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 대가'에 숨은 지뢰들
미래 매출 과대평가 여지
이 기사는 3월 23일 오전 11시28분 '해외 주식 투자의 도우미' GAM(Global Asset Management)에 출고된 프리미엄 기사입니다. GAM에서 회원 가입을 하면 9000여 해외 종목의 프리미엄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오라클(ORCL)이 3월 초 2026 회계연도 3분기 실적을 내놓았을 때 시장의 첫 반응은 단순한 '안도'가 아니라 '열광'에 더 가까웠다.
실적 발표 직후 시간외 거래에서 주가가 두 자릿수 랠리를 연출했고, 다음 날 정규장에서도 비슷한 폭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시장의 디스카운트가 일정 부분은 과도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매출액과 이익이 월가의 전망치를 무난히 상회한 데 더해 업체가 제시한 대규모 수주 잔고와 상향 조정된 가이던스가 AI 인프라 후발주자로 평가받던 오라클에 새로운 내러티브를 부여했다.
2월28일 종료된 오라클의 2026 회계연도 3분기 매출액은 172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2퍼센트 증가했고, 비GAAP(일반회계원칙) 기준 조정 주당순이익(EPS)은 1.79달러로 전년 동기에 비해 21% 늘어났다. 매출액과 EPS 컨센서스가 각각 169억달러와 1.70달러 안팎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분기 성적은 기대치를 소폭 웃돈 '서프라이즈'에 해당한다.
GAAP 기준으로는 매출액 172억달러에 순이익 37억달러, 주당순이익(EPS) 1.27달러로 집계됐고, GAAP EPS 역시 전년 대비 24퍼센트 급증해 실적의 질에 대한 우려를 일부 덜어냈다. 영업 레버리지 측면에서 보면 비GAAP 영업이익과 영업이익률은 각각 74억달러와 43%를 기록해 전년 동기의 44퍼센트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고, 인프라 투자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이 견조하다는 점이 부각됐다.
이번 분기 성장의 대부분은 오라클 클라우드 인프라스트럭처(OCI)에서 나왔다. 업체는 인프라스트럭처 서비스(IaaS)와 애플리케이션(SaaS)을 합산한 클라우드 매출액이 89억달러로 44%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클라우드 인프라 매출액은 49억달러로 84% 급증하며 전체 성장세를 견인했다.
특히 경영진은 컨퍼런스콜에서 AI 인프라 관련 매출만 놓고 보면 전년 대비 243%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AI 인프라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고 있는 상황에서 오라클은 분기 중 400메가와트가 넘는 데이터센터 전력을 신규 가동했고, 향후 3년 안에 10기가와트 이상의 전력·데이터센터 용량을 확보해 뒀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랙 생산과 설치 프로세스를 개선해 랙 설치 후 매출 인식까지 걸리는 시간을 60% 줄였다고 밝힌 대목은 단순한 수주 확보를 넘어 실제 매출 및 현금화 속도를 높이기 위한 운영 역량에서의 진전으로 읽힌다.
표면적으로 가장 눈길을 끈 숫자는 무엇보다 남은 이행 의무(Remaining Performance Obligations, RPO)였다. 오라클은 이번 분기 RPO가 5530억달러에 달해 전년 동기 대비 325% 급증했다고 공시했다. 1년 전 1300억달러 수준이던 RPO가 단기간에 네 배 가까이 불어난 셈이다. 단순히 과거 실적이 아닌 '미래 매출의 창고'가 폭발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회계연도 3분기 동안에만 신규로 더해진 RPO가 290억달러에 달했다는 점 역시 향후 성장의 기반이 이미 계약 형태로 상당 부분 확보돼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업체는 이번 분기 RPO 증가분의 대부분이 대규모 AI 인프라 계약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고, 이들 계약 상당수는 고객 선지급금이나 고객이 제공하는 GPU를 기반으로 구조화돼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10-Q 분기보고서를 보면, 오라클은 5530억달러의 RPO를 시간대별로 어떻게 매출로 인식할 계획인가를 비교적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2026년 2월28일 기준 RPO 가운데 약 12%를 향후 12개월 안에 매출로 인식될 예정이고, 31%는 그 이후 13~36개월 구간에서, 35%는 37~60개월 사이, 나머지 약 22%는 그 이후 기간에 순차적으로 수익으로 인식될 전망이다.

시나리오를 단순화하면 앞으로 1년 동안 약 660억달러 안팎의 금액이 RPO에서 매출로 옮겨지고, 이후 수년간 단계적으로 턴오버가 이어지는 구조다. 장기 구간으로 갈수록 비중이 커지는 점은 이번 RPO 급증이 단기 수주보다는 다년간 계약 장기 백로그에 기반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여기까지의 장밋빛 청사진은 어디까지나 '표면'이다. 오라클의 10-Q를 조금 더 꼼꼼히 파고들어 보면 이번 RPO 숫자가 투자자들에게 던져 준 '첫인상'과 실상이 커다란 괴리를 보일 가능성이 포착된다.
업체는 분기 보고서에서 일부 계약에 대해 "계약 기간 동안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변동 대가(variable consideration)가 아직 이행되지 않은 성과 의무에 전부 배분되어 있는 경우 해당 변동 대가를 공시하지 않는 옵션 면제를 선택했다"고 밝혀 뒀다.
IFRS(국제회계기준) 15나 ASC 606 등 수익 인식 기준에서 허용하는 이른바 '실무적 간편법(practical expedient)'에 해당하는 조항인데, 문제는 해당 조항이 의미하는 바다.
이른바 빅4 회계법인 가운데 하나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수익 인식 가이던스에서 변동 대가를 가격 인하와 물량 할인, 리베이트, 환불, 크레딧, 인센티브, 성과급, 마일스톤 지급, 로열티 등 계약 구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여러 항목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더 나아가 일종의 옵션성 요소가 포함된 계약, 즉 특정 미래 사건의 발생 여부에 따라 판매자에게 돌아오는 총 대가가 달라지는 경우에도 그 대가는 변동적인 것으로 본다고 설명한다.
미국 온라인 투자 매체 모틀리 풀에 따르면, 이 같은 정의를 오라클의 공시에 대입해 보면 업체가 공시하지 않기로 선택한 변동 대가에 해당하는 RPO 부분은 계약상 존재하지만 최종적으로 회사가 실제 수취할 금액이 확정돼 있지 않은 영역이라는 뜻이 된다.
다시 말해 RPO 전체를 '확정된 미래 매출'로 이해하는 것은 회계 기준의 취지와 어긋나며, 상당한 몫은 시장 상황과 고객의 성과 혹은 양측의 향후 협상에 따라 줄어들거나 사라질 수 있는 잠재적 매출이라는 점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변동 대가 자체가 회계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PwC는 이런 구조가 특히 장기 서비스 계약이나 성과 기반 라이선스 계약, 로열티 계약 등에서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관행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회계 기준은 기업이 변동 대가를 포함해 약속된 대가의 추정치 가운데 매출로 인식했다가 훗날 반납할 가능성이 상당 부분 있는 금액은 미리 수익으로 잡지 못하도록 제약(constraint)을 두고 있다.
오라클이 선택한 공시 방식은 이 제약이 적용되는 영역에 대해서는 굳이 세부적인 숫자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다시 정리하면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합법적인 옵션 안에서 투자자가 미래 매출의 확실성을 과대평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구조인 셈이다.
shhw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