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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 스토리](상) 허은아 대표 "국민의힘에 있었다면 탄핵 찬성표 던졌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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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는 지난달 31일 방송된 정치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뉴스핌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만약 제가 국민의힘에 아직 있었다면 저는 분명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을 것 같다"고 밝혔다. 해당 방송은' 지난달 10일에 촬영됐다.

허 대표는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그렇게 하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고, 그게 안 될 것 같으니까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개혁신당에 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딸이 '만약 엄마가 처음에 생각했던 그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정치를 그만 뒀으면 좋겠다'고 계속 얘기를 한다"며 "저는 딸에게 '그 약속은 지키겠다'고 얘기한다. 정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비겁하기 싫다"고 강조했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 [사진=뉴스핌 DB]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난 허 대표는 서울 문창초등학교, 대방여자중학교, 무학여자고등학교를 다녔다. 이후 인하공전 항공운항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 편입 학사 학위를 취득, 연세대학교에서 광고홍보 석사, 성균관대학교에서 대학원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5년간 근무하던 허 대표는 이미지 컨설팅 회사인 '예라고'를 설립해 20여 년간 컨설팅 관련 방송·강연 활동을 이어갔다.

지난 2020년 1월에는 자유한국당 외부 인재로 영입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같은해 4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시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으로 옮겨 비례대표 19번으로 당선됐다.

이듬해 4월 재보궐선거에선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뉴미디어본부장을 역임했으며 2023년에는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경선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그해 12월 국민의힘에서 탈당, 이준석 전 대표가 창당한 개혁신당에 합류했다. 2024년 5월에는 개혁신당 전당대회에서 득표율 38.4%로 당 대표에 당선됐다.


다음은 허 대표와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 기자) 대표님 근황부터 먼저 여쭐게요. 지금 개혁신당 당 대표로 지내신 지 벌써 7개월 가까이 됐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허은아 대표, 이하 허 대표) 원래 차근차근 저는 이제 목표를 향해서 우리 개혁신당의 구조를 만들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시계가 빨라졌어요. 정치 시계가. 그래서 내년에 있을 4월 2일 재보궐 선거를 저희가 준비하면서 재보궐을 중간고사로 생각하고 또 26년도에 지선을 기말고사로 생각하면서 27년도에 대선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지금 뭐 비상계엄이 실패로 돌아가고 난 뒤 지금 탄핵 지금 상황이 됐잖아요. 내부에서는 조금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대한민국의 시스템이 무너진 상황에 대해서 상당히 안타깝게, 사실은 침몰하고 이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되냐라는 부분에 가장 큰 고민이 있고요.

어차피 새로운 리더는 탄생을 해야 되는 상황이 됐고 리더 탄생을 하게 됐을 때 늘 똑같은 실수와 실패가 없으려면은 기존을 좀 돌아보면서 어떤 것이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리더가 서야만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을지 이제 그런 부분도 고민하고 있고. 그런데 제가 이제 당대표이다 보니 당대표로서의 우리 당의 후보도 중요합니다만 또 대선을 치를 수 있는 기본적인 개혁신당만의 시스템도 구축을 해야 되는 부분이 있어서요. 이것저것 많이 좀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신 기자) 원래도 또 워낙 워커홀릭이신데 좀 이런 엄중한 시기라

▲(허 대표) 기자들한테 소문 났습니까

-(신 기자) 네 맞습니다. 또 이런 엄중한 시기라 더 어깨가 많이 무거우실 것 같으세요. 학창시절에도 혹시 좀 이런 정치인의 꿈을 가지고 계셨는지 아니면 다른 꿈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허 대표) 학창시절에는 전혀 정치인은 꿈을 꾸지는 않았었던 것 같아요. 저는 가르치는 일은 하고 싶다라는 생각도 했었고 공부를 좀 더 잘하면 뭐 아나운서 이런 것도 좋겠다 이런 생각도 했었는데 살아보다 보니까 제가 여승무원도 했고 그리고 그걸 통해서 또 학교 강의도 하게 돼서 기존에 제가 하고 싶었던 누군가를 가르치는 꿈, 교수까지도 했었거든요. 그러니까 꿈은 좀 이룬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어렸을 때는 하여튼 좋은 일 하는 사람 되고 싶었어요.

