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상대 손배 상고기일서 '상고 기각'
[서울=뉴스핌] 장현석 기자 = 6·25전쟁 당시 미군의 총격으로 피란민들이 희생된 '노근리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국가에 책임이 없다며 유족의 패소를 확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4일 유족 배모 씨 등 17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원고들의 상고를 기각한다"고 선고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대법은 "이 사건에서 '미군의 행위'와 관련해서는 주한미군민사법이 적용되거나 유추적용될 수 없고, '경찰관의 행위'와 관련해서는 제출된 증거만으로 노근리 사건과 관련한 피고 경찰의 직무유기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판결했다.
대법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다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노근리 사건에 대해 원고들은 국가배상책임의 근거로 일정한 주한미군 구성원 등의 불법행위가 있는 경우 대한민국이 국가배상책임을 지도록 한 주한미군민사법의 적용 내지 유추적용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심은 주한미군민사법 부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노근리 사건에는 주한미군민사법이 적용될 수 없고 유추적용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짚었다.
또 "원고들은 주한미군민사법의 적용 내지 유추적용에 관한 주장과는 별개로 피고 대한민국의 공무원인 경찰관들의 불법행위도 손해배상청구의 직접 근거로 주장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원심은 피고 경찰이 당시 충북 영동군 일대에 주둔하면서 피란민 통제 업무를 수행하던 미 제1기병사단의 철수 명령에 따라 철수한 것으로 보일 뿐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피고 경찰의 직무유기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은 "위와 같은 원심 판단에 주한미군민사법의 적용 범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관련 법리 및 증거 관계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가배상책임 내지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한 원심판결을 확정한다"고 덧붙였다.
법원에 따르면 미군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25~29일 충북 영동군 황간면 경부선 철도를 이동하는 피란민 대열을 향해 기관총 사격을 가해 수많은 주민이 숨졌다.
정부는 2005년 당시 사망자 150명, 행방불명 13명, 후유장애 63명 등을 피해자로 확정했다.
이후 노근리 사건 유족 17명은 2015년 5월 '정부가 유감 표명은커녕 배상 및 보상을 하지 않는다'며 2억55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 측은 노근리 사건 발생 당시 사격을 가한 주체는 미군이지만 한미 정부가 대구 임시정부청사에서 공동 결정한 '피란민 통제지침'에 의해 사격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해당 지침에는 '미군 전선에 접근하는 피란민에게 경고 사격 후 접근 시 사격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미국 정부는 2001년 1월 유감 표명 성명을 발표하고 400만 달러의 추모 기금 제공을 약속했지만 5년 뒤 이를 다시 회수했는데, 유족 측은 여기에 한국 정부의 책임이 있다고 봤다.
한미 양국은 노근리뿐만 아니라 6·25전쟁 당시 모든 미군 관련 사건 희생자들까지 추모하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으나 노근리 추모 사업을 우선 추진해 달라는 유족 요구에 직면했고, 이 문제가 풀리지 않자 미국이 기금을 회수했다는 취지다.
이 사건 유족 중 한 명인 정구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은 "정부의 실책과 잘못된 협상 탓에 노근리 유족들이 피해 구제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1·2심은 유족 측의 패소 판결을 내렸다. 원심 재판부는 "미군에 의해 발생한 손해배상청구 관련 규정을 담은 주한미군민사법은 부칙 제1항에 따라 서울 이외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선 1968년 2월10일, 서울 지역은 1967년 8월10일부터 적용될 수 있을 뿐이므로 노근리 사건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주한미군민사법 부칙 제2항에 따라 주한미군민사법이 시행되기 전 미군에 의해 발생한 민사상 손해에 관해서는 미국에 대해서만 배상을 구할 수 있고 문언을 넘어 주한미군민사법이 노근리 사건에 유추적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 역시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원고 패소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kintakunte8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