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역풍 우려해 속도조절해온 입장서 선회
위험 원천차단 의지...여론·법조 분위기 고려
                        
                        [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이재명 대통령 재판 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국정 안정법)' 추진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달 내 처리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여론의 역풍을 우려해 속도 조절을 해 온 민주당이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이다.
결정적 계기는 대장동 사건 1심 선고였다. 대장동 일당에 대해 전원 중형이 선고된 것을 계기로 야당이 이 대통령 재판 재개 총공세에 나서자 이를 들고 나온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이 지난달 국감에서 "(재판 재개가)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자 화들짝 놀라 법안 처리를 만지작거리던 터였다. 상황이 녹록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자 여론의 역풍을 감수하고라도 재판이 재개되는 위험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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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남=뉴스핌] 김학선 기자 = 제80차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으로 출국하는 이재명 대통령이 22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를 향해 이동하며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2025.09.22 yooksa@newspim.com | 
현재 이 법안은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 있다. 언제든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다.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처리할 수 있다. 처리를 망설이는 이유는 여론 역풍을 우려해서다.
대선 직전인 지난 5월 법사위까지 일사천리로 이 법안을 통과시켰던 민주당이 막판 본회의 처리를 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법원이 스스로 이 대통령에 대한 모든 재판을 중단한 상황에서 대선 여론에 악영향을 미칠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 여야의 유무죄 주장 근거는 = 민주당은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재판과 관련해 이 대통령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무죄의 근거로 드는 판결문 내용은 "법원은 '성남시장(이 대통령)은 유동규 등과 민간업자의 유착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수용 방식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대목이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31일 1심 판결에 대해 이 내용을 예시하면서 "동 사건에서 배임으로 기소된 이 대통령은 분명히 무죄"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개발업자와의 유착 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었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유동규 전 성남시 도시개발공사(도개공) 본부장과 민간업자의 유착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뤄진 결정인 만큼 배임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판결문의 유리한 대목만 뽑아온 것이다. 불리한 부분은 야당이 적극 인용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유죄의 근거로 드는 내용은 판결문 중 '성남시 수뇌부의 결정하에 이루어진 일련의 부패 범죄'라는 것과 '유 전 본부장은 이재명 당시 시장에게 직접 보고했고, 대장동 개발은 시장의 주요 공약 이행 업무였다'는 대목이다.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당시 이재명 시장으로 연결되는 권력 배임 범죄의 구조였음을 사법부가 사실상 확인한 것"이라며 "대장동 사업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사법부가 분명히 짚은 것"이라고 했다. 성남시의 수뇌부는 당연히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라는 것이다. 유 전 본부장은 중간 과정의 조율자에 불과했고, 최종 결정은 시장이 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주장대로 이 대통령이 무죄라면 재판을 재개하면 될 일이라고 공세를 편다. 주진우 의원은 "민주당 해석대로라면 대장동 사건을 다루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 재판장이 '이재명 무죄'를 선고할 것이 확실한데 왜 재판 재개 신청을 안 하냐"고 따졌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공교롭게도 대장동 사건 관련 공범들이 검찰 구형량을 넘어서는 중형을 선고받자, 민주당은 두 가지 모순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무죄라면 필요하지 않을 법안을 굳이 추진한다는 점에서, 민주당 스스로 이 대통령의 유죄를 확신하고 있다는 방증이 된다"고 했다.
◆ 민주 법안 처리 밀어붙일까 = 민주당이 법안 처리를 공식화했다.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이 대통령이 무죄라고 주장하면서 법안은 처리하겠다는 다소 모순적인 상황이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2일 기자 간담회에서 "이제 사법 개혁 공론화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라며 "이른바 재판 중지법에 대한 논의도 불가피한 현실적 문제가 됐다"고 했다. 이 법은 대통령 재임 동안 형사 재판을 중지하는 내용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 등 이 대통령에 대한 모든 사건이 중단된다.
민주당 지도부는 재판 중지법 처리에 대해 '개별 의원 차원'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당 차원의 추진에 거리를 둬온 것이다. 개인의 재판을 막기 위한 과잉 법안이라는 비판과 이에 따른 역풍을 우려해서였다.
이런 입장이 대장동 1심 선고를 계기로 확 바뀐 것이다. 박 수석대변인은 "국민의힘이 이 대통령에 대한 5대 재판을 개시하라고 군불을 때니 민주당이 끓지 않을 수 없다"며 "이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처리를 기다리고 있는 법 왜곡죄와 국정 안정법(재판 중지법)을 최우선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원론적이지만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했다. 그는 재판 중지법을 '국정 안정법' '헌법 84조 수호법'으로 부르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반발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선출된 권력이 임명된 권력보다 더 상위에 있다는 반헌법적 발상 하에 법을 만들어 재판을 계속 중지하겠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라며 "이 대통령의 재판은 재개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곽규택 원내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관련 민간업자 1심 (유죄) 판결이 나온지 이틀 만에 민주당이 '재판 중지법'과 '배임죄 폐지'를 공식 의제로 끌어올렸다"라며 "배임죄 자체를 없애 이 대통령 재판을 원천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며, 명백한 '정치 방탄 입법'이자 사법 절차에 대한 노골적 개입"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은 반반이다. 이미 이 대통령에 대한 5개 재판은 모두 중단된 상태다. 재판부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런 상황에서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내년 2월 법관 인사가 예정돼 있는 만큼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위험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고민은 결심과 시점이다. 내년으로 넘어가면 6월 지방선거에 악재가 될 수 있다. 어차피 여론의 역풍은 불가피하다. 처리할 거면 연내 처리가 낫다는 판단을 했음 직하다. 법안 처리를 공식화한 이유다. 그렇다고 당장 처리할지는 좀 더 고민할 것 같다. 일단은 여론 동향과 사법부의 분위기를 살필 것으로 보인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와 한미·한중 정상회담과 주가 급등으로 모처럼 탄력을 받은 국정 동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어서다.
한편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3일 오후 브리핑을 통해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 개혁에서 재판 중지법을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강 실장은 "대통령을 정쟁의 중심에 끌어넣지 말아 달라"고 했다. 대통령실이 제동을 걸고 나섬에 따라 당의 법안 처리 입장은 백지화됐다.
leejc@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