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의 본토 격으로 불리는 미국 할리우드에서 활약 중인 한국계 미국인들이 부산을 찾았다. 정이삭 감독, 저스틴 전, 스티븐 연, 존 조가 참여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섹션이다.
5일 부산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는 정이삭 감독, 저스틴 전, 스티븐 연, 존 조가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제 28회 부산국제영화제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섹션에 초대됐다. 행사에 앞서 관객들과 오픈토크를 통해 만난 이들은 친숙하게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아내와 딸과 함께 제 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정이삭 감독(가장 오른쪽) [사진=부산국제영화제] |
정이삭 감독과 저스틴 전 감독은 이미 각자의 작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와 인연을 맺은 사이다. 정 감독은 "저는 부산에 5번째 방문한다. 정말 부산을 사랑하고 다시 오게 돼 기쁘다"고 인사했다. 저스틴 전은 "제 영화 세 편이 부산에서 상영됐었다. 15년 전 2008년 이후로 처음 부산에 오게 됐다"면서 기대감을 드러냈다.
윤여정, 정이삭 감독이 함께 한 '미나리'의 스티븐 연은 "지금 너무 아름다운 광경이다. 부산 관객분들과 함께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와 함께 하는 순간이 기쁘고 많은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한국 영화가 각광받는 이 시점에 함께 해 더 기쁘다"고 말했다. 존 조는 "영화제에 오니까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영화는 우리가 모두 함께 모여 즐겁게 웃고 울게 하는 미디어라는 점이 상기된다. 감명깊고 의미있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한국계 미국인,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현지에서 왕성히 활동하는 네 명의 영화인들은 각자의 영화제에 얽힌 추억을 하나씩 소개하기도 했다. 저스틴 전은 "영화라는 미디어를 기념하는 자리"라며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미국에서는 소수자 중에서도 서브섹션을 이룬다. 우리가 우리 영화를 들고 부산에 왔을 때의 지지워 응원, 열광은 유일무이하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제게 특별한 이유"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스티븐 연은 "영화제에서 재미난 추억이 생각해봐도 별로 없다. 다만 국제영화제에선 늘 서로 연결된단 느낌을 받는다. 무대에 함께하는 배우 감독들은 물론이고 각자의 작품 상영하면서 관객들과 연결됨 울림을 주고 있구나 느끼고 진정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서 "특히 디아스포라 스토리가 어떻게 한국과 연결되고 공감하게 되는지 그런 고리들을 보면 감동을 느낀다"고 벅찬 마음을 드러냈다.
영화 '미나리'에 출연한 배우 스티븐 연 [사진=로이터 뉴스핌] |
존 조는 "영화제의 추억들은 제게 늘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이유가 늘 감정적인 경험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라며 "배우로서 촬영장에서 늘 혼자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은데 이런 자리에서 비로소 나는 혼자가 아니고 공동체의 일원이구나 느끼게 된다"고 기뻐했다.
정이삭 감독은 "저는 2007년 이곳에서 쌓았던 추억이 있다"면서 "저의 영웅은 이창동 감독님이다. '오아시스'와 '밀양'을 정말 좋아한다. 파라다이스 호텔 로비에서 감독님을 뵀는데 당시에 저는 유명한 사람도 아니었고 너무나 떨렸다. 당시 커피 한 잔 하시는 걸 지켜봤던 기억이 있다. 영화제에서 나의 영웅을 옆에서 만날 수 있었고 감독님도 인간이구나 하는 감정을 느꼈다. 오래도록 제게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고 여러분도 우리가 전혀 동떨어진 사람이 아니구나. 가까운 거리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영화제"라고 말했다.
영화계의 활발한 크리에이터이자, 세상의 이야기들을 담아내는 관찰자로서 네 명의 예술가들의 시각도 엿볼 수 있었다. 존 조는 "몇 년간 제가 주목하는 건 특히 미국에서 극심한 소득불평등 문제"라며 "이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제가 또 아버지다보니 민감하게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소득 불평등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슈가 아닐까"라고 소신껏 얘기했다.
