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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 스토리](상) 천하람 "법대서 사회 바꾸는 입법가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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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8일 방송된 정치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뉴스핌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어린 시절의 꿈과 정치 입문 계기 과정을 소개했다. 해당 방송은 지난달 23일에 촬영됐다.

천 대표는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어린 시절 리더십이 있고 회장을 자주 했다"며 "누가 '너 꿈이 뭐야?'라고 하면 '대통령'이라고 답하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면서부터 '법 한 줄이라는 것이 사람의 삶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법률가도 좋지만 입법을 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에 변호사나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이 많은 게 그런 비슷한 생각들이라고 본다"며 "법을 해석하고 논쟁을 펼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이것을 어떻게 바꾸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뀔까를 상상하는 건 훨씬 더 재미있는 일"이라고 했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 [사진=뉴스핌 DB]

1986년 대구에서 태어난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고려대 법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최연소 대한변호사협회 제2법제이사, 대법원 사법정책 분과위원 등을 역임했다.

이후 천 대표는 정치 단체 '젊은보수'를 창립하며 정치에 입문, 2020년 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미래를향한전진4.0이 추진한 보수대통합에 합류했다.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순천시·광양시·곡성군·구례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23년 3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14.98% 득표로 최종 3위를 기록했고, 같은해 12월에는 국민의힘을 탈당한 뒤 이준석 신당 창당에 합류했다. 이후 지난해 4월 22대 총선에서 개혁신당 비례대표로 당선, 국회에 입성해 개혁신당의 원내대표가 됐다.

다음은 천 대표와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 기자) 오늘은 개혁소장파의 중심인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님 모시고 이야기 한번 나눠보겠습니다.

요즘 참 다들 유독 연말 느낌이 안 나는 해라고 말씀들 많이 하시는데 대표님은 어떤 연말 보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천하람 원내대표, 이하 천 대표)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단어가 비상 대기예요. 비상 대기. 그러니까 연말이지만 너무 이렇게 지역에 많이 가거나 너무 술자리 많이 하거나 아니면 뭐 해외를 가거나 이런 거 하지 말고 국회에 가능하면 언제든지 올 수 있게 비상 대기해라 이런 얘기들을 굉장히 많이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저도 연말 느낌은 좀 덜 나고 있고요. 그럼에도 지금 국회의장을 포함한 많은 분들이 모임은 좀 많이 했으면 좋겠다. 요즘 자영업 경기가 너무 안 좋으니까. 그래서 저도 모임은 가는데 가도 이렇게 너무 이렇게 하기보다는 좀 적절하게 하고 있고요.

그래도 저는 다행인 거는 제 아이가 아직 9살이에요. 그래서 크리스마스 느낌을 집에서는 조금 내고 (아이도) 빨리 막 크리스마스 선물 내놓으라고 그러고 있어가지고

-(최연혁 교수, 이하 최 교수) 트리는 만들으셨어요?

▲(천 대표) 예 있습니다. 산타를 믿는 둥 마는 둥 지금 하고 있는데 뭐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신 기자) 선물은 어떤 선물 준비하셨나요?

▲(천 대표) 레고 아마 그런 거 하지 않을까?

-(신 기자) 개혁신당이 좀 게임 관련 의정 활동도 많이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좀 개인적으로 대표님께서도 게임에 대해 좀 취미가 있으신지. 아니면 뭐 여가 시간이 주어지면 다른 취미 또 하시는 게 있으신지

▲(천 대표) 저는 게임을 진짜 잘 못합니다. 재능이 없어 가지고 스타크래프트 같은 그런 거나 뭐 리오브 레전드 같은 것도 할 줄은 아는데 스타크래프트도 꽤 그래도 제 세대는 누구나 다 좀 잘하니까 그건 그렇다 하시는데 요즘 유행하는 게임들에서는 굉장히 젬병이고요.

삼국지 시리즈에도 최근 것들은 잘 못하고 너무 막 점점 복잡해져가지고. 옛날 것들 옛날 것들을 요즘도 가끔 합니다. 요즘도 삼국지 5 이런 거, 진짜 옛날 거. 제가 어릴 때 하던 거 그런 거는 좀 합니다. 요새는 애가 좀 커서 같이 만화빵 좀 많이 가고요. 그 외에는 그냥.

