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환헤지 '직개입' 효과…올해도 환율 안정판 역할
수십억달러로 직개입 추정...환헤지 여력 '100조' 더 있어
환율 안정 요인, 경제성장·흑자확대·채권지수 편입·미 금리인하
세계 7~8위 '자본수출' 대국, 외환관리시스템 개편해야
[서울=뉴스핌] 한기진 금융증권부장 = 지난해 12월 외환시장은 '공포 장세'에 가까웠다. 달러/원 환율이 12월 23일 장중 1483원까지 치솟았다가, 정부의 강력한 대응 이후 12월 30일 1439원으로 마감했다. 연평균 환율은 1422원. 1998년(외환위기 직후) 평균 환율 1398원과 단순 비교가 무리라 해도, 수치가 주는 체감은 컸다. 해외 유학비·송금 부담이 늘고, 기업의 원가·수입물가 우려도 커졌다.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낸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은 뉴스핌TV 유튜브 인터뷰에서 "12월 24일부터 30일까지 4거래일 동안 시장에서 상당한 공방이 있었고, 정부가 전방위 노력을 하면서 환율을 1483원 대비 44원가량 끌어내렸다"며 "환율은 어느 정도 진정 국면에 들어갔다"고 평가했다. 뉴스핌TV 인터뷰는 7일 공개된다.
안 의원은 이번 급등을 '달러가 모자라서 생긴 사태'로 보지 않았다. 핵심 원인은 달러 수요와 공급 불균형, 정확히는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구조적인 수급 '미스매치(부조화)'라는 진단이다. "우리 경제주체들의 해외투자가 급증했다. 그런데 달러 공급은 그 속도를 못 따라갔다. 그 미스매치가 환율 급등을 키웠다"는 것이다.

"달러 부족 아니다…해외투자 급증과 가수요가 만든 수급불일치와 정부의 대비 부족 겹쳐"
최근 환율 급등은 10~12월 석 달에 집중됐다.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증권 투자 확대 등 달러 수요를 급격히 키운 반면, 시장에서 체감하는 달러 공급은 이를 즉각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내국인 해외 증권 투자는 1171억2000만달러로 사상최대 규모인데다, 전년 동기 710억달러보다 무려 65%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경상수지 흑자 폭인 896억달러를 훨씬 웃돈다. 달러를 사서 해외로 나가는 돈이 단기간에 급증했는데, 달러를 벌어들이는 흐름(수출·투자소득)이 시장이 기대하는 속도만큼 '즉시' 공급되지 못하면서 환율이 짧은 기간에 올랐다. 여기에 안 의원은 "지금 달러를 확보하지 못하면 더 오른다"는 불안 심리가 가수요를 자극했고, 결과적으로 1483원까지 급등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나라 전체로 달러가 부족한 상황은 아니라는 게 안 의원의 판단이다. 그는 "가장 중요한 달러 공급원은 경상수지 흑자"라며 "연간 경상수지 흑자가 1150억달러 수준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벌어들인 달러가 나간 달러보다 큰 구조"라고 했다. 그럼에도 환율이 급등한 것은 "수급의 타이밍 불일치와 정부의 사전 대비 부족이 겹친 결과"라고 덧붙였다.

"구두개입이 '실탄'으로 연결…국민연금 환헤지가 반등 눌렀다"
작년 12월 24일을 기점으로 정부 대응이 급격히 강화됐다는 평가도 내놨다. 안 의원은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고 판단해 달러 안정 대책을 만들고 구두개입을 했다"며 "24일부터는 시장 개입이 이뤄졌고, '정부의 실행 능력을 보여주겠다'는 메시지가 먹혔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안 의원이 강조한 것이 국민연금의 역할이다. 외환당국이 시장 개입을 구체적으로 확인해줄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강력한 구두개입이 달러 실탄 공급과 연결됐다"는 신호가 시장에 전달됐고, 그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환헤지 물량이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안 의원은 "정부와 국민연금이 합의해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를 가동하는 지침이 만들어졌고, 실제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환헤지의 '잠재력'은 숫자로 제시했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규모가 약 850조원이고, 환헤지 가이드라인은 전략적 10%·전술적 5%를 합쳐 최대 15% 수준이다. 안 의원은 "이를 적용하면 100조원 남짓(약 127조원)의 환헤지 여력이 생기고, 이를 환헤지해주는 은행들이 그에 상응하는 현물 달러를 확보할 수 있으므로, 국내 외환시장에 풀 수 있다"며 "최대치로는 100조원 가까운 현물 달러 공급 여력을 확보하게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100조원 남짓은 800억달러가 넘는 돈으로 우리나라 외환보유고(4300억달러)의 20%에 가까운 큰 돈이다.