스티븐 연은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우리 모두가 가까워졌고 인터넷에서 많은 것들을 엄청난 속도로 공유한다. 그 모든 것이 과다하고 과잉으로 쌓인다는 느낌이 든다. 좋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서로 연결된 채로 조금 더 단순화된 세상을 향해 가기를 바란다. 연결성과 공감대 그런 가치를 위해 우리가 이렇게 국제 영화제를 통해 만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을 한데로 엮고 연결하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들이 소비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둘 사이에서 밸런스를 맞춰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저는 소비보다는 우리를 묶어주는 연결성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라고 짚었다.
제 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저스틴 전 감독 [사진=부산국제영화제] |
저스틴 전은 "지난 10년간 코리안 아메리칸 스토리텔링을 해왔고 미국의 아시안 아메리칸, 코리안 아메리칸의 공감대를 형성하려 노력해왔다. 최근엔 굳이 필요한가 싶다. 미리 그룹을 지레짐작하고 나누는 것이 필요할까. 오히려 그저 좋은 스토리, 감명을 줄 수 있는 스토리라면 좋은 작품같다. 제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것이 더 많은 공감대를 일으킬 수도 있다. 또 다른 입장이 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어디 있든 국적과 인종을 떠나 같은 경험을 하고 보편적인 감정,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미국 인디언이 겪었던 설움은 한국 분들도 잘 하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것이라고 우리를 범주화하고 우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싸운다면 의미있는 싸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강조했다.
정이삭 감독은 "영화 공부를 시작하면서 많은 고민을 해야하는 시기가 왔고 압박도 있었다. 어련히 프랑스 영화는 봐야하고 이런 건 해야한다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제는 가만히 보니 내게 필요하다고 생가한 역량과 지식, 가치는 모두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것이었다"고 깨달음을 얘기했다.
그는 "착한 사람이 돼야 하고 남을 도와줘야 한다 이해해줘야 한다 이런 것들은 어릴 때부터 알던 것이고 늘 제게 있던 것"이라며 "요즘은 저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고 영화를 만드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려 하고 있고 재밌게 작업하려 한다. 그만큼 관객들도 즐거워하시는 작품을 만들려 한다"고 바랐다.
[부산=뉴스핌] 정일구 기자 = 헐리우드 배우 존 조가 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10.04 mironj19@newspim.com |
끝으로 네 사람은 각자가 영화를 처음 마주한 순간을 떠올리며 오픈토크를 마무리했다. 스티븐 연은 "제 첫 영화는 미국 이민간지 얼마 안 된 7살 꼬마 때 엄마 손을 붙잡고 가서 본 터미네이터2였다"라고 말해 관객들을 웃게 했다.
정이삭 감독은 "제 첫 영화는 E.T였다 기억나는 게 상영관 안에서 제가 일어나서 봤던 것"이라고 말했다. 존 조는 "제 첫 영화는 데스쉽2였다. 텍사스에 있는 한 재상영관에서 하고 있었고 단돈 1달러에 에어컨을 쐴 수 있단 이유로 부모님이 데리고 가셨다. 미국에 오신지 얼마 안돼서 영화가 청불이라는 걸 모르셨다. 아이들이 보면 안되는 어마어마하게 잔인하고 야한 영화였는데 이상한 장면 나올 때마다 제 눈을 가렸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저스틴 전은 "첫 영화는 아니지만 재밌는 기억이 났다. 아버지께 극장에 가자고 졸라서 '데스페라도'라는 영화를 봤었다. 거기에 정말 끈적하고 대단한 정사 장면이 나온다. 당시 우리 눈을 가리지 않으셨지만 나와서 '너희랑 다시는 극장 안가'라고 말씀하셨었다. 이후 다시 함께 본 영화가 여기 있는 존 조가 출연한 영화 '스타트랙'이었다"고 친근하고도 개인적인 일화를 들려줬다.
코리안 아메리칸 영화인들을 초청해 진행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섹션에서는 정이삭 감독이 연출하고 스티븐 연이 출연한 '미나리'를 비롯해 저스틴 전 감독의 '자모자야'가 상영된다. 존 조는 해당 섹션 초청작 중 '서치'와 코고나다 감독의 '콜럼버스'에 출연했다. 스티븐 연이 출연한 이창동 감독작 '버닝'도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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