-(신 기자) 운동이나 이런 것도 따로 하시나요?

▲(천 대표) 아 저 운동은 거의 못 하고요. 옛날에 농구를 그래도 (제가) 키가 좀 크다 해서 좀 열심히 했었는데. 별로 이렇게 운동 신경이 썩 좋지 않고 그냥 그렇습니다.

-(신 기자) 대구에서 목사님이신 아버지 밑에서 자라셨다고 들었는데 좀 어린 시절 세상을 바꾸는 상상을 즐겨하셨다고

▲(천 대표) 그건 너무 미화한 얘기들이고요. 그러니까 저는 정확히 얘기하면 저희 아버지가 목회를 하시겠다고 한 게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처음에는 목사님이 아니셨어요. 원래 서점을 하시다가 대구에서 갑자기 이제 신학교를 가시고 이렇게 했는데.

어릴 때는 저는 그냥 평범한 가족. 그냥 무난하게 이렇게 했었고 초등학교 때를 돌이켜보면 좀 약간 싸가지가 없었다고 해야 될까요? 되게 잘난 맛에 살았었어요. 그래서 공부도 잘하고 제가 또 어릴 때부터 덩치가 좋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약간 리더십이 있는 형태로 컸었어요. 자꾸 회장하고 막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누가 '너 꿈이 뭐야' 하면 약간 재수 없게 "대통령이요" 하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때는 어린 마음에 그냥 남들보다 잘 나가고 싶어서 또 남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어서 그런 얘기를 했었다고 하면은 그래도 조금 크면서부터는 이제 그럼 뭐 이게 권력을 잡는 게 권력을 휘두르기만을 위해서는 아니라는 걸 이제 점점 깨닫게 되니까 그때부터는 이제 조금 그럼 세상에 뭐가 문제일까. 그러면서 제가 조금 자유 같은 걸 많이 생각하게 된 게 제 또래들은 공감하시겠지만은 두발 검사를 제 때만 해도 되게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제가 중학교 때 반항심이 막 올라올 때 '내 머리를 내가 기르는데 남한테 무슨 피해를 준다고' 하면서 두 발 검사를 굉장히 열심히 피해 다녔습니다.
그래서 이제 머리가 꽤 길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보통 우리 옛날에 보면 학교 들어오면서 선생님 잡잖아요. 제가 그게 싫어가지고 거의 한 달 가까이를 1교시를 안 들어갔어요.

1교시 끝나고 막 담 넘어가지고 들어가고 좀 그러면서 그때부터 약간 이게 왜 이런 식의 권위주의적인 풍토. 왜 나의 자유와 권리를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규칙으로 제약하려고 하지 그러면서 사회 비판적인 사고를 한창 클 때는 많이 했던 것 같고요. 그 이후에 워낙 많이 있으니까 너무 길어지니까.

-(최 교수) 부모님이 서점을 운영하시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았겠습니다.

▲(천 대표) 근데 그때 동시기에 저희 이모가 만화책 대여점을 했어요. 서점과 만화책 대여점이면 애들은 당연히 만화책 대여점이 승리했기 때문에 어렸을 때 그냥 책도 조금은 봤지만 만화책을 진짜 많이 봤었고요. 그러면서 되게 재미있는 학창 생활을 보냈었습니다.

-(신 기자) 그렇게 보내시면서도 또 공부도 잘 하시고 이제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신 뒤에 또 변호사로 활동하셨잖아요. 그럼 어렸을 때부터 꿈이 법조인 쪽으로도 있으셨는지

