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금기 깬 마켓타이밍
7월30일 국채발행계획 발표
불확실성·변동성 상승 경고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의 국채 운용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른바 '마켓 타이밍'을 공개적을 언급, 역사적인 금기를 깬 움직임에 월가는 놀랍다는 표정이다.
지난 수 십년 동안 미국 재무부는 장단기 국채 발행 물량의 구성을 의도적으로 지루하게 유지했다. 금리 상황에 따라 발행 물량을 조절해 이자 비용 측면에서 유리한 '타이밍'을 잡을 수 있지만 이 같은 시도가 투기 움직임을 부추겨 금융시장 전반의 리스크를 높일 수 있기 때문.
트럼프 2기는 사뭇 다르다. 7월28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스스로를 '최고의 채권 판매자'라고 지칭하는 베선트 장관은 공개적으로 "금리가 내려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장기 국채 발행 물량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마켓 타이밍 전략을 동원하겠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내년 사임할 때까지 만기 6~9개월의 단기물 국채만 발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금리 수준이 높은 상황에 장기물 국채를 발행, 높은 이자 비용에 묶이는 상황을 피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는 지난 6월 "(국채 발행을) 아주 단기에 집중할 것"이라며 "이 사람(파월 의장)이 물러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금리를 크게 내린 후에 장기물 국채를 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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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
시장 전문가들이 재무부의 국채 발행 형태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부채 규모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재정 적자는 연간 2조달러에 달하는 실정.
재무부는 7월30일 국채발행계획(QRA)을 공개할 예정이다. 대다수의 애널리스트는 재무부가 "2~30년 만기 국채를 현재 수준으로 적어도 향후 몇 분기 동안 발행할 것"이라는 문구를 계속 적시할 것으로 예상한다.
발행하는 국채의 만기 선택은 상충하는 결과를 수반한다. 단기물의 경우 이자 비용이 낮다. 투자자들이 장기물일수록 높은 프리미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반면 단기물을 중심으로 국채를 운용할 경우 인플레이션이 반등하고 연준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할 경우 이자 비용이 가파르게 상승한다.
월가는 대체로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에 반색한다. 장기물 국채 공급이 늘어나면 이미 다양한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 추가적인 복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고율의 관세와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 리스크, 여기에 연준의 독립성 문제와 장기 재정 전망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맞물리면서 투자자들은 10년 이상 장기물 국채에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는 움직임이다.
주택 모기지부터 기업들의 차입까지 민간 부문의 이자 비용이 장기물 국채 수익률과 강한 연결고리를 형성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단기물 국채에 무게중심을 두는 전략이 경제에 덜 파괴적일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데도 트럼프 행정부의 국채 운용을 놓고 월가가 시끌시끌한 이유는 단기물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마켓 타이밍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과거 행정부가 우려했던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 차입 결정의 판돈을 높이고 투자자들의 예상과 실제 정부의 결정이 어긋날 경우 과격한 매도세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다.
과거 예측 가능했던 상황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금리를 보고 전략적으로 국채를 발행하겠다는 입장이고, 기대치를 가지고 시장에 대응하는 투자자들로서는 불확실성이 높아진 셈이다. 예측이 빗나갈 때 투자자들 사이에 과격한 대응에 나서면서 국채시장 전반에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재무부에서 일했던 아마르 레간티 파트포드 펀드 전략가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장관에게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대로 정책을 소통할 권한이 있지만 문제는 최종 목표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라며 "과거 정부는 말을 아끼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 당시 재닛 옐런 전 재무장관은 부채 관리에 대해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청문회에서 관련 질의를 받았을 때 그는 "기본 원칙을 고수할 뿐 마켓타이밍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채 발행은 정기적이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단기물 국채 발행 물량을 늘린 데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던 베선트 장관은 장기물 발행을 확대하는 시기에 대한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았지만 이와 무관한 자리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기준금리 인하보다 장기물 국채 수익률을 낮추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해 오히려 장기물 발행 축소 전망을 부추겼다.
일부에서는 현재 상황이 과거 클린턴 행정부 초기인 1993년과 흡사하다고 주장한다. 당시 경제 고문들은 재정 적자를 줄이고 국채 발행을 전반적으로 축소해 장기 금리를 떨어뜨리는 데 무게를 뒀다. 아울러 단기물 국채 비중을 늘려 이자 비용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취했다.
이에 대해 뉴욕연은의 이코노미스트로 활약했던 케네스 가베이드는 "당시에도 작지 않은 논란이 일었지만 시장에 충분한 사전 신호를 줬고, 결정적으로 시장 상황에 바뀌더라도 정책을 뒤바꾸지 않겠다는 발언으로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정책 기조를 바꿀 수는 있지만 이리저리 흔들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shhw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