위문대를 조직하였다. 각자의 주머니를 털어 음식과 위문품을 마련하고 창동-미아리선으로 향하였다. 학생들은 장병들을 위문하였다. 진지 구축을 돕고 탄약을 운반하였다. 삽을 들고 흙을 팠으며, 탄약상자를 둘러메고 뛰었다. 전선 가까이에서 들리는 포성에 놀라기도 했으나 물러서지 않았다.

서울이 적 수중에 들어갔을 때도 그들의 활동은 끝나지 않았다. 학생들은 부상병을 찾아 지하에 숨겨주었다. 적의 눈을 피해 음식과 약을 날랐다. 미처 후퇴하지 못한 장병에게는 민간인 옷을 구해 갈아입히고 남하를 도왔다. 군복을 벗은 장병은 피난민 속으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그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또 다른 부상병을 찾아야 했고, 또 다른 장병을 숨겨야 했다.

국가는 미처 모든 사람을 보호하지 못하였다. 철수계획은 없었고, 도로는 막혔으며, 피난민은 끝없이 남쪽으로 밀렸다. 병력과 보급품은 제때 움직이지 못했고, 수많은 시민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한 채 길 위에 섰다.

그러나 그 혼란 속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붙들었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였고, 간호원은 부상자를 돌보았다. 학교는 수용소가 되었으며, 학생은 군인을 돕고 피난민을 구하였다.

전쟁은 모든 것을 무너뜨리며 내려왔다. 그 앞에서 사람들은 피난길에 올랐고, 또 어떤 사람들은 무너지는 것을 떠받치기 위해 제자리에 남았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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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스로픽·오픈AI 'AI 감속론'의 속내는? [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가 지난주 12일 내놓은 인공지능(AI) 개발 감속론에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와 xAI 모회사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 CEO가 잇달아 동조했다. 경쟁 관계인 3사 수장이 최상위 모델의 성능 개선 속도를 늦추자는 데 공개적으로 뜻을 같이한 것은 처음이다. 다만 업계의 시선은 감속 선언에 붙은 조건에 쏠린다. 아모데이 CEO의 제안이 자발적 제동에 머물지 않고 정부 규제 요구와 한 묶음으로 제시됐다는 점에서다. 업계에서는 규제를 동반한 감속은 개방형 모델과 후발 주자의 진입로를 좁히기 위함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오픈AI·앤스로픽의 개방형 제한 로비가 '사다리 걷어차기' 논란을 부른 데 이어 같은 구도가 감속론을 매개로 되풀이된 양상이다. 3사만 속도를 늦추면 개방형이 격차를 좁히는 결과만 남는 만큼 개방형까지 같은 규제에 묶어야 감속이 성립한다는 셈법이 규제 요구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3단계안과 부속 조치 아모데이 CEO의 에세이 '우리는 프론티어(최상위 성능 모델)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3단계 구조로 짜여있다. 1단계는 앤스로픽이 단독 이행을 약속한 조치로 제3자 평가 기관에 내부 위험평가팀에 준하는 상시 접근권과 평가 결과 공개권을 준다. 같은 의무를 다른 개발사에도 지우도록 정부에 요구하는 내용이 함께 붙어 있다. 2단계는 미국 최상위 모델 개발사 전체에 대한 정부 규제를 기본으로 삼되 입법 지연에 대비해 개발사 간 자발적 기준 마련을 병행하는 내용이고 3단계는 국제 공조다. 앤스로픽이 스스로 지는 부담은 평가자 수용에 그친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CEO의 개인 웹사이트에 게시된 에세이 'We Must Pace the Frontier' 갈무리 [사진=아모데이 CEO 개인 웹사이트] 2단계에 함께 담긴 부속 조치들이 개방형 진영을 자극했다. 