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K, 도나 후앙카 개인전 9일 개최
조각·페인팅·퍼포먼스, 향과 소리까지 전시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은색, 푸른색, 초록색 페인팅을 한 모델들이 전시장을 걸어다닌다. 퍼포머이자 모델인 이들이 전시장 벽면에 걸린 회화 앞에 섰다. 모델과 회화는 한 작품인듯 조화롭게 어울려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전시장 중앙에 놓인 스테인리스 조각에 이 광경이 비친다. 이 역시 제3의 작품이 되었다. 관람객의 등장은 또 하나의 작품으로 가는 과정이다.
볼리비아계 미국인 작가 도나 후앙카(40)가 전시장을 활용하는 법이다. 그는 회화, 조각, 퍼포먼스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종합 예술을 선보인다. 작가는 관람객이 작품을 보는 순간 만큼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열어두고 감상하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작업에 임한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도나 후앙카 개인전 전시장 전경 [사진=스페이스K] 2023.03.09 89hklee@newspim.com |
코오롱그룹의 문화예술 나눔공간인 스페이스K 서울은 9일부터 6월8일까지 도나 후앙카의 개인전 '블리스 풀(BLISS POOL)'을 개최한다. 점토, 모래와 같은 천연 재료와 플라스틱, 인조 가죽과 같은 인공 재료를 혼합해 탄생한 신작 20점을 소개한다.
도나 후앙카는 2017년 아트바젤 언리미티드에 소개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됐지만, 국내서는 잘 소개되지 않은 작가다. 스페이스K는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재조명이 필요한 중견 작가 등을 발굴해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앞서 경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은 후 환각상태를 이미지화 하는 이근민 작가, 사회의 갈등과 부조리를 남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미술작가 다니엘 리히터, 스퀴지를 활용해 거대한 추상 작품을 그리는 제여란 작가 개인전 등을 펼쳤고 이러한 흐름에 이어 올해는 조각,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몰입감 넘치는 종합 예술 공간을 선사하는 도나 후앙카의 전시로 관람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다나 후앙카가 전시를 대하는 태도가 종합 예술인 이유는 그가 어릴적 경험한 '우르쿠피냐' 축제의 영향이다. 볼리비아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시카고에서 자란 작가는 카톨릭과 안데스 전통을 융합한 볼리비아 축제인 '우르쿠피냐'에 들렸고 그곳에서 경험한 음악, 춤, 전통 의상은 현재까지도 그의 작업에 영감이 됐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도나 후앙카 개인전 전시장 전경 [사진=스페이스K] 2023.03.09 89hklee@newspim.com |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나 휴스턴대학교와 스코히건 미술학교에서 공부한 후 현재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도나 후앙카는 최근 워싱턴대학교 헨리아트갤러리(2022), 브리스톨 아르놀피니(2022)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현재 멕시코 사포판아트뮤지엄에서 개인전도 진행하고 있다.
작가는 휴스턴대학교와 스코히건미술학교에서 공부한 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예술대학교에서도 수학했다. 여러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하며 미술계가 아닌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작품 활동 초기에는 회화가 남성 중심 미술계를 상징한다고 생각해 거부감을 가졌지만 바디 페인팅을 시작하면서 그 고유의 자유로움과 즉흥성에 매료됐다.
이번 개인전은 도나 후앙카가 스페이스K 서울의 전시 공간의 조형성을 살려 작품을 배치해 눈길을 끈다. 전시장 내 마주하는 두개의 대형 곡선 벽면을 따라 채워진 3m 높이의 각 4점, 12점씩 걸린 회화 작품은 벽면의 조형을 살리면서 압도적인 규모로 몰입감을 선사한다. 평평한 벽면에서 보는 회화와 달리 굽은 곡선의 공간감을 활용한 작품 배치로 보는 이들의 감탄을 이끌어낼 전망이다.
파랑, 초록, 주황 등 화려한 색감과 에너지 넘치는 추상은 곡선을 따라 부드럽게 펼쳐지지만 압도되는 공간감을 형성한다. 신작 회화 'BLISS POOL, 2023'은 추상 회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과거 퍼포먼스 사진 위에 모래 등을 섞은 오일 페인트를 채색한 결과물이다. 작가는 작품에 직접 손으로 스크래치, 소용돌이, 액체 자국을 흔척처럼 남기는데, 이는 몸을 통해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다. 작가는 신체와 피부에서 출발한 총체적 연출은 관객의 기억, 감각, 감정을 반응시켜 사회와 자연에 대한 통찰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도나 후앙카 [사진=스페이스K] 2023.03.09 89hklee@newspim.com |
두 곡선 벽면 사이, 전시장 중앙에는 둥그런 구조물 위에 스테인리스 조각이 설치돼 있다. 이 조각에서도 신체를 반영한다. 조각 표면을 거울처럼 주변을 비추고 있어 관람객은 작품을 감상하면서 작품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전시의 참여자가 된다. 그리고 바디 페인팅을 한 모델들이 이 사이를 천천히 이동하면서 벽면에 흔적을 남기고 움직임을 기록한다. 모델들의 몸에 채색된 물질은 강황, 점토, 달걀, 커피, 설탕 등 천연 재료와 특수 제작한 화장품이다.
모델들이 함께하는 라이브 퍼포먼스는 작가의 최소한의 지휘로 운영된다. 도나 후앙카는 "큰 틀의 지시는 하지만 구체적이진 않다"며 "모델들이 쉬고 싶으면 쉬고, 자유롭게 움직이다보니 극처럼 만들어진 스토리가 아니라 즉흥적인 상황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도나 후앙카는 자신의 작업이 관람객에게 보고 싶은 대로 보이길 바라는 마음도 전했다. 그는 "특별한 관람 가이드를 주고 싶지 않지만, 작품이 관람객 개개인에게 말하는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 라이브 퍼포먼스는 12일까지 나흘 동안 전신에 바디 페인팅을 한 2명의 모델이 전시 공간에 등장하는 것으로 연출된다. 관람객은 모델의 느린 움직임을 통해 신체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퍼포먼스가 종료된 이후에는 모델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 작가의 다채로운 신작과 함께 공간을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다.
전시장에는 향과 소리도 입혀져 있다. 관람객의 후각과 청각을 차극해 공감각적 경험을 극대화한다. 후각과 청각이 대상 인식과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전시에 적용한 거다. 후앙카는 마치 콜라주처럼 향을 만들어 기억의 표식으로 활용하는데 이번 전시에는 팔로 산토 나무와 태운 머리카락 등을 혼합했다. 이 향은 자연의 순환에 대한 작가의 관심, 특히 탄생과 소멸 그리고 재생산의 일련의 과정과 연관이 있다. 전시장에 울려펴지는 소리는 물에서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소리의 조합이다. 작가는 '소리'를 관람객과의 소통의 자리로 마련했다. 눈과 귀와 코로 다양한 감각을 받아들일 준비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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