-(신 기자) 안 그래도 제가 대표님 이력을 조금 찾아봤는데요. 이제 승무원으로 5년간 일을 하시다가 29살 때 직접 컨설팅 업체를 설립을 하셨다고 혹시 설립하시게 된 계기도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허 대표) 승무원 생활 5년을 하면서 저는 제 인생이 바뀌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뭐 저희 집이 그렇게 풍요롭게 살던 집이 아니었기 때문에 비행기라는 것도 처음 타봤고 그리고 해외에 나가서 정말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다인 줄 알았는데. 그때는 지도를 좀 보더라도 대한민국이 가운데 있고 저희 때는 좀 그랬어요. 대한민국을 되게 크게 그려놨었거든요. 그래서 전 세계가 우리나라를 알 거라고 생각하고 했었는데 승무원 생활을 하다 보니까 우리나라를 모르는 나라가 많더라고요. 우리나라에 대한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는 그 시절이었죠. 제가 90년대에 비행기를 탔으니까요. 그때는 여하튼 승무원 생활하면서 '와 역시 배움이라는 것이 중요하구나' 그리고 '어디든 배움이 있구나' 이런 걸 좀 느꼈었던 것 같고요.그것을 좀 발판으로 새롭게 제가 창업해서 이러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일을 좀 해봤으면 좋겠다 그런 차원에서 아마 거의 선두 주자로서 창업을 해서 일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이런 것도 있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안 웃었어요.이렇게 부딪히면 화내는 나라. 우리 요즘은 부딪히면 어 죄송합니다라고 하거나 요즘은 문도 다 잡아주시고 그리고 쓰레기 막 버리는 거 안 되고 영화관 같은 데서도 서로 다 조심하는, 진짜 예의를 지금 잘 지키잖아요. 근데 그때만 해도 진짜 무서운 나라라는 얘기 많이 들었었어요. 왜 이렇게 화가 나 있냐고 근데 그런 것 때문에 우리나라가 엄청나게 강한 나라이고 그리고 진짜 열심히 일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인정을 못 받는다라는 생각을 좀 해 가지고. 그런 부분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그런 직업을 갖고 싶어서 창업을 하게 됐습니다.

-(최연혁 교수, 이하 최 교수) 아까 문을 잡아주는 그런 것은 저는 참 신선하게 제가 받아들였는데요. 해외에서는 그런 사례들이 사실은 많잖아요. 배려 배려나 포용이나 이런 것들이 많은데 해외를 많이 다녀보셨기 때문에 그런 것을 미리 아셨나요? 그런 것들을 한번 체험을 해보셨습니까? 해외를 많이 다니셨죠?

▲(허 대표) 네. 승무원 하면서 전 세계를 다 다녔기 때문에 좀 깜짝 놀랐었던 것은 그 무언가를 구매하고 as가 되는 거에 좀 놀랐고 as가 될 때 상당히 친절하게 as를 해주더라고요.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당연한 거잖아요. 근데 90년대나 80년대에는 그런 게 없었어요. 이걸 어떻게 바꿔 사 갖고 왔습니까? 그냥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그런 as가 잘 되지 않았죠. 근데 그때 선배들이 선배들이 옷을 사 가져 와서 보더니 "아 이거 문제가 있다" "별로 마음에 안 들어" 그리고 환불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가능해요?" 했더니 그냥 웃으면서 환불을 해주더라고요. 저는 그것도 너무 충격적이었고 그리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하와이나 어디를 갔는데 그냥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하이" 하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눈을 바라보면서 그럴 때 괜히 움츠리잖아요. 저는 그땐 그랬던 것 같은데 조금씩 저도 보면서 웃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그 인상이 좋아지죠. 그리고 파리에 갔을 때도 에펠탑을 찾아가잖아요. 저희가 에펠탑 보러 가겠다. 근데 길을 모르니까 그때는 뭐 네비도 없고 뭐 이런 핸드폰에 이런 게 없던 때니까 지도 보고 찾아가야 되는 건데 어떤 할머님께 여쭤봤어요. "에펠탑 어떻게 가냐. 저기 보이는데 도저히 모르겠다" 했는데 그분이 영어를 이제 잘 못 쓰시는 거죠. 그런데 진짜 교과서에 있던 그대로 그분이 갑자기 제 손을 잡고 저를 에펠타까지 데려다 주셨어요. 그때 제가 느꼈던 파리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한 그 가치는 거의 한 200점 이상 올라가더라고요. 와 이 나라는 진짜 친절하고 관광을 또 오고 싶은 곳 이런 생각이 들고 또 부딪히는 경우가 없더라고요. 뉴욕에 갔는데 사람이 많으면 부딪히잖아요. 그런데 부딪히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부딪히면 또 암쏘리 하던가 뭐 익스큐즈미를 하더라고요.