아모데이 CEO는 중국과의 격차 이상으로 감속하면 안보 위험이 생긴다며 반도체 수출통제 강화와 무단 증류(한 모델의 출력으로 다른 모델을 훈련하는 기법) 단속, 가중치(모델이 학습한 결과를 담은 핵심 수치) 도난 방지를 요구했다. 표적은 중국이지만 다른 모델의 출력을 훈련에 활용하는 증류가 널리 쓰이는 개방형 생태계에서는 무단 증류의 규제 범위를 넓게 잡을 경우 통상적인 모델 개발 기법까지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 개방형 진영의 우려다. ◆개방형 추격과 감속 딜레마 감속 주장의 '저의'를 따지기에 앞서 살펴야 할 것은 규제를 동반한 감속 주장이 나온 배경이다. 개방형의 추격 속도가 아모데이 CEO에게 규제 없는 감속을 허용하지 않는다. AI 모델 이용 중개 플랫폼 오픈라우터에 따르면 미국 이용자가 요청한 토큰 처리량 가운데 개방형 비중은 작년 9월 26%에서 지난달 60%로 높아졌다. 유럽연합 이용자의 개방형 비중도 같은 기간 16%에서 65%로 상승했다. 가성비로 시장을 파고드는 개방형 모델 앞에서 3사만의 감속은 점유율 양보와 다르지 않다. 앤스로픽의 공동창립자인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 [사진=블룸버그통신] 폐쇄형 3사만 속도를 줄이면 개방형과의 성능 격차가 좁혀지는 시간만 짧아진다. 기술 우위로 높은 기업가치를 떠받치는 회사가 스스로 감속을 선언하는 것은 자기 약화에 가깝다. 에세이에는 자기 약화를 피하는 장치가 들어 있다. 아모데이 CEO는 훈련 중단이 아니라 안전 검증 시간 확보가 목적이라고 했다. 감속 대상은 외부 공개 모델의 역량 향상 속도이고 내부 연구는 제약에서 비켜난다. 폐쇄형은 공개 시점만 조절하면 되지만 공개 자체가 사업 방식인 개방형은 공개를 늦추면 남는 것이 없다. 규제를 동반한 감속이 개방형에 지우는 부담은 준수 조건에서 한층 커진다. 아모데이 CEO가 제시한 제3자 평가자 상주 방식은 모델을 자사 서버에 두고 API로 제공하는 구조에서만 작동한다. 누가 쓰는지 확인하고 위험한 사용을 감시하며 접근을 차단하고 문제 모델을 서비스에서 내리는 일은 서버를 통제하는 개발사만 할 수 있다. 가중치를 공개한 개발사는 수정·재배포된 복사본을 회수할 방법이 없다. 해당 조건이 강제되면 개방형은 결국 존재 방식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진입장벽 논란과 '규제 포획' 공방 앤스로픽이 6월 내놓은 규제 프레임워크의 적용 기준도 논란이다. 훈련 연산량이 10의 25제곱 플롭을 초과하고 연간 AI 매출 5억달러 또는 연구개발비 10억달러가 넘는 기업을 대상으로 삼는다. 소규모 개발사는 면제되는 구조지만 문제는 기준선을 넘는 순간부터다. 문턱을 넘자마자 비용과 기간을 가늠하기 어려운 승인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면 투자자와 창업자로서는 문턱 아래 머무는 편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소규모로 남는 것은 허용하되 대형사로 성장하는 길은 막는 면제 조치가 된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사진=블룸버그통신] 백악관에서 감속론을 공개 비판한 인사는 데이비드 색스 대통령 과학기술 자문 공동의장이다. 색스 공동의장은 감속 선언 다음 날인 13일 소셜미디어 엑스(X)에서 "다리오가 프론티어 속도를 조절하자고 썼고 샘이 동의했다. 그렇게 해라. 당신들이 프론티어다"고 했다. 두 회사가 점유율·매출·성능 어느 기준으로 봐도 최상위 모델 시장을 사실상 둘이 나눠 갖고 있으니 남을 규제할 것 없이 스스로 늦추면 된다는 논리다. 감속의 대가로 원하는 규제 틀을 얻으려는 시도는 규제 포획(규제가 기존 강자의 이익 보호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에 해당한다고 했다. 색스 공동의장의 규제 포획 비판은 지난달 아모데이 CEO와의 엑스 공방에서 이미 구체화된 바 있다. 당시 그는 앤스로픽이 요구하는 사전 심사 체제를 'AI를 위한 차량국(DMV)'에 빗댔다. 모델을 내놓을 때마다 정부 시험과 승인을 기다려야 한다면 대응 인력과 자금을 갖춘 대형사만 대기열을 견디고 후발 주자는 출시 자체가 늦어진다는 논리다. 