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자 약칭 대신 우리말 약칭 사용 원한다 71%
'우리말 약칭 제안 모임' 3월 조직
WHO→보건기구, WTO→무역기구로 우리말 약칭
김슬옹 원장 "생산적인 우리말 약칭 대안 제시"
한글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과학적인 언어이자 아름다운 우리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외래어와 외국어 그리고 신조어가 무차별 하게 남용되고 있습니다. 방송과 드라마, 영화, 인터넷과 SNS엔 신조어 등이 넘쳐 납니다. 이에 뉴스핌은 미디어에 쓰인 한글 오남용과 함께 쉬운 우리말을 써야 하는 이유를 풀어 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LH는 '토지'의 의미인 'Land'와 '주택'이란 뜻의 'Housing'이 합쳐진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약칭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공사 명칭마저 영어 약칭이 사용된다.
실생활뿐만 아니라 미디어서도 한국토지주택공사보다 LH로 다루는 경우가 흔하다. 기사의 특성상 많은 정보를 축약해야 하기 때문에 약칭 사용이 빈번할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다.
민과 관이 힘을 합쳐 로마자 약칭 대신 우리말 약칭을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국어학계와 언론 관계자, 국어 단체는 올 3월 '우리말 약칭 제안모임'을 꾸려 로마자 약칭 대안어를 제시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우리말 약칭 제안모임'이 여론 조사 기관과 진행한 설문조사를 지난 8월 발표했다. 조사 결과 우리 국민은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로마자 약칭 대신 우리말 약칭 사용을 원한다고 답한 비율이 71%에 다다랐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WHO, OECD, WTO, IAEA를 제외한 나머지 12개 조직의 인지도 평균은 12%에 불과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로마자 약칭의 인지도가 높은 경우에도 우리말 약칭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지도 1위인 WHO(71.5%)를 우리말 약칭으로 '보건기구'로 바꿔부르자고 한 비율이 77.6%, 인지도 3위인 WTO(57.7%)를 '무역기구'로 바꿔 부르자는 제안에 적절하다고 응답한 비율도 79.9%로 나타났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경협기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연공위'로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를 '지자권기구'로 바꿔 부르자는 제안의 수용도는 60% 수준으로 조금 낮았는데, 이는 주요 단어의 머리글자만으로 약칭을 지은 영향으로 분석됐다.
'우리말 약칭 제안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은 자주 사용하는 공공기관의 명칭은 우리말로 순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슬옹 원장은 "LH는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합병되면서 각각을 뜻하는 Land(토지)와 Housing(주택)의 첫 자를 따서 지은 이름인데, 소통을 위해서는 난해해 효용성이 떨어진다"며 "원이름의 뜻도 살리면서 효율성 있는 우리말 약칭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토지주택공사'도 '토주공'이라 부르는 것이 LH보다 훨씬 소통성이 좋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김슬옹 원장은 "영어 약자가 남용되먄서 소통의 어려움이 있다"며 "이러한 기관들이 명칭을 널리 알리려면 약칭이 필요한 건 동의한다.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말 약칭 제안모임'은 생산적인 대안 마련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영어 약칭이 유행하는 건 언어의 경제성 때문인데, 한국어로도 줄임말을 할 수 있다"며 "모임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수용성을 조사해 대중성을 검증한 다음 언론기관에 권고하고 있다"라고 부연했다.
김 원장은 우리말 약칭의 예에 대해 "우리 언론에서 자주 쓰고 있는 미국의 중앙은행에 해당하는 '미연방준비제도'를 영어 약자로는 'FRB, FED'라고 하지만 이는 거의 쓰지 않고 '미 연준'으로 줄여 부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