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보급형 라인업 확대·현지 공장 전동화 가속
[서울=뉴스핌] 이찬우 기자 =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미국발 정책 불확실성과 중국의 저가 공세로 요동친 가운데, 유럽 시장은 예상 밖의 반등을 보이며 새로운 승부처로 떠올랐다.
유럽 전기차 시장의 회복은 올해 전동화 경쟁의 방향성을 가늠할 중요한 신호로, 현대차그룹 역시 유럽을 전동화 전략의 재평가 무대로 삼고 저가형 전기차 확대와 생산 전략 재정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6일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전기차 인도량은 약 2147만대로 전년 대비 21.5%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유럽이 약 425만7000대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34.9% 성장,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성장 엔진 역할을 맡았다. 반면 북미 시장은 5.0% 역성장하며 대조적인 흐름을 보였다.
이러한 흐름은 현대차가 유럽시장에서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는 '두번째 기회'로 평가된다. 유럽 전기차 시장은 2020년에 연간 약 140만대가 판매되며 급격히 성장했지만, 당시 주도권은 테슬라와 폭스바겐그룹에 있었다.
현대차그룹은 코나 EV, 니로 EV 등으로 비교적 이른 시점에 시장에 진입했으나, 일부 차급에 판매가 집중되며 전동화 전환을 이끄는 주도적 위치까지는 올라서지 못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반면 최근 유럽 전기차 시장은 보조금 축소와 금리 환경 변화 속에서 가격보다는 품질과 안전, 규제 대응 능력, 잔존가치 등 구조적 경쟁력을 중시하는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경쟁의 기준이 달라지면서 현대차그룹이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현대차그룹의 유럽 판매량도 긍정적인 추세다. 현대차와 기아의 지난해 유럽 판매량은 약 104만대로 전년 대비 2% 소폭 감소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질적 변화는 뚜렷하다.
주력 모델인 투싼의 친환경 모델(하이브리드·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판매 비중은 약 50%에 달했다. 기아의 EV3는 출시 후 6만5000대를 돌파하며 유럽 전기차 시장의 핵심 볼륨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는 유럽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의 친환경차가 주목받고 있음을 증명하는 수치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유럽시장의 조직과 생산 전략부터 재정비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달 체코 공장(HMMC) 사장으로 윤상훈 전 경영기획 담당 전무를 임명했다.
아태권역과 전략기획을 두루 거친 '전략통'을 전면에 배치해 급변하는 유럽 규제 환경과 수요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겠다는 의도다.
체코 공장은 단순 생산 거점을 넘어 전동화 전초기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신규 모델 개발 과정에서 현지 기여도를 기존 50%에서 75%까지 확대하고, 수동변속기 공장을 배터리 시스템 조립(BSA) 공장으로 전환해 오는 6월부터 연 45만 개 규모의 배터리 팩을 생산한다.
이 물량은 인근 기아 질리나 공장까지 공급될 예정이다. 올해 체코 공장의 생산 목표 26만5000대 가운데 전동화 모델 비중은 50%까지 끌어올린다.
그룹은 지난달 28일 열린 기아 컨퍼런스 콜에서도 유럽 시장을 향한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기아는 "지난해 유럽은 전기차 출시가 하반기에 몰렸지만, 올해는 연초부터 전면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고 밝혔다.

특히 올해는 저가형 전기차 EV2가 새롭게 가세한다. 현대차의 인스터(캐스퍼 EV)와 아이오닉 3, 기아 EV2까지 더해지며 3만유로 이하 보급형 전기차 라인업이 본격적으로 완성된다.
이는 중국산 저가 전기차의 공세에 대한 방어 수단이자, 가격 장벽으로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던 유럽 실속형 소비자층을 흡수할 카드로 평가된다. 가격 경쟁에만 의존하지 않고, 품질·안전·잔존가치에 대한 신뢰를 앞세운다는 전략이다.
더불어 현대차그룹은 2026년 유럽 시장에서 단순한 가격 경쟁 대신 브랜드 신뢰도와 현지 맞춤형 제품으로 승부를 건다는 방침이다.
중국 업체들이 관세 장벽과 애프터서비스망 부족 등 구조적 한계에 직면한 사이, 현대차그룹은 이미 구축된 500만대 규모의 유럽 생산 기반과 고도화된 현지 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유럽형 전동화'의 표준을 제시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2025년이 북미 리스크를 견뎌낸 방어의 해였다면, 2026년은 유럽 시장 주도권을 재평가받는 해가 될 것"이라며 "현지 생산 거점의 전동화 전환 속도가 승부를 가를 핵심 변수"라고 말했다.
chanw@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