안전을 명분으로 한 심사 요건이 기존 강자에게 유리한 경쟁 규칙으로 굳어진다는 지적이 감속론에서도 되풀이된 셈이다. ◆반독점 면제 요청 문턱 규제 포획 논란과 별개로 규제를 동반한 감속은 현행법의 문턱부터 넘어야 한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오픈AI는 최근 수주간 의회 의원들에게 업계 차원의 감속 조율이 합법인지 지침을 요청했다. 경쟁사 간 개발 속도 합의는 일종의 생산량 제한에 해당해 반독점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이 법조계 일각의 해석이다. 7월 초당파 의원들이 안전·보안 협력에 반독점 예외를 두는 법안을 발의했으나 하원 법사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아모데이 CEO의 반독점 면제 요청은 현행법 아래 조율이 자동으로 합법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사진=블룸버그통신] 법적 문턱을 넘더라도 실행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 포브스는 에세이가 제3자 평가자 도입 시한을 명시하지 않은 점을 짚었다. 아모데이 CEO가 요청한 반독점 면제도 정부가 받아들일 의무가 없어 거부되면 2단계는 시작조차 어렵다. 반독점법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두 회사의 협력 회피를 가리기 위한 구실이라는 시각도 있다. 면제가 나올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알고 요청한 것이라면 감속은 처음부터 이행 의사 없이 내건 조건부 약속에 가깝다. 공동 제안서조차 만들지 않은 채 규제 요청부터 앞세운 순서가 의심의 근거로 언급된다. ◆백악관 입장과 개방형 반응 앤스로픽의 규제 요청은 지난달 백악관이 한 번 거절한 내용과 같다. 백악관이 지난달 확정한 자발적 AI 심사 틀은 대상을 폐쇄형 최상위 모델로 한정했다. 개방·폐쇄를 가리지 않는 시험을 요구했던 앤스로픽으로서는 폐쇄형 최상위 모델만 심사받고 개방형은 빠지는 결과가 됐다. 에세이에서 거론된 2단계가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모든 최상위 모델 개발사에 같은 기준을 강제하라는 내용이다. 폐쇄형에 그친 심사 대상을 개방형까지 넓혀 달라는 요구를 감속론의 이름으로 다시 낸 셈이다. 데이비드 색스 백악관 대통령 과학기술 자문 공동의장 [사진=블룸버그통신] 개방형 진영의 대응은 규제 확대 요구를 맞받아치는 형태로 나왔다. 오픈소스 개발자 제이크 골드는 공개서한에서 "진심이라면 가중치를 공개하라"고 했다. 개방형을 심사 대상에 넣자는 요구에 폐쇄형도 가중치를 공개해 외부 검증을 받으라고 맞선 것이다. 개방형 모델 공유 플랫폼 허깅페이스의 클렘 들랑그 CEO도 감속 자체에는 동의했지만 규제 대상 확대에 대한 찬반은 명시하지 않았다. 감속의 필요성은 인정하더라도 감속의 조건을 폐쇄형 진영이 정하는 구도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 개방형 진영의 입장으로 읽힌다. ◆IPO 시기와 겹친 감속론 감속론의 저의를 둘러싼 근본적 물음은 왜 지금이냐에 있다. 최상위 모델 개발사들은 이전 세대 훈련 비용을 회수하기 전에 다음 세대에 더 큰 자본을 투입하기를 거듭해 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오픈AI의 GPT-6 아스트라는 내부 다량 사용 직원 기준 하루 7000달러어치 토큰이 소모된다고 한다. 기술 투자자 마틴 바르사브스키는 엑스에서 "[3사가 다른 건 몰라도] 서로 벌이는 경주가 모두를 파산시킬 수 있다는 데는 동의할 것"이라고 썼다. 감속 합의의 실제 동기가 안전이 아니라 비용에 있다는 지적이다. 감속 선언과 상장 절차 연기가 비슷한 시점에 나온 점은 의심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다. 