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끝장났다" EU의 냉혹한 자성
[워싱턴=뉴스핌] 박정우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매입을 위해 꺼내 들었던 군사력 사용과 관세 폭탄 위협을 거두어들이며 사실상 전략적 후퇴를 선택했지만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를 겪은 유럽은 '미국과 관계에서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는 인식과 더불어 트럼프 행정부의 강압적인 전술에는 유화책이 아닌 '강력한 경제적 보복만이 실질적인 답이라는 냉혹한 교훈을 얻게 됐다'는 자성이 나오고 있다.
◆ "유럽이 맞서자 미국이 눈을 깜빡였다"
워싱턴포스트(WP)는 23일(현지시간) "그린란드 문제에서 유럽은 맞섰고, 트럼프는 눈을 깜빡였으며, 유럽연합(EU)은 교훈을 얻었다(On Greenland, Europe stood up, Trump blinked and the E.U. learned a lesson)"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 사태가 지난 1년 내내 분열돼 있던 EU 27개국을 유례없이 단결시켰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내놓지 않으면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유럽을 압박했지만, 되돌아온 건 단합된 반격이었다는 것이다.
WP는 주류 정치권부터 포퓰리즘 정당, 심지어 EU를 떠난 영국까지 "동맹국 영토 강탈은 용납할 수 없다"며 한 목소리를 냈다며 유럽을 개별적으로 압박하려 했던 트럼프의 '갈라치기' 전략은 오히려 정반대의 효과를 낳았다고 짚었다. 실제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우리가 함께 서고 스스로를 지킬 때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배웠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우리가 내려야 할 결론은 유럽이 위협 속에서도 가용한 수단을 사용하며 단합된 전선으로 대응할 때 존중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라며 미국에 맞선 강한 결의를 주문했다.
◆ "안심은 금물" 채텀하우스의 경고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Chatham House)는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후퇴'를 일시적이라며 그린란드나 또 다른 사안으로 인해 상황이 다시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연구소의 그레고아 로스(Grégoire Roos) 유럽 프로그램 국장은 "강압(Coercion)이 대서양 동맹 관계 내부에서 정당한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유럽이 어떻게 대응하느냐 답해야 할 차례"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이어 "EU 회원국의 영토에 대한 유럽의 굴복을 강요하기 위해 관세와 시장 접근권을 무기로 삼으려는 트럼프의 의지에 유럽 국가들이 당혹해했다"며 "위협은 일시적으로 유예되었을지 모르지만, 그 신호는 명확하다. 대서양 관계의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 유럽의 '경제 핵무기' 반강압수단
이번 사태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EU가 처음으로 '경제 바주카포'라 불리는 반강압수단(ACI·Anti-Coercion Instrument)을 가동하려 했다는 점이라고 채텀하우스는 지적했다. ACI는 타국이 경제적 압박으로 유럽의 주권을 침해할 경우, EU가 집단적으로 보복하는 장치로 단순 관세를 넘어 미국 기업들이 장악한 서비스·공공조달·지식재산권 분야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됐다. 특히 애플, 넷플릭스 등 미국 대형 기술기업의 유럽 내 활동을 제약하겠다는 신호는 트럼프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채텀하우스는 이를 "유럽이 가진 핵무기"라고 평가하며, 트럼프가 물러선 진짜 이유가 결국 '보복의 공포'였다고 분석했다.
이탈리아 로마의 국제관계 싱크탱크인인 국제문제연구소(IAI)의 나탈리 토치 소장도 트럼프 비판자들이 즐겨 쓰는 "트럼프는 언제나 겁먹고 도망친다(Trump always chickens out)"는 표현을 인용하며 "우리가 굴복하면 트럼프는 압박해 오고, 우리가 허리를 곧게 펴면 그는 빠져나간다"고 말했다. 이어 "그가 유럽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시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며 "유럽이 이번 사태에서 교훈을 얻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dczoomi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