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권·양육자 지정하면서 '한국어 능력' 이유로 한국인 父 승소
대법 "추상적이고 막연한 판단…차별 결과 낳을 수도" 파기환송
[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녀의 친권과 양육권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한국인 A씨와 베트남인 B씨의 이혼 및 양육자 지정 소송에서 A씨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환송하고 B씨 승소 취지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이들 부부는 지난 2015년 결혼해 2016년과 2018년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부부간 불화로 B씨가 2018년 8월경 만 2세에 불과했던 첫째 딸을 데리고 베트남을 다녀오면서 그대로 별거 상태에 들어갔고 쌍방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B씨가 현재까지 딸을 양육하고 있고 딸도 부친인 A씨보다는 B씨와 친밀도가 높아보인다는 사정은 인정하면서도, B씨의 한국어 소통능력이 부족하고 거주지와 직장이 불안정하다는 점이나 A씨가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다는 점 등을 들어 A씨를 자녀들의 친권자와 양육자로 지정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그러나 대법은 "미성년 자녀의 양육에 있어 한국어 소통능력이 부족한 외국인보다는 대한민국 국민인 상대방에게 양육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라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판단으로 해당 외국인 배우자가 미성년 자녀의 양육자로 지정되기에 부적합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공교육이나 기타 교육여건이 확립돼 있어 미성년 자녀가 한국어를 습득하고 연습할 기회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으므로 부모의 한국어 소통능력이 자녀의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며 "오히려 양육자 지정에 있어 한국어 소통능력을 고려하게 되면 출신 국가 등을 차별하는 결과를 낳게 될 수 있다는 점이나 외국인 부모의 모국어 및 문화에 대한 이해 역시 자녀의 자아 존중감 형성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 등에 대해서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B씨가 A씨와 별거할 당시부터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평온하게 양육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양육 환경이나 애정, 양육 의사, 경제적 능력, 딸과의 친밀도 등에 어떠한 문제가 있다거나 A씨보다 적합하지 못하다고 볼만할 구체적인 사정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A씨도 별다른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고, 추후 경제활동을 해도 자신의 어머니에게 자녀 양육을 대부분 맡길 의사를 표시하는 등 자칫 B씨가 딸을 인도하지 않으면서 양육비까지 부담하게 되는 결과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은 "원심은 B씨가 한국어 소통능력이 부족해 딸의 언어습득, 향후 학교 생활 적응이 우려스럽다고 했지만 이러한 판단에 대한 막연한 추측을 넘어 이를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면서 "B씨는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딸을 임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둘째 아이를 임신 출산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어를 제대로 습득할 기회를 가졌을 것이라 보이지 않고 A씨로부터 교육 기회를 제공받은 일도 없는 것으로 보여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어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사정을 쉽게 배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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