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의 없이 '통일연구원' 이관 추진
카멜레온 같은 간부 행태도 문제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정동영 체제 통일부의 일방통행식 정책이 점입가경이다.
탈북민이란 멀쩡한 용어를 개칭하겠다고 나서더니, 결국 '북향민(북향민)'이란 정체불명의 표현을 들고 나와 새해 벽두부터 정책용어로 쓰겠다고 우기고 있다.
언론과 국민 다수의 입에 오르내리며 정착된 탈북민이란 말에 정 장관이 왜 그리 거부감을 느끼는지 속사정은 알 바 아니다.

그렇지만 당사자인 탈북민 사회가 거부감을 느끼고,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선호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 용어를 택한 건 어불성설이다.
마치 일제강점기의 창씨개명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법률용어인 '북한이탈주민'과 탈북민도 모자라 또 하나의 용어를 추가해 억지춘향식으로 나오니 한때 '정책고객' 운운하며 받들겠다던 국민 목소리가 제법 만만해 보이는 듯하다.
문제는 정 장관의 이런 행태가 이번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지난 2005년 첫 통일장관으로 부임해 탈북민 용어 개칭을 추진했다.
당시엔 '새터민'이란 표현을 들고 나왔는데, 논란과 혼선을 겪다 장관 퇴임 이후 흐지부지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20여년 만에 장관에 다시 부임해 전철(前轍)을 밟고 있다.
부담은 고스란히 혈세를 바친 국민 몫이고, 통일·대북 문제 종사자와 탈북민 사회는 홍역을 치를 수밖에 없다.
통일문제 국책 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을 부처 산하에 두겠다는 정 장관의 처사를 두고도 논란과 비판은 끊이지 않는다.
그는 지난해 12월 1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대통령께서 선물을 하나 주십사 하는 부탁을 드린다"면서 연구원을 통일부로 이관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국책 연구기관을 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NRC)로 묶어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기존 취지에 거슬러 통일연구원 빼가기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읍소한 것이다.
그런데 통일부는 총리실이나 NRC 측과 사전협의 한마디 없이 지난 14일 통일부 산하로 연구원을 이관하는 입법예고 조치를 기습적으로 취했다.
하지만 사전 논의 없는 강행에 반발 여론이 정부 안팎에서 일고 청와대 기류도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사흘 만에 전격 철회했다.
통일부 내부에서는 "장관의 속도전이 사고를 쳤다"는 볼멘소리가 나왔고, 통일연구원 측에서는 "국책 연구기관을 정권의 전리품이나 대통령 하사품 정도로 여기는 정 장관의 인식에 비애를 느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런 식으로 가면 통일연구원 박사들이 장관 하명에 따라 정책보고서나 작성하는 관변학자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다.
대북‧통일 현안을 놓고 청와대나 타 부처와 조율하기보다는 사사건건 엇박자를 내고 있는 대목도 문제로 꼽힌다.
북한 김여정이 지난 13일 무인기 '대북침투'를 주장하고 나서자 정 장관은 즉각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상응조치를 할 것"이라며 대북 사과를 시사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위성락 안보실장은 같은 날 오후 "(무인기 문제가) 남북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된다는 등의 희망적 사고를 전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거기까지 가 있지 않다"며 온도차를 보였다.
통일 문제 주무부처의 책임자로서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하는 발언도 논란을 낳고 있다.
'평화적 두 국가론' 등의 주장으로 북한 김정은의 '남북한 두 국가론'에 동조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킨 정 장관은 지난 2일 시무식에서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칭하는 등 돌출적 언동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장 장관의 행보에 브레이크를 걸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통일부와 그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 등을 중심가치에 놓고 복무해야 할 핵심 간부들은 제대로 된 조언보다는 '실세 장관'의 심기 살피기에 바쁜 형국이다.
지난 16일 한 당국자는 통일부에 쏠린 비판여론에 "'대북 저자세', '북한 눈치를 보는 자충수'라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한 상식을 무시하는 정치 공세"라고 반발하며 "불필요한 국민적 갈등을 조장한다"는 입장을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이를 두고 한 전직 통일부 고위 간부는 "통일부가 왜 이처럼 국민 비판여론에 날카롭게 반응하면서 정치권 논란으로까지 판을 끌고 가는 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이례적인 대응에 우려를 나타냈다.
20년 전에 장관 한 사람의 독단과 전횡이 얼마나 큰 후유증을 낳았는지를 생생하게 목도하고도 그 데자뷔(Déjà vu)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뒤치다꺼리는 국민들 몫이라 여기는 것일까.
갈팡질팡하는 돈키호테 장관의 돌격전에 '영혼 없는' 공무원들의 카멜레온식 대처가 어우러져 '대북·통일 주무부처' 통일부는 국민 마음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yjlee@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