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대 계급 명칭 변경에서 안보 문서 개정까지
전후 체제 넘어서려는 '보통국가화' 프로젝트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일본 정부가 자위대 계급 명칭을 외국 군대와 유사한 형태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13일, 일본 정부가 자위대의 계급 체계를 '대장·대좌·대위' 등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행정 조정이지만, 그 배경에는 자위대를 군대와 같은 형태로 재정비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자위대' 대신 '군대'로
현재 자위대의 계급은 장(將)부터 2사(士)까지 16단계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장군급의 위계가 명확하지 않고, 각 자위대(육상·해상·항공)를 지휘하는 '막료장'은 실질적으로 별 네 개의 장성이지만 공식 계급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막료장을 '대장'으로 새로 정하고, 1좌(佐)·2좌·3좌를 각각 '대좌·중좌·소좌'로, 1위(尉)·2위·3위를 '대위·중위·소위'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병사 계급도 1사·2사를 '1등병·2등병'으로 통일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자위대원이 높은 사기와 긍지를 갖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조치를 "국제 표준화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여당 내부에서는 이번 개편을 '군대화의 상징적 절차'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지난달 자민당과 일본유신회가 연립정권 합의문에서 자위대의 계급·복제·직종의 국제 표준화를 2027년 3월까지 추진하기로 한 것도 이같은 흐름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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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자위대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안보 3문서' 개정 논의, 다시 속도 붙인다
자민당은 내주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한 논의에 공식 착수할 예정이다.
3대 안보 문서란 외교·안보 정책의 최상위 전략 지침인 '국가안전보장전략', 자위대의 역할 및 방위력 건설 방향을 규정하는 '국가방위전략', 그리고 구체적인 장비 조달 방침을 담은 '방위력정비계획'을 가리킨다.
2022년 말 개정 당시에는 적 미사일 기지 공격을 포함한 '반격 능력' 보유와 2027년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2% 방위비 확보가 명시된 바 있다.
이번 논의에서는 방위비 목표의 추가 상향, 비핵 3원칙의 재검토, 방위장비 수출 제한 완화, 핵 추진 잠수함 보유 등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공명당의 이탈로 평화주의 견제가 상당 부분 약화되고, 보수 및 군사력 강화 노선을 공유하는 유신회와 연립하면서 안보 3문서 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자민당과 유신회는 연립 합의문에서 안보 3문서의 조기 개정을 2027년 3월까지 완료하겠다고 명시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또한 취임 직후 방위성에 대대적인 문서 개정 및 방위비 증액, 장거리 잠항이 가능한 차세대 잠수함 개발, 방위장비 수출 제한 완화, 국영 방위장비 공장 신설 등의 추진을 공식 지시한 상태다.
미일 간 안보 협력 강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양국 정부는 일본의 반격 능력 보유를 전제로 작전 체계를 공동 검토하고, 유사시 미군의 지원 체계를 재정비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이처럼 일본은 헌법 9조 개정 없이도 사실상 '전쟁 가능한 국가'로 기능하는 체제를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 '국제 표준화'라는 이름의 정치적 언어
자위대 계급 명칭 변경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상징적 조정에 가깝다. 표면적으로는 국제 표준화, 즉 미군 등과의 연합 작전에서 통일된 용어 체계를 맞추기 위한 조치로 설명되지만, 언어를 바꾸는 것은 인식을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1좌·3좌' 대신 '대좌·소좌'로 바꾸는 순간, 자위대는 더 이상 특수 조직이 아니라 일반 군대의 형태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조직 내부의 위상뿐 아니라 국민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위관'이 아닌 '군인'으로 받아들여지는 심리적 변화가 시작되는 셈이다.
일본 정부가 '국제 표준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외교적 정당성과 정치적 부담 완화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군대화'라는 표현은 여전히 일본 사회에서 거부감이 크기 때문에, '국제 기준에 맞춘 개편'이라는 표현으로 정책의 부담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위대를 군사 조직으로 완결시키는 방향으로 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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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우회 방식으로 전후 체제를 넘어서려는 시도
자민당은 오랫동안 자위대의 헌법 명기와 9조 개정을 주요 과제로 내세워왔다. 그러나 국민 여론의 절반가량이 개헌에 부정적인 상황에서, 다카이치 정권은 사실상의 개헌에 가까운 행정 조정을 통해 헌법의 제약을 우회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반격 능력 보유, 방위비 증액, 미일 안보협력 확대, 그리고 이번 자위대 계급 명칭 개편은 모두 헌법 9조의 해석 범위를 넓히는 정치적 실험으로 볼 수 있다.
전후 일본은 '평화국가'로서의 정체성과 '보통국가'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냉전 종식 이후 걸프전과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일본 내에서는 "경제대국에 걸맞은 안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이후 집단적 자위권 해석 변경(2014년), 무기 수출 3원칙 완화, 우주·사이버 영역의 방위 전략 확대 등 일련의 조치가 이어지며, 일본은 점진적으로 군사적 제약을 해소해왔다.
◆ 동북아 안보 지형에도 파장 예고
전문가들은 이번 계급 명칭 개편을 일본의 '보통국가화'가 가속화되는 징후로 평가한다. 군사 용어와 제도를 국제 기준에 맞추는 일은 단순한 외형 정비가 아니라,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체질 전환'을 위한 밑작업이기 때문이다.
헌법 개정이라는 정치적 고비를 넘지 않고도, 일본은 제도와 행정 개편을 통해 사실상 정상 군대를 갖춘 국가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동북아 안보 지형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예고한다. 한국과 중국, 러시아가 각각 군사적 대응 태세를 강화하는 가운데, 일본의 군사력 증강은 지역 내 군비 경쟁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자위대의 계급 명칭 변경은 표면적으로는 사소한 제도 조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전후 일본이 스스로 걸어온 평화주의의 껍질을 조금씩 벗겨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언어를 바꾸고, 조직 체계를 바꾸며, 국민 인식을 바꾸는 일, 바로 그것이 일본식 '보통국가화'의 방식이다.
평화헌법은 여전히 일본의 최상위 규범으로 남아 있지만, 그 안에서 전쟁이 가능한 국가를 만드는 실질적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이름은 여전히 '자위대'이지만, 그 실체는 점점 보통국가의 '군대'에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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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위대 행사에 참여중인 자위관들 [사진=뉴스핌DB] |
goldendo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