▲(천 대표) 이게 뭐 너무 뭐 과하게 뭐 그런 건 아닌데요. 그러니까 제가 사실은 중간에 미국을 잠깐 다녀왔습니다.
미국을 다녀왔는데 그때 이제 미국의 아이다호주라는 데에 갔어요.
근데 거기가 아주 시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체 마을이 한 6000명이고 제가 알기로 아이다오 주가 한반도보다 더 큰가 그런데 인구가 90만인가 그럴 거예요.
그러니까 정말 시골이죠. 거기에 인구 6000명인 작은 도시에 갔었는데 미국은 대학 입시를 하는 데도 보면은 그러니까 그 고등학교의 아웃풋이 되게 중요해서 거기서 좋은 대학을 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저도 돌아와서 복학을 하려고 보니까 이게 이제 한 1년이 아니라 2년 이상을 꿇어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그냥 이럴 바에는 검정고시 보고 재수 종합반 다니겠다 해서 검정고시 보고 재수종합반을 다녔고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다행히 운 좋게 제가 수학을 그렇게 썩 잘하는 편이 아닌데 그 애 수능이 수학이 좀 쉽게 나와가지고 운 좋게 대학을 그래도 잘 왔고.

말씀하신 것 중에저의 장래 희망은 어릴 때부터 계속 정치하고 싶어 했었어요. 근데 정치인으로 하기에는 저희 집안이 아주 가난한 건 아니지만 아주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어서 어쨌든 직업이 있어야 뭘 하니까 그래서 제가 외교 쪽을 할지 법학 쪽을 할지를 조금 고민하다가 그래도 좀 법용성 있게 정치하기에는 변호사만한 직업이 없을 것 같다 해가지고 사실은 처음부터 좀 정치를 할 목적으로 변호사가 된 게 좀 있습니다.

-(최 교수) 네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게 어릴 때라면 어떤 계기가 없이 사실 힘들었을 텐데 어떤 상황이 있었습니까? 한국 정치적 상황에 맞물려서 말이죠.

▲(천 대표) 굳이 정말 어떤 계기가 있다면은 그때 말씀드렸던 두 발 검사에 저항했던 것들 그게 그나마 제가 좀 뚜렷하게 '이거 시스템이 잘못됐다' '이 규칙을 바꿔야 된다'라고 느꼈던 시기였던 것 같고요.

근데 그 직후에 제가 또 미국 생활하고 돌아와서 대학을 가고 하면서부터는 오히려 법학을 좀 공부하면서부터 '법 한 줄이라는 것이 사람의 삶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는구나'라는 것을 오히려 법대에서 공부하면서부터 내가 법률가도 좋지만 입법을 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거는 대학 들어가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최 교수) 네 법을 공부하시면서 뭐 법관이나 검사나 변호사가 아니라 법을 만드는 사람이 되야겠다는 생각을 하신 게 특별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긴 합니다.

▲(천 대표) 근데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나라에 변호사나 법조인 출신의 정치인들이 많은 게 저는 그런 비슷한 생각들이 있다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있는 법을 해석하는 걸 가지고 논쟁을 펼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은 이것을 어떻게 바꾸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뀔까를 상상하는 거는 훨씬 더 재미있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게 어떤 의미에서 좀 더 재미있기 때문에 그리고 제가 상상하는 거를 좀 즐겨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법조도 법조지만은 정치를 해야겠다라고 점점 더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정치는 사람들이 취미로라도 유튜브도 보고 뉴스도 보고 하지만은 법 공부 내지는 해석론을 취미로 하시는 분은 없잖아요. 그런 거 보면 정치가 훨씬 더 재미있는 영역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 기자) 정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시게 된 게 2019년에 젊은 보수라는 단체를 설립하시면서 그랬다고 들었는데 당시에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조국 사태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천 대표) 정확히 조금 말씀드리면 제가 그때 당시에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제가 법제이사라는 걸 그때도 했었습니다. 주요한 특히 기본법들 예를 들면 민법을 바꾼다 민사소송법을 바꾼다 이런 거 할 때는 국회에서 법안을 바꿀 때 대한변호사협회에다가도 법률 검토 의견을 요청합니다.

'변호사들이 봤을 때 이렇게 바꾸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 그거를 정리해서 보내는 역할을 제가 그때 많이 했고 그러다 보니까 국회의원들도 많이 만나고 국회 토론회도 많이 불려다니고 그런 걸 자연스럽게 했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가 본격화되는 상황이었고 그때 조국 사태도 터지면서 욕심과 실제 소신 같은 게 약간 겹쳤습니다. 소신의 면에서는 조국 사태를 보니까 더불어민주당도 별로 나을 게 없다.

