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서 징역형 집행유예→난민 인정→2심서 '형 면제'
"불법 입국도 난민협약 따라 형 면제 대상"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우리나라에 난민신청을 할 목적을 갖고 불법으로 입국해 유죄를 선고받았더라도, 이후 난민으로 인정받았다면 형을 면제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위계공무집행방해,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 사건에서 형 면제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이란 국적인 A씨는 우리나라에 입국해 취업 및 난민신청을 할 계획이었으나 마치 사업 목적으로 초청된 것처럼 가장해 입국하기로 하고, 2016년 1월께 브로커 B씨에게 미화 4700달러를 주면서 사증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B씨는 서울의 한 원단도매 무역회사에 '구입할 원단을 보러 가고 싶은데, 사증을 받을 수 있도록 초청장 등을 보내달라'는 이메일을 보냈고, 초청장을 받은 뒤 이를 A씨에게 전달했다.
A씨는 같은 달 이란 테헤란에 있는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단기상용사증(C-3)을 신청하면서, 사증 발급 담당 공무원에게 해당 초청장 등 부정하게 발급받은 서류를 제출했다.
검찰은 A씨가 B씨와 공모해 사증 발급 담당 공무원의 정당한 직무집행을 방해하고, 허위사증 신청으로 인해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했다며 공소를 제기했다.
1심은 A씨의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으나 2심은 A씨의 형을 면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심이 진행되는 도중 A씨가 난민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A씨는 2016년 3월 우리나라에 입국해 난민인정신청을 했으나 2017년 8월 불인정결정을 받았다. 이의신청도 기각당한 그는 2018년 9월 서울행정법원에 난민불인정결정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2019년 8월 법원으로부터 '난민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선고받았다. 해당 판결은 2020년 11월 확정됐다.
2심 재판부는 "A씨는 2018년 7월 체포됐는데 이때는 난민불인정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이 기각된 후였다"며 "A씨가 처음부터 난민인정신청을 할 목적으로 이란에서 사증 발급을 신청했다면 자칫 종교적인 이유로 박해를 받는 등 신변상 위험에 노출될 우려도 있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A씨는 2015년 기독교 세례를 받은 뒤 예배를 드리다 체포·구금돼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행정법원은 개종 경위나 입국 경위에 대한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판단된다"며 "따라서 A씨가 불법으로 입국하거나 불법체류하고 있는 것에 대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부연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재판부는 "대한민국헌법 제6조 제1항은 '헌법에 의해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이하 난민협약)은 우리나라에서 1992년 비준을 거쳐 1993년부터 효력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난민협약 제31조 제1호에 따라 난민은 우리나라 형사재판에서 형 면제의 근거 조항이 되고, 이때 형 면제 대상이 되는 '불법으로 입국하는 것'은 불법적으로 입국하거나 불법적인 방법으로 입국허가·사증 등을 받아 입국한 경우도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난민협약 제31조 제1호는 '체약국은 그 생명 또는 자유가 제1조의 의미에 있어서 위협되고 있는 영역으로부터 직접 온 난민으로서 허가 없이 그 영역에 입국하거나 또는 그 영역 내에 있는 자에 대해 불법으로 입국하거나 또는 불법으로 있는 것을 이유로 형벌을 과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조약의 문언에 관해 대법원이 갖는 해석 권한을 행사해 난민협약 제31조 제1호의 '불법으로 입국하는 것'의 의미를 구체화해 설시함으로써, 향후 난민협약 제31조 제1호에 따른 형 면제 대상 범죄가 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hyun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