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폭염…에어컨도 무용지물
작고 오래된 카페·테이크아웃형 매장, 더위에 직격탄
전기세 지원 절실하지만 정부 지원 미진
"연매출 6000만원이면 임대료 빼고 남는 게 없어"
[서울=뉴스핌] 방보경 노연경 기자 = "에어컨 튼 거 맞아요? 더워 죽겠어요."
5일 저녁 퇴근 시간 인사동 골목길 안 호프집.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를 피해 생맥주를 마시러 온 손님들이 들어서자마자 불만을 늘어놓는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작동될 거라고 기대했던 실내 온도는 29도.
한옥을 개조해 호프집을 운영하는 김지영(33·가명) 씨는 한옥의 구조 때문에 추가로 에어컨을 설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영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실외기를 달 때도 어려움을 겪었던 탓에 이번 여름은 커다란 선풍기 두 대로 버틸 작정이다.
김 씨는 "작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올해는 워낙 무더위가 심해 에어컨을 최대로 가동해도 손님들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라며 "이렇게 에어컨도 무용지물이 된 더위는 올해가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연일 폭염이 지속되고 있는 1일 오전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물류센터에서 노동자들이 택배 발송을 위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2023.08.01 leehs@newspim.com |
◆사상 최대 폭염…압력밥솥 안에 열 갇힌 듯
이중 고기압이 열을 가두며 마치 압력솥에 갇힌 듯한 폭염이 이어지면서 에어컨도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이번 더위는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꼽히는 2018년보다 더 하다. 하루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은 이달 5일 중에서 4일에 달한다.
밤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자영업자들은 영업시간과 상관없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5일까지 집계한 올해 평균 열대야 발생일은 12일이다. 평년 같은 기간(3.7일)보다 훨씬 길며 '사상 최악의 폭염'을 기록했던 2018년 같은 기간(9.5일)보다도 더 많다.
이는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이 한반도를 이중으로 덮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 고기압이 '열돔'을 만들어 마치 압력밥솥 안에 열이 갇힌 듯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작고 오래된 카페·테이크아웃 형 매장…더위 여파 그대로
6일도 서울 낮 최고기온은 32도에 달했다. 열대야로 인한 밤에도 아스팔트 열기로 뜨겁게 달궈진 낮에도 기록적인 폭염에 에어컨은 제 역할을 못 했다.
12년간 한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해 온 박(55) 씨는 카운터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한다. 에어컨이 천장 정중앙에 설치돼 있지 않는 인테리어 특성 때문이다. 취재진이 들어간 주방은 제빙기와 커피머신에서 올라오는 열 때문에 숨이 막혔다.
박 씨는 "예전에는 구조가 이래도 카운터까지 쉽게 시원해졌는데, 올해는 너무 더워서 에어컨을 틀어도 덥다"라고 했다. 그는 "벽걸이 에어컨을 달고 싶어도 매장 규모가 너무 작아서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기자 = 서울의 한낮 기온이 26도를 기록해 무더운 날씨를 보이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천 인근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시민들이 시원한 음료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이날 영남 내륙 지역과 호남 일부지역에는 첫 폭염 주의보가 내려졌다. 2020.06.04 dlsgur9757@newspim.com |
대부분의 자영업자는 에어컨을 최저 온도로 낮추는 등 폭염에 대응하고 있지만, 건물 구조 때문에 여파를 고스란히 맞는 사업장도 눈에 띄었다.
6일 정오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늘어선 테이크아웃 전용 매장들은 창문과 문을 열고 운영하고 있었다. 에어컨을 가동해도 열기가 그대로 들어오는 구조다.
점심시간에 많은 수의 직장인이 카페에 들락날락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입구를 개방한 것이다. 선유도역 근처의 한 테이크아웃 카페 내부는 바깥 온도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작은 카페에서는 에어컨과 선풍기를 함께 틀어놓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규모 카페를 운영하는 김(54) 씨는 "큰 매장에서는 에어컨이 3~4개 설치돼 있어서 그나마 상황이 나은데, 벽걸이형 에어컨을 달 정도로 작은 카페는 지금 날씨도 너무 덥다"고 전했다.
◆ 무서운 전기세...정부 지원은 터무니 없어
자영업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전기세다. 카페마다 편차는 있었지만, 취재진이 만난 자영업자들은 한달 전기세가 지난해보다 5~8만원 가량 더 나왔다고 설명했다. 상업용 전기요금은 지난해와 동일하다.
양평동에서 개인 카페를 운영하는 이은희(52) 씨는 "한여름에는 60~70만원 정도 나오고, 큰 매장은 100만원이 넘어간다"면서 "손님이 언제 올지 모르니 영업이 안되더라도 에어컨을 켜고 있는 상황이다. 냉방비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부 지원은 미진하다. 정부는 올해 연매출 6000만원 이하인 영세 소상공인에게 최대 20만원의 전기요금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그 기준이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김 씨는 "한달에 20만원도 못 버는 업종에 준다는 건데 임대료를 빼면 남는 게 하나도 없는 수준"이라면서 "주위에서 하루에 10만원 미만 매출이 나오는 사장님이 지난해 혜택을 받은 걸로 알고 있는데, 결국 매출이 너무 안 나와서 폐업했다"고 했다.
이 씨는 "신청했지만 떨어져서 받지 못하게 됐다. 연 매출 6000만원이면 사실상 장사가 안돼서 문을 닫을 정도의 가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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