앤스로픽은 지난주 예정됐던 증권신고서(S-1) 공개를 이달 늦은 시점으로 미뤘고 올트먼 CEO는 12일 연내 상장 배제 의사를 밝혔다. AI 연구자 엘리 데이비드는 엑스에서 "S-1이 손실 규모를 드러낼 것이므로 훈련 비용을 줄여 수익성 경로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상장을 앞둔 회사로서는 손실을 줄일 방법을 투자자에게 보여야 하는데 훈련 비용 절감이 가장 확실한 수단이고 안전을 이유로 감속하면 비용 절감이라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bernard0202@newspim.com 2026-09-1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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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北 핵심인사 일가족 중국서 탈북했다고?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북한 고위층 일가족이 중국 체류 중 우리 관계기관에 탈북·망명을 요청해 국내에 무사히 입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사정에 밝은 대북정보 관계자는 15일 뉴스핌에 "중국에서 대표부 대표급으로 일해온 노동당 핵심 인사가 지난 7월 망명을 요청해 정부가 이를 수용했다"면서 "현재 국가정보원의 보호 아래 합동신문과 국내 정착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중국에 체류해온 북한 노동당 고위급 인사의 일가족이 지난 7월 탈북 망명해 한국에 입국한 것으로 15일 파악됐다. 사진은 북한 고위층 일가족의 한국행을 AI를 이용해 표현한 가상 이미지. [사진=AI생성] 2026.09.15 ◆북한 고위급 인사 망명 확인은 이재명 정부 들어 처음  노동당 대외 관련 핵심 부서의 간부급으로 중국으로 파견돼 일해온 이 인사는 부인은 물론 자녀를 동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체류 고위급 북한 인사의 탈북·망명과 수용 조치가 확인된 건 이번이 이재명 정부 들어 처음이다. 탈북·망명 동기와 관련해 이 인사는 한국과 서방국가의 자유로움과 발전상을 보며 북한 김정은 정권의 폭압적인 행태에 실망했고, 특히 어린 자녀의 미래를 위해 평양 귀환을 하지 않고 서울행을 택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망명해 온 인사가 동북 3성 지역의 북한 공작 핵심 거점 도시에서 일해온 만큼 최근 북한의 대남 관련 동향이나 북중 관계 정보를 다수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특히 국무위원장 김정은의 대남적대 노선 노골화 이후 북한의 대남 전략이나 남북관계에 대한 입장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관계자는 해당 인사의 탈북과 국내 입국 과정에서의 구체적인 정황이나 중국 당국의 협조가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지난 6일 강원도 원산항에서 열린 구축함 강건호 취역식에 참석한 조용원(앞줄 왼쪽) 노동당 조직담당 비서를 비롯한 핵심 간부와 가족들이 축하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행사장 대형 화면에 국무위원장 김정은과 딸 주애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조선중앙TV 화면캡처] 2026.09.15 yjlee@newspim.com 해외 근무 북한 외교관이나 대표부 요원, 파견 근로자의 한국행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태영호 영국 주재 공사가 가족과 함께 망명했고, 조성길 이탈리아 대리대사(2018년), 류현우 쿠웨이트 대리대사(2019년), 리일규 쿠바 주재 대사관 참사(2023년) 등이 대표적이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당사자의 요청에 따라 구체적인 체류 국가나 신상을 밝히기 어려운 고위급 인사들이 훨씬 더 많다"고 말했다. yjlee@newspim.com 2026-09-1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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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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