뭔가 새로운 정치 세력이 필요할 것 같다라는 소신도 있었고 그거와 또 맞닿은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생기니까 '야 3%만 넘기면 신생 정당 해볼 만한 거 아니냐' 해서 그때 신생 정당들이 막 우후죽순 물밑에서 난리였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게 조정훈 의원의 시대 전환 같은 거였고 조성은 씨가 하던 뭐도 있었고 김재섭 의원이 준비하던 것도 있었고 막 난립했었는데 저도 그중에 한 군데 들어갔다가 거기에서 제가 후발주자로 들어갔는데 약간 리더 비슷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처음에 들어간 그룹은 약간 초당적 그룹이었는데 거기서 보수 색깔이 조금 강한 친구들이 따로 나와서 젊은 보수라고 하는 그룹을 만들었고 이게 정당으로 이제 좀 만들어보자라고 시작하는 한 사람으로 치면 한 300명 정도 모였을 때였던 것 같아요.

그때 이제 미래통합당이 이제 보수 대통합을 한다고 '야 우리는 다 통합을 하려고 그러는데 너는 무슨 얼어죽을 젊은 보수를 새로 만들고 앉아 있냐 그냥 당에 들어와서 같이 해보는 게 어떻겠냐'라고 그때 당시에 정병국 의원님이 저를 리크루팅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때 해보니까 제 힘으로는 사실은 당을 만들기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그때 완전 정치 신인이고 알음알음으로 모으는 것도 한계가 있지 총선까지 5000명 모을 수 있을까. 제대로 5천 명 모은 다음에 이거 쉽지 않겠다라는 판단을 했고 그때 그룹의 양해를 구하고 '그럼 난 미래통합당 들어가겠다' 했을 때 이제 거기서도 꽤 상당수는 저를 엄청 비난을 했고. '같이 새로운 정당 해보기로 해놓고 왜 홀라당 거기 들어가냐'(는 비난도 있었습니다).

근데 이제 일정한 부분에서는 현실적으로 '그래 이거 우리도 해보니까 어쨌든 기성 정당의 틀 안에서 활동을 좀 해야 될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뭘 하든'(이란 생각을 했고) 어떤 나름의 안에서의 이제 의견 충돌 그다음에 분화 이런 것들을 겪어서 미래통합당이 출범할 때 저도 그중에 정당은 아니었지만 작은 하나의 세력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합류를 하게 됐습니다.

-(신 기자) 꿈이 줄곧 정치 쪽이라고 하셨지만 제가 찾아봤을 때는 우리나라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서도 근무를 하셨던 걸로 봤는데 이렇게 좀 좋은 이력을 두고 정치라는 낯선 시작을 할 때 두려움이나 걱정은 없으셨는지

▲(천 대표) 제가 로스쿨 1학년 1학기 때 학생회장 같은 걸 했습니다. 거기 안에서 그리고 또 제가 예나 지금이나 설레발 치는 걸 좋아해가지고 전국 로스쿨 학생회에 이제 연합 같은 걸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학교에서는 '아 쟤는 약간 정치하는 애' '그냥 원래 저런 거 하는 애' 이렇게 돼 있어서 교수님들도 저를 조금 '쟤는 어린 애가 로스쿨 와가지고 뭐 자꾸 저런 외부 활동만 하고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이렇게 자꾸 수업도 빠지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제가 그때는 좀 독한 마음을 먹고 막 새벽에 일어나서 정말 잠을 몇 시간 못 자도 내가 이런 대회 활동을 하면서도 학업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겠다 그런 오기가 좀 생겨가지고 남들 안 볼 때 몰래 그때 공부를 좀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제가 1학년 1학기 때에 학점이 만점이 나왔어요. 4.5가 나왔어요. 당연히 1등이었고.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도 다 '얘 뭐지 얘는 맨날 나가서 사람들이나 만나고 전국을 돌면서 학생회나 모으고 있고 이런 줄 알았는데 대단하네' 이렇게 약간 그런 게 있었고. 그러니까 저도 어쨌든 사람들이 인정도 해주고 학점 잘 받아놓으니까 다음 학기에 학점 망치기도 조금 아깝고 이래가지고 열심히 했어요.