이런 게 선진국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도 이런 문화를 좀 가르치는 곳이라든가 그런 게 있나라는 걸 좀 알아봤었던 거고 이걸 알아보니까 이런 걸 '브랜드 가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런 거를 내가 좀 주도적으로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죠. 물론 뭐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요. 원래는 끝까지 해서 이 사무장까지 해보고 싶었는데 허리 디스크로 좀 일을 계속하기가 좀 어려워서 그만두고 나서 제가 그냥 하고 싶었던 거 가르치면서도 대한민국을 좀 알릴 수 있고 우리나라가 내가 좀 도움이 되는 그런 일을 하면서도 돈도 벌고 싶다 이런 마음에 시작했던 게 그 이미지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근데 하늘이 저에게 주신 하나의 고마운, 저만의 성격 중에 하나는 늘 그 안에서 좀 배우려고 하는 게 있었던 거 그리고 늘 궁금함이 좀 많았어요.

그 승무원 하면서 또 도움이 됐었던 것은 그 승무원 비행기 안에 보면 퍼스트 비즈니스 이코노믹 클래스가 있거든요. 거기 있는 사람들도 분석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퍼스트 클래스에 있는 사람과 비즈니스 클래스에 있는 사람과 이코노믹 클래스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 패턴 이런 것도 좀 보다 보면은 확실히 좀 다르다라는 걸 좀 느끼는 것도 있었고 그리고 또 비행기 안에서는 파일럿이 대통령이거든요. 그리고 이제 그 안에서 저희가 뭐 또 이 하나의 나라를 잘 이끌어 나가는 거죠. 몇 시간 동안이긴 합니다만 하늘에서는 그게 하나의 조그마한 나라니까 그랬을 때도 책임감이라는 걸 서비스라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환하게 웃고 음료를 나눠주는 그런 사람으로만 생각하지만 해외 비행기를 아마 타보시면은 뭐 연세 있으신 분들도 같이 막 하는 걸 보셨을 텐데 사실 안전을 책임지는 분들이죠, 첫번째는.

그리고 두 번째가 이제 서비스를 하면서 더 즐겁게 어떻게 이 비행을 할 수 있느냐 이런 것들을 하게 될 텐데 제게는 진짜 너무나 큰 선물 같은 직업이었다. 그리고 제가 이 일 지금 현재 국회의원을 했었고 그리고 정치인 개혁신당의 당 대표로서 일을 할 때도 그때의 봉사 정신 그리고 세상에는 이렇게 뭐 등급을 나눌 수는 없지만, 나누고 싶어서 나눠지는 건 아니지만 포스트 비즈니스 이코노미 클래스가 있다 이런 것도 좀 알게 되고 그 안에서 내가 해야 될 역할 뭐 이런 게 저한테 큰 도움이 된 것 같다라는 생각이고.

-(최 교수) 정치인으로 입문하시기 전에 컨설팅 업체를 그럼 몇 년 동안 하셨는

▲(허 대표) 제가 20년 했습니다, 20년.

-(최 교수) 일단 그럼 시작부터 조금 여쭤보고 싶은 게 '예라고'라는 이름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습니까?

▲(허 대표) "'예'라고 하겠습니다"라는 뜻에서의 예라고입니다.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대한민국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 그 슬로건은 친절 강대국 대한민국이었는데 그러면 대한민국을 알리고 싶은 거면 우리나라 말을 쓰고 싶었어요. 이 회사 이름 자체도. 그래서 계속 고민을 하다가 '아 뭐로 해야 되지' '뭐로 해야 되지' 했는데 제가 이제 전화를 받을 때마다 "아 예, 예" 이렇게 이제 대답을 하나 봐요. 그래서 저희 후배가 아 언니는 맨날 "예"라고만 해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그때 그 예라고가 딱 와닿더라고요. 그래서 그 예라고가 say yes라는 뜻도 있고 그리고 우리나라 전통의 '예'라고 뭐 이렇게 하면서 제가 그 이름을 좀 만들었습니다.

