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 함구
김여정 "절대 상대 않을 것"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평양에서 발행되는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19 공동선언 4주년을 맞은 19일 관련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남북관계에 대해 다룬 기사를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2018년 9월 방북한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하고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 등 5개 분야에 합의했던 사실을 1~3면에 걸쳐 20여장의 사진을 실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것과 확 달라진 분위기다.
[평양=뉴스핌] 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평양공동선언서에 서명한 뒤 펼쳐 보이고 있다. 2018.09.19 |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도 19일 평양 공동선언 4주년과 관련한 기사를 보도하지 않았다. '우리민족끼리' 등 대남 선전매체도 함구한건 마찬가지다.
이는 지난 8일 김정은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로 나타난 북한의 '핵 무력 정책 법령화' 등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핵무기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과 달리 사실상 김정은 위원장이 마음먹으면 자의적으로 핵사용을 결정하고 즉각 집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한국과 국제사회는 크게 우려하며 대책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북한의 이른바 핵 무력 법령화는 4년 전 공동선언에서 김정은이 약속한 비핵화 이행과는 완전 어긋난다.
당시 김 위원장은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나가기로 확약 한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핵 시설은 물론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등의 폐기와 서울 답방 등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서울=뉴스핌]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2022.08.15 photo@newspim.com |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비방은 더욱 거칠어지는 분위기다. 김정은은 지난 7월 27일 이른바 '전승절'(6.25 전쟁 휴전협정 체결 기념일)에는 연설을 통해 "핵보유국의 턱밑에서 살아야 하는 숙명적인 불안감"운운하며 대남 핵 위협을 노골적으로 가했다. 또 "윤석열 정권과 그의 군대는 전멸될 것"이란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 재임 시 '삶은 소대가리' 운운하며 불만을 표출하던 북한이 그 기류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2018년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를 화해・협력의 기류로 만들었던 김정은은 이듬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에 비난을 재개했다.
북한은 문 전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다.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18일 윤석열 대통령의 8.15 경축사 대북제안을 거부하는 담화에서 "한때 그 무슨 '운전자'를 자처하며 뭇사람들에게 의아를 선사하던 사람이 사라져 버리니 이제는 그에 절대 짝지지 않는 제멋에 사는 사람이 또 하나 나타나 권좌에 올라앉았다"고 비난했다.
김여정은 또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라며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이란 말도 했다. 최근까지도 문재인 정부에 대해 '괴뢰' 운운하는 비방을 이어왔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사진=공동취재단] 2022.09.19 yjlee@newspim.com |
9.19공동선언 합의 당사자인 문재인 전 대통령은 18일 "대화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며 남북 간 신뢰와 합의이행을 강조했다.
하지만 김정은의 핵 드라이브 때문에 공허한 소리에 그칠 수밖에 없게 됐다.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와 수위가 높아진 대남 비방으로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게 됐다는 점에서다.
북한은 당분간 핵 무력 법령화 등을 내세운 핵・미사일 도발 위협 행보를 이어가며 식량부족을 비롯한 경제난과 코로나19 방역 등 체제 내부를 다지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핵 도발 위협에 한・미가 16일 워싱턴에서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를 통해 "압도적이고 결정적인 대응에 직면할 것"이란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는 점에서 향후 남북관계의 대립은 물론 북・미 간 대치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한 정상이 "평화와 번영으로 향한 성스러운 여정에 언제나 두 손을 굳게 잡고 앞장에 서서 함께 나아가자"고 약속했지만 불과 4년 만에 상황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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