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무죄→2심 금고 4년→대법 파기환송
"옥시 사건 피고인들과 공동정범 성립한다고 볼 수 없어"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이용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26일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에게 금고 4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형사재판 항소심 판결에서 유죄판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 판매사 임직원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은 오는 11일 진행된다. 2024.01.08 choipix16@newspim.com |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홈 크리닉 가습기 메이트', '이마트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 제품을 단독 또는 복합사용한 피해자 98명이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은 사건이다.
홍 전 대표는 2002~2011년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등을 원료로 만든 홈 크리닉 가습기 메이트의 원액을 제조·제공한 혐의, 안 전 대표는 CMIT·MIT 등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당 제품을 유통·판매한 혐의로 각각 재판에 넘겨졌다.
이마트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는 이마트가 애경산업과 PB계약을 맺고 판매한 상품이며,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은 옥시레킷벤키저(옥시·현 RB코리아)가 제조·판매한 제품이다. 앞서 이 사건으로 신현우 전 옥시 대표는 징역 6년을 확정받은 바 있다.
1심은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은 이들에게 각각 금고 4년을 선고했다.
1심은 가습기 메이트 등 제품의 주원료인 CMIT·MIT와 피해자들의 상해·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반면, 2심은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2심은 홍 전 대표 등과 신 전 대표 등이 공동정범 관계에 있으며, 복합사용 피해자그룹의 다수가 옥시 제품 등을 보다 많이 사용했더라도 인과관계가 부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우선 재판부는 "어떠한 제품이 개발·출시된 후 다른 업체가 기존 제품과 주요 요소가 동일·유사하거나 일부 개량한 제품 등을 개발·출시한 경우에는 그 제품의 개발·출시에 관여한 사람들 사이에 명시적인 의사의 연락이 없었더라도,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에 관한 공동의 인식이나 묵시적인 의사의 연락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그러나 어떠한 제품이 개발·출시된 후 경쟁업체가 기존 제품과 주요 요소가 전혀 다른 대체 상품을 독자적으로 개발·출시한 경우에는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정을 공동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볼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옥시 제품의 주원료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등이고 다른 두 제품의 주원료는 CMIT·MIT이다.
즉 옥시 제품과 다른 두 제품은 용도나 용법만 동일할 뿐 주원료 등 주요 요소가 전혀 달라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개량한 제품이라고 볼 수 없고, 각 가습기살균제에 모두 결함 내지 하자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두 사건의 피고인들 사이에 묵시적 의사 연락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재판부는 원심이 판단한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원심이 근거로 든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하는 형사정책적 목적이나 취지, 소비자들이 주원료의 차이를 알고 구매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점 등은 홍 전 대표 등과 신 전 대표 등의 인식 내지 의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러한 사정만으로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을 인정한다면 대량생산·소비를 특징으로 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망 등을 통해서 국경을 초월한 상품의 구매·소비가 용이하게 이뤄지는 현대사회에서 상품 제조·판매자들 등에 대한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 범위가 무한정 확장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재판부는 "그런데도 원심은 두 사건의 피고인들 사이의 공동정범 성립을 인정했고, 이를 전제로 공소시효 완성에 관한 피고인들의 주장을 배척했다. 또 원심은 홍 전 대표 등의 업무상 주의의무위반과 피해자들의 사망 또는 상해 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에 관해서도 판단하지 않았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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