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기업 배상책임 인정한 전원합의체 판결과 배치
"최소한 유족들에게 대한민국은 아직 해방되지 않아"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청구권 행사의 제한을 이유로 각하한 1심 판결이 항소심에서 파기됐다.
서울고법 민사33부(구회근 부장판사)는 1일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17명이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기업 7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1심 판결에 문제가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낸다고 밝혔다.
앞서 원고들은 "피고들이 피해자들의 의사에 반하여 자유를 박탈한 채 강제로 노동에 종사하게 하고 임금마저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피고는 이 사건 피해자 본인인 원고와 그 권리를 승계한 상속인들인 나머지 원고들에게 미지급 임금 및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지난 2015년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021년 1심 재판부는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에 대해 보유한 개인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소멸하거나 포기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각하했다.
당시 재판부는 "원고들이 피고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권 등을 소구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이미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에 이뤄진 외교적 합의의 효력을 존중하고 추가적인 외교적 교섭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라며 "실체법적 청구권은 인정되나 이를 소구할 수 없다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비례의 원칙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들의 재판청구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이는 강제징용 피해자의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 협정 적용대상이 아니라며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지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배치된 결과로 이에 불복한 원고들은 즉각 항소했다.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서울고법 민사33부(구회근 부장판사)는 1일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17명이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기업 7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1심 판결에 문제가 있다며 사건을 다시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낸다고 밝혔다. 2024.02.01 jeongwon1026@newspim.com |
이날 서울고법 민사33부(구회근 부장판사)는 또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 김모 씨와 유족 43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임금청구소송에서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마찬가지로 원부 일부 승소 판결했다.
앞서 김씨 등은 일제강점기 당시 미쓰비시 측에 노동을 제대로 제공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했다며 지난 2013년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원고들 중 단 1명의 임금청구권만 인정된다고 판단하고 김씨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나머지 피해자들에 대해선 강제노역을 제공한 일본 기업이 특정되지 않아 청구권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청구를 기각했다.
원고 측 대리인 강길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강제노역을 한 사실 자체에는 별 다툼이 없으나 여러 기업 중 어느 기업에서 노역을 했는지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로 동종 사건에서도 계속 패소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강제노역 관련 자료가 일본 정부와 일본 전범기업에 편중돼 있는데 그들은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고, 한국 법원의 조사에도 협조하지 않고 있다. 민사소송에서 원고의 입증책임이라는 기술적인 방법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본적으로 민사소송에서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다. 그러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피해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란 매우 어렵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도 피고 측에 피해자들의 근무 자료 등을 확인해서 제출해달라고 요구했으나 결국 입증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이날 재판에 참석한 한 유족은 "아버지에게서 군함도에 들어가 3년 동안 고생한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며 "그런데도 '자료를 가져오라'고만 하는 것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최소한 유족들에게만큼은 아직 대한민국은 해방되지 않았다. 역사를 부정하는 사실을 제대로 잡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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