안 의원은 "그중 일부가 실제 작동해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작년 12월23일 이후 외환당국 및 국민연금 개입 사례)"고 말했다. 핵심은 '실제 투입 규모'보다도, 국민연금이 환헤지라는 수단을 통해 언제든 시장 안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시그널' 자체가 환투기성 수요를 눌렀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는 환율 급변 시 자산의 최대 10%(전술적 판단 포함 때 15%)까지 헤지할 수 있도록 2022년 도입됐으며, 연간 단위로 연장돼 왔다. 계엄 사태 여파로 환율이 급등한 올해 초 처음 발동됐고, 최근 고환율 상황에서 또다시 가동됐다.

"국민연금 환헤지는 연금 안정장치…외환시장 안정은 '부수 효과'"
국민연금이 외환시장에 등장하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있다는 지적에 대해, 안 의원은 "환헤지(환위험 회피)는 국민연금의 자산운용 안정성을 위한 장치"라는 점을 먼저 분명히 했다.
국민연금은 약 1400조원을 운용하고, 운용 자산의 약 60%를 해외에 배분한다. "그만큼 환리스크에 노출돼 있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일정 수준의 환헤지는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 과정에서 외환시장 안정 효과가 발생한다. 안 의원은 "환헤지가 작동하면 현물 달러 공급이 발생할 수 있어 외환시장 안정에 기여한다"며 "환헤지는 연금 운용 안정이 1차 목적이고, 외환시장 안정은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수 효과"라고 정리했다.
"국민연금, 환헤지 여력 상당…투기세력 나설 환경 안돼"
안 의원은 '올해 환율 환경이 작년보다 안정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국민연금 환헤지 여력과 정부·민간의 달러 조달 역량이 결합하면 환율 변동성을 낮출 수 있다고 봤다.
그는 "국민연금이 환헤지를 통해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력이 최대 100조원 정도"라며 "그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시장에 큰 시그널을 준다"고 했다. 즉, 투기적 세력이나 단기 포지션이 '국민연금 물량이 나올 수 있다'는 리스크를 의식하게 되면, 과도한 쏠림이 줄 수 있다는 취지다.
또 다른 축은 민간 금융기관이다. 안 의원은 "유사시 필요한 달러를 적기에 도입할 수 있도록 금융기관의 해외 자금 조달 능력을 높여줘야 한다"며 "정부 대책에도 선물환 매수 한도를 높이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선물환을 쉽게 풀어 설명하면 이렇다. 수출기업은 미래에 받을 달러 가격을 미리 고정(헤지)하기 위해 선물환 매도를 하고, 금융기관은 이를 매수한다. 금융기관은 확보한 미래 달러를 기반으로 현물 달러를 조달해 운용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시장에 달러 공급 여력이 생긴다. 안 의원은 "선물환 매수 여력을 높이면 현물 환시장 공급 능력이 늘어난다"고 했다.
그는 여기에 기업의 협조도 중요하다고 봤다. "수출기업이 달러값 상승을 기대하며 수출대금을 해외에 오래 두면 시장 달러 공급이 지연될 수 있다"며 "수출대금을 국내로 조기에 들여오도록 유도하는 인센티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상흑자 확대·채권지수 편입…달러공급 여력 커진다"
안 의원은 환율이 '신의 영역'이라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방향성 판단은 가능하다고 했다. 국내 펀더멘털 개선과 달러 공급 요인의 확대로 올해 환율이 작년보다 안정될 것으로 본다.
그는 "경제 성장률이 작년 1.0% 내외라면 (해외 IB등 기관들이)올해는 2%에 가깝게 본다"며 "미국과의 성장률 격차가 좁혀지면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반도체를 중심으로 기업 실적 개선이 이어지면 해외 자금의 국내 유입 가능성도 커진다"고 했다.
달러 공급 측면에선 경상수지 흑자 확대 전망을 제시했다. "작년 1150억달러에서 올해 1300억달러로 늘어날 수 있다. 수출 경쟁력과 달러 공급 측면에서 긍정적 신호"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글로벌 채권지수 편입 효과다. 그는 "4월 세계 채권지수 편입으로 560억달러(약 80조원) 규모의 자금이 순차적으로 들어올 수 있다"며 "채권시장으로 유입되겠지만 달러가 들어오는 만큼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편입에 따른 유입은 '새로 들어오는 돈'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예상되는 경상수지흑자 증가분 150억달러를 고려하면 약 710억달러가 새롭게 국내에 들어올 수 있다.