이름이 예라고라고 하니까 그 사장의 이름은 기억을 못해도 저희 회사 이름은 정말 오래 기억을 하셔 가지고 5년 뒤에도 "여기 예라고 맞죠?" 하고 전화를 주시는 경우들이 있더라고요.브랜드라는 게 그때부터 진짜 중요하다는 걸 알아서 제가 정치하는 데도 도움이 좀 많이 되는 것

-(최 교수) 네 이름도 특이했지만 물론 활동도 또 그 다양한 분들도 만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셨겠죠 조금씩 소개해 주시죠.

▲(허 대표) 처음에는 고객 접점에 계신 분들 위주로 제가 그 교육을 하고 컨설팅을 했었습니다. 접점에 계신 분들이 어떻게 고객을 응대해야 되는지 왜냐하면 제가 승무원 출신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걸 가지고 진행을 했었는데 어느 순간 이게 응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그게 바로 시스템이었죠. 그러니까 이 회사의 구조가 어떠냐에 따라서 지시가 되고 그걸 또 이행해야 되고. 그리고 요즘에 이제 많이 말하는 노사의 문제도 있는 거고 시간 8시간을 일하냐에 따라서, 그러니까 얼마나 처우가 되느냐에 따라서 사실 정말 웃고 싶은데 24시간 일하면 웃기 어려울 수가 있고.

그리고 예를 들면은 그 온라인 게임 업체인데 그분들이 유저가 좀 강한 강성들이 좀 있으셨어요. 그래서 이게 돈이 오가는 부분이 되다 보니까 서비스하는 사람들을 찾아와서 정말 오물도 던지고 칼도 갖고 오시고 막 이런 부분들이 있으면서 경찰과 대치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은 그런 게 있었거든요. 그렇다면 그 현장에서 서비스를 제대로 웃으면서 할 수는 없는 부분이거든요.그러면 우리의 직원들이 안전하게 이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냐라는 것 때문에. 예를 들어 이 단을 조금 더 높이고 뭐 CCTV를 달 때도 소리가 꼭 녹음이 되는 CCTV를 단다거나 이런 하드웨어적인 것들. 그리고 또 고객 리스트를 이제 어쩔 수 없이 먼저 보고 사람을 만나가게 한다거나 하는 그런 시스템적인 변화 그리고 요즘에는 여러분들이 번호표 뽑고 하지만 그게 다 이 컨설팅에서 나온 겁니다. 운 나쁘면 내가 먼저 왔는데 다른 사람이 먼저 하고 그런 경우도 있었어요.

과거에는 그런데 접점의 서비스의 시스템을 바꿔서 번호표를 뽑으면 온 순서대로 진행할 수 있고 막 나오잖아요. 그런 것들을 바꿔 나가는 걸 진행을 했었습니다. 근데 하다 보니까 이제 이게 접점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의 문제가 있다라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리더가 풀어줘야만 해결되는 게 있는 거죠. 그 다음부터는 이제 리더 교육을 제가 시작을 했습니다. 그래서 리더 교육을 또 하다 보니까 가장 중요한 게 경영자더라고요. 그래서 경영자들 교육을 하기 위해 제가 박사 과정까지 하면서 아무래도 눈높이를 좀 맞춰야 되니까 그때 프레젠트 아이덴티티라는 PI에 대한 중요성을 좀 더 공부하고 그 부분에 대해서 기업의 오너들과도 일을 해 왔었죠.

경영자가 크게 이제 목표 지향을 정하고 또 심볼을 어떻게 하느냐도, 슬로건을 어떻게 하느냐도, 광고를 어떻게 하느냐 뭐 여러 가지의 문제가 한꺼번에 그 회사에 대한 브랜드가 정해지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그 사장 그 오너들까지도 제가 컨설팅을 하게 했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워커홀릭이 될 수밖에 없었고 공부도 꾸준하게 했고 열심히 일을 했던 것 같고요. 이제 그러다 보니 기업이 일하는데 정치인들이 어떻게 하느냐, 이 정치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이 기업이 또 달라지는구나 라는 거를 좀 알게 됐죠. 그러면서 또 운 좋게 이렇게 대선 캠프 같은 데서도 저를 좀 sos 치는 분들이 계셔서 그런 관련된 것도 조금씩 해드리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제 얘기를 좀 아주 길게 신나게 하네요.

