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강주희 기자 = "스토킹 범죄 피해자 안전 조치의 실효성을 높이는 구체적인 방안을 검·경이 조속하게 강구하여 여성들의 안전한 일상을 지켜주길 바란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경찰의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를 받던 40대 여성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 회의에서 한 말이다. 불과 석 달 전에도 신변보호 대상자가 피살된 상황에서 또다시 유사 사건이 일어나니 대통령까지 대책에 나선 것이다.
이번 사건 역시 검경이 범행 징후를 놓치면서 빚어진 참극이다. 가해자 조씨는 범행 사흘 전 폭행·특수협박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경찰은 피해 여성을 신변보호 대상자로 등록하고, 가게에 찾아와 행패를 부린 조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일부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강주희 사회부 기자 |
인신구속에 실패한 경찰은 조씨에게 100m 이내 접근금지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인 긴급응급조치 1·2호를 적용했다. 그러나 조씨는 이를 무시하고 피해자를 찾아갔고, 결국 범행을 저질렀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제대로 분리하지 못한 경찰의 허술한 대응이 안타까운 인명피해로 이어진 셈이다.
경찰이 피해자의 상황을 '심각' 단계로 분류하고도 잠정조치 4호를 신청하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잠정조치 4호는 가해자를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최대 1개월 가두는 것으로 스토킹처벌법상 명시된 최상위 조치다. 조씨가 앙심을 품고 추가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높은데 경찰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주의를 당부했다니 기가 막힌다.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에서 신변보호를 받던 30대 여성과 12월 송파구에서 신변보호 대상자 일가족이 참변을 당하는 일이 잇따르자 경찰은 전담 데스크포스(TF)를 꾸리고 피해자 보호 체계 개선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런 약속이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음이 이번 사건을 통해 확인됐다. 경찰은 반성해야 한다.
검찰 역시 책임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피해자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했었는지 의문이다. 피해자는 신변보호 요청 이후 매일 자신의 가게를 찾아오는 조씨 때문에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언제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검찰은 혐의 소명 부족을 영장 반려 근거로 내세웠다.
만약 검찰이 피해자의 고통을 인식했더라면 최악의 경우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더구나 검찰은 최근 경찰이 가해자를 유치장에 가두는 잠정조치 4호를 법원에 직접 신청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하자 '검찰패싱'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지난해 신변보호를 요청한 피해자는 2만여 명에 달한다. 부실한 대응으로 인한 참극을 이제 멈춰야 하는 이유다. 검경은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분리해 보호하는 방안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신변보호 대상자가 숨지는 참사를 막지 못한다면 국민은 수사기관을 신뢰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filte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