하다 보니까 이제 졸업하기 전에 김앤장 쪽에서 연락이 와서 우리 사무실로 좀 와봐라 해서 인턴을 하는 걸 보고 채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라고 했고 그래서 이제 그래서 채용하겠다라고 했는데

김앤장 출신이라고 하면 남들이 봤을 때 바보는 아닌 게 인증이 되기 때문에 저는 감사한 일이지만 사실 오래 다닐 생각도 없었고 실제로 오래 다니지도 않았기 때문에 약간 좀...아무튼 그렇게 됐습니다.

-(최 교수) 어렸을 때 특별한 계기는 없었지만 정치에 관심이 있었고 그러고 법을 공부하면서 입법자가 한번 돼보겠다 하는 생각이 있었고요. 항상 정치하고는 이렇게 맥이 좀 있었습니다. 다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조직을 하는 모습을 보니까 사실은 정치인들이 이 조직력 강화. 조직력을 갖춘다든지 조직력이라는 게 결국은 설득의 연속일 것이고 또 미팅과 미팅 연속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함께 어떤 공동의 목표를 나가는 그런 과정인데 사실은 그게 리더십이거든요.

▲(천 대표) 제가 성적이 운 좋게 잘 나와서 거기서 뽑아주지 않았다면은 원래 제 생각은 변호사가 되고 보좌진으로 이제 정치계에 들어오든 아니면 그냥 이제 개업을 해 놓고 방송에 많이 나가는 변호사가 아마 처음부터 그렇게 갔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런 활동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데 이제 김앤장에서 운 좋게 뽑아줘서 거기 잠깐 갔다가 결국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거를 하면서 살게 되기 때문에 약간 결국 그런 쪽으로 오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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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웨스팅하우스 지분투자 추진 [서울=뉴스핌] 이나영 기자 설희 인턴기자= 정부가 미국 내 대형 원전 건설과 미국 원전 원천기술 기업 '웨스팅하우스' 지분 투자를 대미 전략투자 후속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국내 원전 상장사의 실제 사업 참여 범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웨스팅하우스 지분율과 신규 원전 노형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만큼 시장에서는 지분 투자 자체보다 국내 업체가 설계와 설계·조달·시공(EPC), 주기기와 보조기기에서 얼마나 구체적인 사업권을 확보하는지가 향후 수주를 가를 변수로 꼽힌다. ◆ 지분보다 사업권…韓 역할 명문화 관건 23일 산업통상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 건설을 후속 대미 투자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다. 웨스팅하우스 지분은 미국 측과 5~10% 수준에서 협상 중이다. 미국 신규 원전 8기 가운데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6기와 한국이 개발한 APR1400 2기로 구성하는 방안은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 [AI 일러스트=설희 기자] 증권가에서는 지분율 자체보다 향후 미국 원전 사업에서 국내 기업이 실제로 확보할 사업 범위를 핵심 변수로 보고 있다. 특히 AP1000 사업에서는 과거 공급 이력과 웨스팅하우스와의 기존 협력관계가 신규 수주로 이어지는지가 상장사별 실적을 가를 요인으로 거론된다. 기업별로는 두산에너빌리티가 AP1000 핵심 주기기 공급 실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비에이치아이도 원전 보조기기(BOP) 공급 이력을 갖고 있다. 현대건설은 웨스팅하우스와 설계·조달·시공(EPC)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어 향후 미국 원전 사업 구체화 과정에서 실제 수주로 연결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2027년이 원전투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구간"이라고 평가했다. 장 연구원은 미국 에너지부의 공급망 금융지원과 한국의 대미 원전 투자 구체화가 맞물리면서 미국 원전 관련 프로젝트의 진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 두산에너빌리티, 美 AP1000 주기기 공급…추가 물량 기대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AP1000 공급망에서 직접적인 납품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보글과 V.C.서머 AP1000에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를 공급한 경험이 있어 신규 미국 원전 사업에서도 기존 공급망을 기반으로 한 추가 수주 가능성이 거론된다. 