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부세 9.4조 자동 배분…중앙 통제 사실상 한계
"전쟁 대응인가 내수 부양인가"…지선 앞 방향 논란
[세종=뉴스핌] 김기랑 기자 = 26조2000억원. 정부가 지난달 31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추가경정예산안의 규모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를 '전쟁 추경'이라고 명명했다. 중동 전쟁이 불러일으킨 고유가·고물가 충격을 막기 위한 긴급 재정 투입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민생경제 충격 완화의 골든타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표현까지 동원됐다.
그런데 막상 완성된 추경안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의구심이 생긴다. 추경에는 전 국민 대상 고유가 피해지원금과 피해기업·산업 지원 등 본래 목적에 부합하는 사업들을 비롯해, '영화·공연·숙박·휴가 할인(586억원)'과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800억원)'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보다 크게는 '문화산업 육성'에 2000억원, '청년 창업 지원'에 9000억원을 각각 투입한다. 용처가 불분명한 '지방교부세·교부금'은 무려 9조4000억원이 전국으로 내려간다.

내용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나쁜 사업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내수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는 데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업들이 '전쟁 추경'의 이름에 어울리는 구성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중동 전쟁발 에너지 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산업을 긴급히 지원하는 예산과, 경기 침체기에 내수 전반을 두루 부양하는 예산은 성격 자체가 다르다.
국무회의에 앞서 정부가 기자들에게 추경안을 미리 설명했던 브리핑에서도 이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지난달 27일 추경 상세 브리핑에서 '청년·문화 등이 중동 전쟁과 무슨 관련인지' 묻는 질의가 나오자, 박홍근 기획처 장관은 "경기 전체가 침체될 수 있는 위기 앞에서 선제적 대응하는 취지"라고 답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논리라면 사실상 어떤 사업도 '전쟁 추경'에 끼워 넣을 수 있다. '전쟁'이라는 이름이 주는 긴박함과 정당성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사실 이번 추경의 출발점을 거슬러 올라가면 더욱 흥미롭다. 이 대통령이 추경을 처음 언급한 건 올해 1월으로, 당시 화두는 '전쟁'이 아니라 '문화·예술'이었다. 그는 1월 중순 국무회의에서 "추경을 해서라도 문화·예술의 토대를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다 2월 말 중동 전쟁이 발발하면서 추경은 순식간에 '긴급 재정 카드'로 격상됐고, 곧장 '전쟁 추경'이라는 강력한 프레임을 달게 됐다. 1월의 문화·예술 추경 아이디어가 3월의 전쟁 추경 안에 그대로 녹아든 셈이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지방선거가 있는 해다. 26조원이 넘는 예산이 전국에 뿌려질 때, 그 수혜가 어디로 향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지방교부세·교부금만 해도 9조원 이상이 지방으로 내려간다. 이에 대한 우려에 기획처는 "추경 목적에 부합하는 사업으로 집행해 달라"고 지방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겠다고 했다.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뜻이다. 9조원이 넘는 돈이 고유가 대응에 쓰일지, 선거를 앞둔 각 지역 민심 달래기에 쓰일지는 중앙 정부도 장담할 수 없는 셈이다.
'전쟁 추경'이라는 이름은 강하고 선명하다. 정부가 경기를 지키기 위해 위기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추경의 목적과 내용 사이의 간극이 이토록 넓다면, 그 이름은 위기를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지출을 정당화하는 수사에 가깝다. 이럴 때 국민들은 다른 이름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선거 추경'이라는 이름을.
r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