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제도 시행 이래 수차례 개편 논의
노동계 등 반대로 수십년간 개선 논의 공전
김문수 장관 "노동시장 처한 현실·변화 반영"
[세종=뉴스핌] 정성훈 기자 = 정부의 '최저임금 제도 개편' 움직임이 속도를 내고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제도 개편 논의가 있었지만, 정부·노동계 등의 반대로 매번 흐지부지됐다. 이번에 제도 개편을 이뤄내면, 1988년 최저임금 제도 시행 이래 약 40년만이다.
최저임금 제도 개편은 최저임금 결정구조 합리화, 업종별 차등적용 여부 등이 핵심이다. 그중에서도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노·사·공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편하는 작업이 최대 숙제다.
◆ 고용부, 최저임금 제도 개편 '속도전'…연내 1차 결론
11일 고용노동부·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고용부는 지난 8일 '최저임금 제도개선 연구회'를 발족하며 제도 개편 논의에 첫발을 뗐다. 연구회는 전·현직 최임위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됐다. 직전 최저임금위원장이었던 박준식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가 위원장을 맡았다.
이 밖에도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김기선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동배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 ▲오은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전명숙 전남대 경영학과 교수 ▲전인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정진호 동인정책연구소장 등이 논의에 참여한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에서 세번째)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파크원 타워에서 열린 '최저임금 제도개선 연구회 킥오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2024.11.08 jsh@newspim.com |
위원회는 향후 2개월간 주 1회 회의를 통해 집중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논의 종료와 함께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해 연내 발표할 계획이다. 특히 논의 과정에서 현장 실태와 의견을 적극 고려하고 반영할 수 있도록 노사 의견 수렴과 현장 방문, 공개 세미나·토론회도 병행할 예정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어떤 쪽으로 결론이 나든 논의 결과를 연내 1차로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용부 수장인 김문수 장관도 최저임금 제도 개편 필요성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현행 최저임금 제도가 노사 간 소모적인 갈등만 지속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최저임금 도입 후 처음으로 제도 개편이 논의되는 만큼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김문수 고용부 장관은 이날 회의 모두발언에서 "최저임금제도가 시행된 지 37년인데 제도가 운영되는 모습은 여전히 1988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오늘날 최임위는 합리적 기준을 바탕으로 연구·조사와 대화를 통해 적정 수준을 찾기보다 소모적인 갈등만 증폭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현재의 결정 방식과 기준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고, 우리 노동시장이 처한 현실과 변모하는 양상을 최저임금제도에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때"라며 "37년 간의 제도 운영 경험과 선진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발전적인 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고용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최저임금위)는 지난 8월 ▲최저임금 결정체계에 대한 국제 비교 분석(6600만원) ▲최저임금 적용효과에 관한 실태조사의 패널화 자료 구축 방안 연구(4400만원) 등 두 건에 대한 정책연구용역을 의뢰했다. 연구용역 기간은 올해 8월부터 12월까지 약 4달간이다. 완성된 연구용역 결과는 연내 최저임금위로 제출돼 최저임금 제도 개편의 근거로 활용될 예정이다.
◆ 결정구조 합리화·업종별 차등적용 등 숙제
최저임금 제도 개편의 핵심은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합리화하는 데 있다.
최저임금 심의는 고용부 산하 최저임금위에서 이뤄진다. 매년 3월 말 고용부 장관이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하면 공익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근로자위원 9명 등 총 27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에서 90일간 논의에 돌입한다.
이에 따른 최저임금 법정 심의 기한은 6월 말까지다. 다만 이는 명문화된 규정일 뿐, 최저임금제도 도입 이후 법정 기한 내 심의가 끝난 사례는 단 9차례에 그친다. 대부분 회의에서 경영계와 노동계가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보이다 공익위원들이 심의 촉진 구간을 제시하고, 공익위원안이 표결에 부쳐졌다. 공익위원안에 반대하는 노·사 한쪽은 표결에 불참하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관행이 반복됐다.
이에 경영계와 노동계 등 업계를 비롯해 학계에서도 현행 제도로는 생산적인 논의가 진행될 수 없다는 한목소리를 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공익위원안이 경제 현실을 반영하기보다 정권의 정책 방향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2018년 적용 최저임금은 역대 최대인 16.4%를 기록했다. 이듬해인 2019년에도 10.9% 상승률을 나타내며 역대 두 번째를 기록했다. 이에 소상공인들의 줄폐업이 이어지자, 2020년과 2021년에는 각각 2.9%, 1.5%로 대폭 낮췄다.
윤석열 정부 첫해 최저임금 논의의 결과인 2023년 적용 최저임금 상승률은 5.0%로 평균을 나타냈지만, 이듬해인 2024년 적용 최저임금 상승률은 2.5%로 반토막이 났다. 내년 최저임금 상승률은 역대 두 번째로 낮은 1.7%까지 떨어졌다. 2023년과 비교하면 내년 최저임금 상승폭은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이에 불필요한 최저임금 심의 예산만 줄줄 샜다. 최저임금위는 지난 2021년부터 올해까지 4년간 회의경비 및 사무국경비 예산으로 45억1900만원을 편성했다. 이 중 회의경비 예산은 4년간 34억5168억원, 사무국경비 예산은 10억6732만원이 각각 투입됐다.
예산 편성액 중 2021년부터 올해 7월까지 실제 집행된 금액은 회의경비와 사무국경비가 각각 약 25억원, 약 7억2800만원 수준이다. 최저임금위는 지난 4년간 본회의와 분과위원회를 합쳐 총 93번의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 1회당 약 2700만원의 회의경비가 소요된 셈이다.
여기에 그동안 꾸준히 문제 제기됐던 업종별 차등적용 문제도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동안 최저임금 회의에서 경영계가 업종별 차등적용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했는데, 노동계는 절대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최저임금 결정에 열쇠를 쥐고 있는 공익위원들도 절반 이상 차등적용에 반대하며 매번 무산됐다.
최저임금 논의에 참여했던 한 경영계 관계자는 "공익위원들 중 업종별 차등적용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막상 투표에 들어가면 공익위원 다수가 반대한 것으로 결론이 난다"면서 "정부가 노동계 눈치보기에만 급급한거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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