김태형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한국전력의 웨스팅하우스 인수 시 AP1000 사업에서도 원자로용기(RV)·증기발생기(SG) 외 추가 공급 범위(Scope) 발주를 기대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미투자 자금 집행에 따라 공기 단축 위해 동사가 생산하는 장납기 품목에 대해 선발주를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본사 전경. [사진=두산에너빌리티]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는 제작기간이 긴 핵심 주기기다. 미래에셋증권은 대미 원전 투자 과정에서 기존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뿐 아니라 추가 기자재까지 두산에너빌리티의 공급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정혜정 KB증권 연구원도 미국 에너지부(DOE)의 금융지원으로 장납기 기자재 발주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봤다. 정 연구원은 "지난 6월 DOE가 발표한 장납기 기자재 조달 대출 프로그램에 따라 최종투자결정(FID) 이전 주요 기자재 발주가 가능해졌다"며 "AP1000 핵심 장납기 기자재 공급업체인 두산에너빌리티의 수주가 당겨지면서 원전 기자재 생산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특히 KB증권은 향후 가장 먼저 나올 대형원전 기자재 발주 대상으로 웨스팅하우스와 미국 전력사업자가 구성하는 특수목적법인(SPV)의 장납기 기자재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증권가에서는 미국 신규 원전 사업이 구체화될 경우 두산에너빌리티가 다른 원전 밸류체인 업체보다 먼저 수주를 가시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현대건설, 웨스팅과 EPC 협력…美 사업 확대 기대 현대건설은 기자재가 아닌 EPC 분야에서 웨스팅하우스와 직접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 2022년 웨스팅하우스와 AP1000 글로벌 사업 공동 참여를 위한 전략적 협약을 체결하고 향후 프로젝트별 계약을 통해 EPC 분야 우선 참여 협상권을 확보했다. 이후 웨스팅하우스와의 협력은 실제 해외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건설은 2024년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설계계약을 시작으로 슬로베니아 원전 타당성조사, 핀란드 원전 사전업무착수 계약에 참여했으며 미국 페르미 아메리카의 프로젝트 매터도어에서는 기본설계(FEED)를 수행하고 있다. 현대건설과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공동으로 글로벌 확대 추진 중인 대형원전 AP1000 조감도. [사진=현대건설] 증권가에서는 이 같은 파트너십을 현대건설의 미국 원전 진출 경쟁력으로 평가한다.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웨스팅하우스 노형의 경우 벡텔과 함께 핵심 건설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머지않아 원전 영역에서 실질적 수주와 착공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망했다. 배세호 iM증권 연구원은 "미국 에너지부(DOE)의 금융 지원, 웨스팅하우스와 잠재적 파트너들과의 의향서(LOI), 그리고 한국의 대미투자 가능성 등을 감안 시 미국 내 원전 프로젝트가 조만간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 경우 현대건설의 미국 원전 프로젝트 참여 가시성도 보다 분명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김도엽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대형원전은 팀코리아 및 웨스팅하우스 파이프라인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며 "불가리아 AP1000 대형원전은 하반기 중 엔지니어링 서비스 계약(ESC) 2차 계약 체결이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 BHI, 美 AP1000 복수기 공급…BOP 수주 주목 비에이치아이도 미국 AP1000 공급 실적을 갖고 있다. 비에이치아이는 발전용 설비를 설계·제작하는 에너지 인프라 기업으로, 주력 제품인 배열회수보일러(HRSG)와 함께 원자력발전 보조기기(BOP)를 공급하고 있다. 미국 보글과 V.C.서머 AP1000에는 복수기를 공급한 이력이 있다. 원전 BOP는 아직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리딩투자증권이 제시한 올해 2분기 기준 매출 구성은 HRSG가 65%로 가장 높고 보일러 22%, BOP 5%, 기타 8% 순이다. 