-(최 교수) 한번 듣고 싶었습니다.

▲(허 대표) 너무나 오래된 얘기인데 새록새록해요.

-(최 교수) 정치라는 것이 이제 말과 설득일 텐데 이미지와 어떻게 보면 맞닿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과 설득 그리고 소통인데 어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서의 이미지 이렇게 연결되는 고리들이 있을 텐데

제가 생각할 때 정치의 기본은 소통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국민과의 소통이 정말 중요하다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근데 이제 이미지라는 것은 abc라고 해서 appearance(외모), behavior(태도), communication(소통) 이걸 이제 이미지라는 작은 영역에서는 그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appearance는 이제 외적으로 어떻게 행동하고 뭐 이런 것들, 보여지는 거. behavior 같은 경우는 태도를 보면서 아 쟤 정말 싸가지 없다 아니면 뭐 좋다 이런 얘기 하잖아요. 그다음에 c가 이제 communication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은 말을 하는 것도 있습니다만 사실 뭐 appearance도 메시지고 behavior도 메시지거든요. communication도 말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SNS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하는지 뭐 이런 것들도 다 커뮤니케이션이죠. 그 부분을 관리하는 게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저 같은 경우는 그런 abc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전략을 좀 더 많이 짰었고 그 안에서 이제 프레지던트 아이덴티티라고 하는 PI를 주력적으로 이제 전략을 가지고 했었던 거였죠. 그리고 사실 정치는 이미지죠. 정치는 제가 그거를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4년 정치해 보니까. 그리고 제가 대선 캠프에 4번 참여했었었거든요. 그런데 결국은 마지막은 이미지구나. 왜냐하면 내가 아무 정말 괜찮은 이 코어에 훌륭한 것이 있더라도 제대로 국민께 그 커뮤니케이션을 못하면 제대로 전달을 못하면 그건 당선이 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이미지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라는 생각입니다.하지만 제가 또 강조하는 것은 그 이미지는 뭐 첫인상 중요하고 끝인상 중요한데 끝인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이미지라는 것은 그 behavior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한 번에 끝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그냥 겉모습만 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늘 시간이 답을 준다라는 말씀을 많이 드려요. 그 사람이 걸어왔던 궤적들을 보면서 이미지가 형성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뭐 막말하는 사람이지만 그 막말을 통해서 성과를 계속 냈던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 대해서는 저희는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죠. 그리고 그 사람이 셀럽이 되기도 하죠. 예를 들어 연예인들도 떠오르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그러니까 뭐 유재석이라는 사람은 또 유재석의 색으로 자기의 그 행동들을 쭉. 저는 박진영을 너무 좋아하는데 박진영이라는 사람도 그 사람이 걸어왔던 길을 통해서 '박진영이 추천하는 사람이라면 좀 믿을 만할 것 같아' 'JYP는 뭔가 할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드는 그게 이미지 그게 가장 강력한 이미지거든요.

그래서 쇼는 그 진짜 내가 응축된 내 행동에서의 그 쇼를 했을 때 그게 효과가 나는 거고 국민도 믿어주는 거지, 진정성 없이 어느 순간 했던 쇼는요 한두 번 하면 다 들킵니다. 그래서 뭐 그런 부분이 정치에서도 좀 반영이 돼야 된다. 정치인들 중에서 그냥 몇몇 쇼만 하면 된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계시는데 요 며칠 한번 보십시오. 망가지는 부분 분들 많으시잖아요. 제가 그렇게 이미지를 했던 사람인데 왜 이렇게 튀려고 안 하겠어요?

