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최근 일본 매체의 보도와 국내 통계에 따르면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결혼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2024년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결혼 건수는 전년 대비 40% 증가한 1176건을 기록했다. 최근 10년 사이 최고치다. 2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다.
한일 관계에 새로운 연결고리가 생겨난 것이다. 여기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문화와 경제가 빚어낸 조용한 변화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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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겨울연가'로 시작된 한류는 K팝과 K드라마를 거쳐 일본 젊은 세대의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여기에 최근 한국의 1인당 GDP가 일본을 추월하며, 과거 일본 남성과의 결혼을 선택하던 한국 여성의 흐름이 반전됐다.
이제는 일본 여성들이 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문화적 친밀감과 경제적 안정성을 이유로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도쿄의 한 웨딩 업체 대표는 "K드라마 속 주인공 같은 로맨스를 현실로 꿈꾸는 일본 예비신부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한다.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서로 다른 국가와 문화를 잇는 민간 외교이기도 하다. 부부와 가족이 함께 겪는 언어, 음식, 명절, 자녀 교육은 교과서나 뉴스로는 얻을 수 없는 이해를 키운다.
소셜미디어와 국제결혼 커뮤니티, 웨딩 플랫폼을 통한 소통이 늘고, 결혼을 계기로 가족 간 왕래도 활발해지고 있다. 설화 속 견우와 직녀를 이어준 오작교처럼, 한남일녀 커플은 양국 간 감정의 강 위에 사랑과 이해의 다리를 놓고 있다.
정치·외교 현안으로 인한 갈등이 반복되는 한일 관계에서, 이 커플들의 존재는 감정의 벽을 낮추고 신뢰의 토대를 만드는 힘이 있다. 이들의 자녀 세대는 자연스럽게 두 문화를 배우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양국 사회·문화 안정과 우호 증진에 기여할 것이다.
이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선 양국 공동 언어교육 프로그램, 다문화가정 지원 예산 확대, 장기 비자 제도 완화 등 실질적인 제도 지원이 필요하다. 편견 없는 사회 분위기와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된다면, 이 오작교는 더 튼튼해질 것이다.
한남일녀 커플의 증가는 단순한 혼인 통계가 아니다. 역사적 갈등을 넘어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여는 작은 다리다. 그 다리가 하나씩 놓일 때마다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고, 마침내 양국 관계도 새로운 계절을 맞게 될 것이다.
사랑과 이해가 자라난 생활 속 공간에서, 정치가 미처 만들지 못한 진정한 우호의 길이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goldendo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