미국 신규 원전 발주가 본격화될 경우 현재 비중이 낮은 BOP 사업이 추가 성장 축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비에이치아이 로고. [사진=비에이치아이] 한제윤 리딩투자증권 연구원은 비에이치아이의 수주 흐름과 관련해 "연간 신규 수주는 올해도 1조원을 상회할 전망이다"고 분석했다. 올해 상반기 HRSG 신규 수주는 약 5000억원이며, 하반기에도 약 4000억원 이상의 프로젝트가 수주 대기 중인 것으로 추산했다. 한 연구원은 미국 텍사스에서 추진되는 대미 투자 1호 가스복합화력발전 사업과 관련해서도 비에이치아이의 직접적인 수혜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HRSG 8~10기 발주를 가정할 경우 잠재 수주 규모를 약 4000억~5000억원으로 추정했으며 과거 미국 칼파인(Calpine)에 HRSG를 공급한 이력이 있다는 점도 수혜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제시했다. 조재원 키움증권 연구원도 대미 투자에 따른 미국 사업 확대 가능성에 주목했다. 조 연구원은 "미국 시장 진입이 현실화될 경우, 추가적인 멀티플 확장을 기대한다"며 비에이치아이가 미국 사업에 진입할 경우 기존 국내와 아시아 중심의 사업 지역을 북미로 확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winter1004@newspim.com 2026-09-2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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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은, 女공기권총 10m 금메달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한국 사격의 에이스 추가은(임실군청)이 눈부신 총성을 울리며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에 일곱 번째 금메달을 선사했다. 한국 사격이 거둔 첫 번째 금메달이다. 세계랭킹 23위 추가은은 일본 도요타시 아이치 종합사격장에서 열린 여자 10m 공기권총 개인전 결선에서 246.3점을 쏴 셴이야오(중국)를 무려 5.0점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추가은은 고니시 유카리가 2017년 세운 결선 아시아 기록(245.3점)과 팔락(인도)이 항저우 대회에서 세운 아시안게임 기록(242.1점)을 모두 갈아치우는 기력을 발휘했다. 조라나 아루노비치가 세운 세계기록(246.9점)에도 불과 0.6점 모자란 엄청난 기록이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추가은. [사진=대한사격연맹] 2026.09.23 psoq1337@newspim.com 앞서 열린 본선에서도 추가은의 활약은 빛났다. 추가은은 582점(엑스텐 19개)을 기록해 종전 아시안게임 본선 기록을 1점 경신하며 전체 1위로 결선에 올랐다. 김보미(부산시청), 오예진(IBK기업은행)과 함께 나선 단체전에서도 1,730점을 합작해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이 이 종목 단체전에서 메달을 획득한 것은 2010년 광저우 대회 이후 16년 만이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추가은. [사진=대한사격연맹] 2026.09.23 psoq1337@newspim.com 다만 김보미와 오예진은 각각 574점(엑스텐 22개, 20개)으로 10위와 12위를 기록해 8위까지 주어지는 결선행 티켓을 아쉽게 놓쳤다. 두 선수 모두 8위와 1점 차에 불과해 아쉬움을 삼켰다. 홀로 결선 무대에 선 추가은은 흔들림 없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결선 첫 번째 스테이지 첫 발을 10.1점으로 기분 좋게 출발한 그는 네 발을 모두 10점대 언저리에 맞추며 51.8점으로 단숨에 선두에 올랐다. 두 번째 시리즈 초반 주춤하기도 했으나 10.3점으로 마무리하며 청연칭, 셴이야오, 장란신 등을 제치고 1위를 굳건히 지켰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추가은. [사진=대한사격연맹] 2026.09.23 psoq1337@newspim.com 본격적으로 한 명씩 탈락하는 엘리미네이션 스테이지에 접어들면서 추가은의 독주가 시작됐다. 10.1점과 10.7점을 연달아 꽂아 넣은 뒤, 두 번째 시리즈에서는 10.8점과 10.7점에 적중하며 143.9점을 기록해 2위 셴이야오와의 격차를 벌렸다. 세 번째 시리즈가 끝난 뒤 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다른 선수들이 실수를 연발하는 사이 추가은은 더욱 달아났다. 셴이야오에 4.1점 앞선 상황에서 맞이한 마지막 시리즈에서도 10.6점과 9.8점에 적중하며 완벽하게 우승을 확정 지었다. psoq1337@newspim.com 2026-09-2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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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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