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 지원과 투자환경 개선 등 한국형 산업정책 마련 필요"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우리나라의 탄소중립 지원정책에 배정된 예산 규모가 주요국 대비 최대 7분의 1 수준으로 부족해, 이를 위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유승훈,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에게 의뢰한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설정 제언' 연구용역 보고서를 27일 발표했다.
◆ 탄소배출 저감 실적 우수한 한국, 추가 저감수단 제한적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다배출업종(철강, 화학, 시멘트, 반도체‧디스플레이)의 저탄소기술이 2035년까지 상용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에서 발간한 '탄소중립 기술혁신 전략 단계별 이행안(로드맵)'에 따르면, 이들 업종의 저탄소기술 상용화 시점은 2030~40년으로 확인된다. 다만 연구진은 기술의 고착효과(lock-in effect)를 고려할 때 저탄소기술이 등장하더라도 주류화된 기술시스템이 당분간 지속되는 계단식 기술전환이 예상된다고 점쳤다.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2년에 이어 2년 연속 감소한 바 있으며, 노후 고로 폐쇄(철강), 보일러 연료전환(정유), 불소처리 증가(반도체) 등 체질 개선 노력이 효과를 나타낸 것으로 평가된다. 보고서는 이와 같은 산업계의 노력으로 주요국 대비 높은 배출원단위 개선율을 달성했지만, 반대급부로 저감수단의 선택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국내 제조업의 온실가스 배출원단위 개선율은 제조업 비중 유사국과 비교할 때 높은 수준으로, 온실가스 감축 선택지가 제한돼 산업계에 상당한 비용 인상을 유발할 수 있다.
탄소중립 지원정책 예산 주요국 비교. [사진=한국경제인협회] |
◆ "업종별 온실가스 감축비용과 거시경제 효과 종합검토 선결돼야"
보고서는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 경로 설정과 관련해 4가지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보고서는 업종별 온실가스 감축비용과 거시경제 효과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선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산업부문은 다양한 세부 업종으로 구성되며 업종별 온실가스 배출구조가 상이해 이질적 감축전략의 수립이 필요하다. 연구진은 "부문별 전문가의 평가를 통해 감축수단의 실현 가능성과 비용 효과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탄소중립을 법제화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결정에 따른 하향식 법제화의 문제와 예산에 대한 논의가 누락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수 이해관계자와의 실질적인 협의과정이 생략된 탄소중립 경로 설정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을 유발할 수 있다.
아울러, 보고서는 주요국은 예산 책정과 법안 논의가 동시에 이루어지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예산에 대한 논의과정 없이 탄소중립 경로를 법제화한 것으로 평가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주10)은 재원 확보 이후 입법을 추진하고 수입과 투자의 규모 및 항목을 세부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법의 실질적인 효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재정 지출과 관련된 정책을 추진할 때 재원 확보를 위한 대책을 함께 검토하도록 규정한 원칙을 페이고 원칙이라고 일컫는다. 본 보고서 외에도 다수 연구에서 국내 법안들의 재원 규모 불명확성과 불투명한 재원 조달 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연구진은 "국내 탄소중립 정책 수립 과정에서 페이고 원칙 도입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 "美 대선 결과 등 전세계 경제‧환경 선순환 추구 기조…유연한 접근 필요"
보고서는 주요국의 탄소중립 이행 방향에서 경제와 환경의 선순환을 지향하는 기조가 두드러진다고 평가하면서, 유연성 전략을 요구했다. 주요국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달성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는 점과 국제정치 변동에 따라 중요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향후 동향을 주시하면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선에 따른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 기조의 변동성을 예상할 수 있다.
연구진은 "선진국은 탄소중립 관련 기술 및 시장을 선점하고 자국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저탄소 혁신에 대한 제도를 마련하기 전 성급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의 조정은 산업계에 충분한 시그널을 주기보다 감축비용을 상승시켜 투자 여력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주요국에서 투자 경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산업부문 탄소중립 혁신을 과감하게 지원하며 역내 제조기반을 강화하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도 한국형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탄소중립 산업정책에 배정된 예산 규모가 유럽연합과 최대 7.3배의 격차가 난다고 지적하며, 국가 차원의 재정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선진국의 탄소중립 지원정책은 기술 R&D부터 상용화까지 全과정에 맞춤형 지원이 구성되어 있다"며 "재정적 지원과 더불어 투자 환경과 관련된 인력, 규제 완화 등 전체적 접근(holistic approach)에 의한 정책을 고안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ji0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