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11일(현지시간) 주요 정책 금리 동결을 발표하면서 "여전히 불안정한 세계 무역 정책 환경으로 인플레이션 전망은 평소보다 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ECB 통화정책위원회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유로화 강세는 예상보다 인플레이션을 더 낮출 수 있다"며 그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관세 인상으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수출 수요가 줄고 (중국 같은) 과잉 생산 능력을 가진 국가들이 유로존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경우 인플레이션은 더욱 낮아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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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사진=로이터 뉴스핌] 2024.06.07 mj72284@newspim.com |
ECB는 이날 예치금리를 연 2.0%로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레피금리(Refi·RMO)와 한계대출금리도 각각 2.15%, 2.4%로 제자리걸음했다.올 들어 지난 1월과 3월, 4월, 6월 등 네 차례 연속 금리를 내린 뒤 지난 7월에 이어 두 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했다.
ECB는 성명에서 "현재 물가상승률이 중기 목표치인 2.0% 수준"이라고 했다.
실제로 8월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은 전년 동기 대비 2.1%를 기록했다. 7월에 기록했던 2.0%에 비해서는 0.1%포인트 높아졌지만 ECB가 목표로 하는 2.0%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금리 결정이 "만장일치로 이뤄졌다"고 전했다.
유로존의 향후 물가 전망도 안정적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평균 인플레이션은 2.1%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내년에는 1.7%, 2027년에는 1.9%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6월 때 전망은 올해 2.0%, 내년 1.6%, 2027년 2.0%였다.
전문가들은 ECB가 당분간 금리 인하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이먼 댄구르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런던 고정수익 거시전략 책임자는 ""ECB는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고 있으며 무역 역풍과 목표치에 못 미치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보다 명확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며 "하방 위험을 감안할 때 오는 12월에 한 번 금리 인하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인하를 하지 않을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마크 월 도이체방크 유럽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해와 내년 인플레이션 전망은 소폭 높아졌지만, 내년과 내후년 수치가 2.0%를 밑돌 것으로 예상됐다"며 "목표치 하회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통화정책에 다소 비둘기파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ECB는 2027년 수치에 대해 성급히 판단하지 않고 있으며 금리 동결 기조는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이린 라우로 슈로더 유로존 이코노미스트는 "오늘 ECB는 완화 사이클이 끝났다는 우리의 견해를 확인해 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라가르드 총재도 "디스인플레이션 과정은 끝났다. "우리는 계속해서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내수 수요의 회복력 덕분에 올해 상반기 경제는 누적 기준으로 0.7% 성장했다"면서 "하지만 관세 인상과 유로화 강세, 글로벌 경쟁 심화는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성장을 저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역풍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내년에는 약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CB는 이날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6월 0.9%에서 이번에 1.2%로 0.3%포인트 높였다. 내년은 1.0%로 0.1%포인트 낮췄고, 2027년 전망치는 1.3%로 변동이 없었다
그는 "경제 성장에 대한 위험은 더 균형이 잡혔고, 최근 무역 협정 타결로 불확실성이 줄었지만 무역 관계가 다시 악화되면 수출이 침체되고 투자와 소비가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금융시장 심리가 약화되면 자금 조달 조건이 더욱 엄격해지고 위험 회피 경향이 커지며 성장이 약해질 수 있는 반면 예상보다 높은 국방 및 인프라 지출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개혁이 함께 이루어지면 성장이 촉진될 수 있다고 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자신이 매파도 비둘기파도 아닌 부엉이파라고 말했다. "360도는 아니더라도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넓은 시야로 볼 수 있기를 원한다"며 "(금리결정 회의) 테이블에 앉아 있는 모든 동료들의 의견을 들은 후에야 결론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적절한 통화 정책 입장을 결정하기 위해 회의마다 데이터에 기반한 접근 방식을 따를 것"이라며 "특정 금리 경로를 미리 확정하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도 모든 수단을 조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