-(신 기자) 또 대표님께서 이렇게 열심히 발로 뛰셨던 결과가 정치 입문 계기로 이어지셨잖아요. 2020년 1월에 자유한국당의 이미지 컨설턴트도 영입되셨다고 혹시 좀 그 영입되셨을 때 어떤 마음이셨는지

▲(허 대표) 어우 진짜 그때는... 제가 가장, 그러니까 우리 아이를 제외하고 우선순위로 가장 사랑하는 게 예라고라는 회사였거든요. 그냥 저와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곳이라서 그냥 가족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회사였는데 제가 정치권에 들어오면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가 없다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근데 그때도 보수가 거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죠. 4~5% 나온 적도 있었고 17~18% 나오고 막 그랬을 때였을 겁니다. 그때 인재영입위원장께서 저를 좀 찾아오셨습니다. 저를 찾아오셔서 "우리 당을 좀 살려달라". 그러니까 기존에 이제 위원들이 저한테 영입을 요청하셨을 때는 다 거절했죠.

저는 일이 좋기 때문에 이제 거절을 했었다. 그러니까 19년 12월에 저한테 요청을 하셨었는데 여튼 보수가 무너지고 있었고 그분들이 생각하실 때는 자신들의 그 꼰대 이미지와 이 당의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때 이제 그런 일을 하던 저를 찾았던 것 같고 어 그때 제가 방송 패널로 이렇게 나가고 있었을 때였는데 그때 제가 정치에 관심이 없었는데 조국 사태가 있었습니다. 저는 울분에 찼었거든요. 저는 그 사다리를 상당히 중요시 여기고 공정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왜냐. 기업을 할 때도 공정한 거래가 아니면 안 되고 아니면 저희가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공정과 책임이라는 걸 너무나 중요시 여기는데 공정이 무너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렇지 않아도 약간 울분은 있었어요.

근데 또 그쪽에서 요청을 하셔서 가족과 좀 상의를 했는데 뭐 가족이 엄청나게 반대하고 딸도 너무나 반대를 해서 고민이 많았었죠. 그런데 이제 마지막에 인재영입위원장이 저희 회사로 찾아오셔서 정말 울면서 말씀하셨거든요.
"우리 당 때를 벗겨 달라" "하자는 대로 할 것이다" 그러니까 왠지 또 이게 또 애국심이 또 나오는 거예요. 제가 기업을 할 때도 '우리나라가 좀 괜찮은 나라라는 걸 좀 알리고 싶다' 이런 느낌으로 시작을 했었던 것처럼 '내가 할 일이 있다면 지금 가야 되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달 좀 넘게 고민하다가 1월달에 이제 인재 영입이 됐던 거죠.

-(신 기자) 그 가족분들께서 그때 반대하셨던 이유는 혹시

▲(허 대표) 우리 딸은 그냥 빨간 당이 싫다고 그랬어요. 그때 워낙에 이미지가 안 좋았어요. 지금의 국민의 힘보다 더 안 좋은 건 지금은 20 몇 퍼센트라도 나오잖아요. 국민의 힘이 그때는 10%대였을 겁니다.

-(신 기자) 그때 따님 어떻게 설득하셨나요?

▲(허 대표) "엄마 한번 믿어주면 안 될까". 그리고 뭐 제가 인재영입이 된다고 해서 의원이 되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그런데 이제 "엄마 한번 믿어주면 안 되겠니" "엄마 생각에 엄마가 정말 보수일까 뭘까 고민을 해봤는데 내가 보수라는 정체성에 좀 맞는 것 같고 그리고 이러이러한 엄마가 잘 가장 잘하는 이 전문성을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막 설득 엄청 했죠. 그래서 "그럼 거기까지만이야" 막 이랬는데 지금 이제 5년 됐죠, 정치한 지. 근데 다행히 우리 딸이 지금은 말리지는 않고요.

저한테 이번에 그거 물어보더라고요. (딸이) "엄마가 만약에 국민의 힘에 있었다면, 그리고 엄마가 만약에 그래서 국회의원이 됐다면 엄마는 찬성했을 것 같아 탄핵 반대했을 것 같아?", "엄마는 저기 안철수 의원 앉아 있는 것처럼 거기 앉아 있었을 것 같아, 아닐 것 같아?" 뭐 이렇게 묻더라고요.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해, 엄마가 어떻게 할 것 같아" 했더니 "나는 엄마는 그 자리에 앉아서 찬성표를 누를 것 같아"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제가 "그게 엄마야" 그렇게 얘기했거든요. 저희 딸이 이제 저를 바라보는 그 모습과 그게 제가 5년간 정치에서 보여줬던 제 모습을 그대로 제 딸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에 감사했고. 만약 정말로 제가 국민의힘이 아직 있더라도 저는 분명 찬성표를 던졌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하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고 그게 안 될 것 같으니까 제가 국회의원 시절에 탈당하고, 국회의원직 버리고 개혁신당에 올 수 있었던 거 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딸에게 당당하게 얘기합니다. 근데 만약 엄마가 처음에 생각했던 그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난 정치를 그만뒀으면 좋겠어라고 계속 얘기해요. "어 알겠다 그 약속은 지키겠다"라고 얘기하고 있고요. 저는 정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또 마지막까지 진짜로 비겁하기 싫고요.