"미 금리인하 가능성…달러 약세면 원화 상대 강세 모멘텀"
대외 변수 가운데 가장 큰 축은 미국이다. 안 의원은 "미국의 금리·통화정책이 글로벌 자금 흐름을 좌우한다"며 "중간선거(11월)를 앞두고 유동성을 늘리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게 일반적 예측"이라고 말했다.
그는 "추가 금리인하가 1~2차례 있을 수 있고, 기준금리가 3.75%에서 3% 수준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며 "유동성 확대와 금리 인하가 현실화되면 달러 약세로 이어지고, 원화는 상대적 강세로 전환될 수 있는 모멘텀이 된다"고 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연준(Fed)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연준 독립성 훼손 우려가 커지면 정책 영향력이 약화될 수 있다"며 "연준도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조화 범위 내에서 정책을 펼 것"이라고 덧붙였다.
엔화와 위안화도 변수다. 안 의원은 "일본은 물가가 꽤 올라와 있고, 인플레이션으로 실질소득이 줄면서 중산·서민층 어려움이 커졌다"며 "정권 교체 배경에도 물가 요인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해야 하고, 엔화가 강세를 보여 수입물가가 안정되는 흐름이 필요하다"고 했다. 위안화도 강세 흐름이 이어지면 원화에도 우호적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취지다.
"환율 맞추기는 무리…중소기업 1362원, 대기업 1400~1499원 '감내 범위' 관리해야"
환율 레벨 전망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접근을 유지했다. 안 의원은 "특정 환율을 정해서 맞추려는 건 어리석다"며 "기업과 국민경제가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변동성을 관리하는 게 목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참고 지표로 기업 설문을 제시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서 중소기업이 목표 영업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적정 환율이 1362원, 100대 기업은 영업이익을 훼손하지 않는 환율의 마지노선을 1400~1499원으로 봤다"고 했다. 그는 "시장과 기업이 기대하는 수준이 1400원대에서 남짓하게 움직이는 범위"라며 "전반적으로 금년보다 안정된 수준에서 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장기 과제는 국민연금 달러 조달 구조 수술…해외시장에서 직접 조달 검토해야"
안 의원은 "가장 큰 변수는 국민연금"이라고 단언했다. 국민연금 적립금이 현재 1400조원에서 장기적으로 3600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고, 해외투자 비중이 60%라면 2000조원 이상을 해외에서 굴려야 한다. 그는 "이 정도 달러 수요를 국내 현물 외환시장이 감당하기 어렵다"며 "적정 시점에는 국민연금이 해외에서 직접 달러를 조달해 해외투자에 나서는 방식으로 국내 외환시장과 격리하는 방안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화 국제화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한국 경제는 10위권인데 원화 결제 비중은 0.9%에 불과하다"며 "달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원화 국제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더 나아가 "법정통화 시대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못하더라도, 디지털 통화 시대엔 준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필요성까지 제시했다.
안 의원은 끝으로 "환율 급등으로 국민이 불안해하지만 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며 "달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수급 불일치가 만든 변동성이었고, 정부가 방향성을 제시하며 시장에 시그널을 주면 안정시킬 힘이 있다"고 말했다. "외환 관리 시스템을 더 개방적이고 폭넓게 개선해 금융기관 달러 조달 능력을 키우면 환율 변동은 관리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의 환율 급등이 '정책 신뢰'와 '시장 수급 구조'의 시험대였다면, 올해 관전 포인트는 분명해졌다. 국민연금 환헤지라는 '잠재 실탄', 경상흑자 확대와 채권지수 편입이라는 '달러 공급', 그리고 미국 통화정책 전환 가능성이라는 '대외 환경'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간에서 환율은 '레벨'보다 '변동성'이 먼저 시험받게 될 전망이다.
<프로필>
1965년, 전라남도 화순군 출생
광주동신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행정학 석사
제22대 국회의원(광주 동구남구을, 더불어민주당)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상임부의장
안 의원은 1989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재정·경제 분야 공직에 입문했다. 기획예산처 및 기획재정부 주요 부서에서 예산기획·정책조정·복지·경제·대내외 경제협력 분야를 두루 맡아 국가 재정 운영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했다. 특히 기획재정부 예산총괄심의관, 예산실 실장 등을 거쳐 2021년 3월부터 2022년 5월까지 기획재정부 제2차관으로 재임하며 국가 예산과 거시경제 정책의 총괄 책임자로 활약했다.
hkj77@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