그리고 특히 '내 딸이 나를 보고 있다'라는 마음으로 정치하고 또 내 딸의 친구들, 내 딸의 선배들, 후배들을 위해서 나는 정치 해야겠다라고 마음먹고 갔기 때문에 뭐 힘이 있든 없든 제 자리에서는 계속 그렇게 정치인의 길을 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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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방미통위 내년 세종行...외교·안보 부처도 이전 [서울=뉴스핌] 김지나 기자 = 정부가 외교부와 통일부, 국방부, 감사원, 경찰청, 공소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 주요 국가기관의 청사를 새로 지어 세종시로 이전한다. 수사·보안 등 업무 특성상 독립청사가 필요한 17개 기관, 공무원 6934명이 대상으로 2031년경 이전을 목표로 한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13일 '2차 중앙행정기관 이전 관련' 브리핑에서 "신축 후 이전하는 기관으로는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감사원, 경찰청, 공소청,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이 해당되며, 수사·보안 등 업무 특성에 맞는 최적의 시설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독립청사와 특수시설이 필요한 17개 기관, 6934명은 업무 특성에 맞는 청사를 신축한 뒤 이전하겠다"며 "해당 기관들은 내년부터 청사 신축 작업을 시작하면, 2031년경에는 이전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사진= 행정안전부] 이번 이전 대상은 수도권 소재 중앙행정기관 등 총 44개 기관, 공무원 정원 기준 9929명이다. 윤 장관은 "현재 수도권에 있는 총 142개의 행정기관을 대상으로 검토한 결과 국정 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중앙부처는 모두 세종으로 이전하되 직접 대민서비스를 담당하는 소속기관은 이전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기관별 업무 특성과 청사 확보 여건에 따라 임차청사를 활용한 조기 이전과 독립청사 신축 후 이전 등 두 가지 방식으로 이전을 추진한다. 독립청사가 필요하지 않은 27개 기관은 2027년 중 단계적으로 세종으로 이전한다. 윤 장관은 "상반기에는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원자력안전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국가교육위원회, 재외동포청 등 6개 기관의 이전을 우선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하반기에는 금융위원회를 비롯해 각 부처 소속기관 및 각종 자문위원회 등 나머지 19개 기관의 이전을 추진하여 임차청사 활용 기관은 내년 안에 이전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와 성평등가족부는 행복도시법 개정 시기에 맞춰 이전 시점을 결정할 계획이다. 다만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등 대통령 관련 기관은 이번 이전 일정과 별개로 검토한다. 윤 장관은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실 등 대통령 연계기관의 이전은 대통령 집무실 완전 이전 시기 등을 고려하여 별도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인포그래픽=챗GPT] 정부는 외교부와 통일부, 국방부, 법무부, 성평등가족부의 세종 이전을 위한 법 개정도 추진한다. 현행 행복도시법상 이들 5개 부처는 이전 제외기관으로 규정돼 있다. 정부는 국회와 협력해 해당 조항을 개정하고 이전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할 방침이다. 윤 장관은 "국회와 긴밀히 협력하여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법무부, 성평등가족부를 이전 제외기관에서 삭제하는 행복도시법 개정과 필요한 예산 확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전 공무원과 가족의 정착을 위한 주거·교통 지원방안도 마련한다. 윤 장관은 "기관 이전은 공무원과 가족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만큼, 충분히 소통하며 이전에 따른 어려움을 줄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중앙행정기관의 이전은 단순히 정부의 공간을 옮기는 데 그치는 일이 아니다"라며 "수도권 일극체제를 극복하고, 국토를 균형있게 활용하는 공간전략이자,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미래와 새로운 도약을 이끄는 성장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면서 기관 이전과 업무방식 개선을 함께 추진하여, 행정수도 세종의 기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abc123@newspim.com 2026-10-1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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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한강 청년 버스킹 축제' 18일 한강공원서 개최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한강에서 청년 음악가들의 다채로운 공연과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감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하고 서울특별시가 후원하는 '2026 한강 청년 버스킹 축제 : DAY OFF SEOUL'이 오는 18일 여의도한강공원 녹음수광장에서 열린다. 행사는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진행되며 모든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은 무료로 운영된다.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2026 한강 청년 버스킹 축제 DAY OFF SEOUL' 포스터 [사진=감엔터테인먼트] 2026.10.08 taeyi427@newspim.com 올해 축제는 '한강 위에서 하루를 통째로 쉬어가는 청년 문화 축제'를 주제로 마련된다. 음악과 피크닉, 한강, 가을을 결합해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열린 문화 공간을 조성하고 시민 참여와 청년 예술가 발굴을 함께 꾀한다. 청년 예술가에게는 시민과 만나는 무대를, 시민에게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문화와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축제의 중심은 청년 음악가들의 버스킹 무대다. 싱어송라이터 오디션 '히든스테이지' 출신의 김은찬밴드,신직선,윤태경,윤준,채수빈,심각한 개구리, 채비(Che!vee), 혼즈(Hon'z) 등 10팀이 참여해 각기 다른 장르와 개성을 담은 음악을 선보인다.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히든스테이지' 대상 심각한 개구리(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우수상 윤태경, 우수상 김은찬밴드. [사진=감엔터테인먼트] 2026.10.08 taeyi427@newspim.com 특히 지난 7일 열린 '히든스테이지' 결선에서 대상을 받은 심각한 개구리를 비롯해 최우수상 윤태경, 우수상 김은찬밴드 등 수상자들도 이번 축제를 통해 다시 관객들과 만난다. 경연 무대에서 실력을 겨룬 청년 음악가들이 이번에는 한강 야외 무대로 자리를 옮겨 시민들과 가까이에서 호흡할 예정이다. 청년 아티스트들의 공연에 더해 특별 초청 무대도 마련된다. 뉴올리언스 사운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컨템포러리 재즈밴드 '김루꾸밴드'와 국악·비보이·아크로바틱 등을 결합한 퍼포먼스팀 '라스트릿크루', 비트박서 잭브라이언(Jackbryan)이 무대에 올라 축제의 볼거리를 더한다.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부터 재즈와 퍼포먼스, 비트박스까지 서로 다른 장르의 무대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사진 위쪽부터 라스트릿크루, 김루꾸밴드, 비트박서 잭브라이언(Jackbryan). [사진=감엔터테인먼트] 2026.10.08 taeyi427@newspim.com 시민도 직접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시민과 함께하는 버스킹' 참가 희망자는 축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할 수 있으며 개인 또는 팀 단위로 지원 가능하다. 신청자의 자기소개와 활동 경력, 희망 공연곡과 장르, 공연 영상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참가자를 선정한다. 선정된 참가자는 '시민과 함께하는 버스킹' 무대에 참여하게 된다. 청년 뮤지션의 공연과 함께 시민에게도 직접 무대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 무대 밖에서는 공연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서울의 향을 찾아서'에서는 서울을 대표하는 핫플레이스 이미지를 향으로 구현해 시향한 뒤 원하는 향료를 더해 자신만의 맞춤 향수를 만들 수 있다. 여러 향을 직접 맡아보고 취향에 맞게 조합해 결과물을 만드는 방식이다. '한강 포토 스테이션'에서는 축제 현장의 즐거운 순간을 간직할 수 있도록 즉석 사진 인화 부스 '한강로 사진관'을 운영한다.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을 인화해 축제의 순간을 기록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한강 포토 스테이션 [사진=감엔터테인먼트] 2026.10.08 taeyi427@newspim.com 음악과 한강의 풍경, 청춘에게 전하고 싶은 문장을 엽서에 적어 남기는 참여형 아카이브 프로그램 '한강 사운드 엽서'도 준비된다. 공연 관람에 더해 향수 제작과 사진, 엽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주최 측은 "청년 음악가들이 시민과 가까이에서 소통하고, 시민들도 공연과 체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며 "가을 한강에서 음악과 휴식을 함께 즐기는 특별한 하루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taeyi427@newspim.com 2026-10-13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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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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