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은지 기자 = 과거의 어떤 것을 상기하는 것은 좋게 말해 향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발목을 잡는다'는 표현부터 떠오른다. 어떤 이들은 앞을 향해 나아가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지난 성공이나 이루지 못한 것에 매몰돼 큰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 에너지가 자신의 체력 안에서 소모되면 상관없지만 대중에게 모습을 보여야 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토론이 23일 2회차를 마쳤다. 앞선 토론회에서 나왔던 '조국수홍'처럼 치열한 논쟁을 가져온 키워드들이 또 다시 등장하며 눈과 귀를 사로잡았음은 분명했다.
대선주자 다수의 공약을 베끼는 특정 후보를 겨냥해 '카피닌자'란 용어가 등장하며 여론을 달궜고 청약 통장·개설과 관련, "집이 없어서 만들어 보지 못했다"는 답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듯해 한숨을 자아내게도 했다.
그런 와중에 도가 지나친 과거에의 머무름은 그것의 호와 불호를 불문하고 타인에게 '피로감'이란 단어를 부여했다. 피로를 전가 받은 이는 '그래서 누군가의 비전은 무엇인가'에 대해 곱씹고, 의심하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일단 토론회는 다른 후보들의 발표에 대한 경청 없이 일찍이 자리를 뜨던 사례, 준비해온 원고만 줄줄 읽던 그런 학예회 단계에서는 탈피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에 찬 아쉬움들은 여전히 가시지를 않는다.
후보들은 1차 컷오프 전까지 제대로 된 토론을 하지 못했다. 토론회를 대신했던 '비전발표회'와 '체인지 대한민국, 3대 약속 발표회'가 있었지만 안팎에서 이를 '학예회'에 비유할 정도로 반응은 썩 좋지 못했다. 그래서 토론회 일정이 본격적으로 나왔을 때, 대중들은 단비를 만난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황은 대중의 갈증을 채워주기기엔 뭔가 충분하지 못해 보인다.
일부 후보는 국민과 지지자들이 어떤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지에 깊은 공감을 하긴 했을까.
2차까지 이어진 토론회에서는 계속해서 '주도권 토론' 이라는 것이 마련됐다. 자신의 업적만을 이야기하는데 이를 모두 할애하거나 경선 기간 내내 여기서 단 하나의 이슈만을 강조하는 후보도 있었다. 2차 토론회에서는 사회자의 발언시간 초과를 알리는 외침이 순간 순간 터져 나왔음에도 이를 무시하는 모습도 잇따랐다. "모범적으로 주도권 토론을 펼쳐달라"는 요청도 토론회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 튀어나왔다.
또 6분 중 상대가 답변할 시간이 30초 가량인 경우에도, 곤란한 질문에 대답을 회피하기 위해서도, 질의가 아닌 자신의 입장을 장시간 관철하기 위해서도 "제 주도권 토론이니까"라는 말은 만병통치약처럼 남발됐다.
2차까지의 토론회라면 적어도 질문과 답변의 시간을 적절히 할애해 토론 진행방식의 문제점을 보완해야 하는 단계가 아닌가. 주고받음의 순환이 원활하게 설계돼야 하는데 두번의 토론 과정에서 이런 피로감을 줄이지 못한 것에 의문이 들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소소한 장치 하나가 부재한 데에, 그리고 그 장치가 부재한 것을 무기로 비전이 아닌 과거를 무한정 내세우는 것에서 '실망스럽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올까 우려가 되는 마음 역시 숨길 수 없다.
특히나 경선이 흥행하기 위해선 과거 그리고 이전의 '발표회'에 묻혀있는 후보들을 밖으로 꺼내와야만 한다. 진정 8강 무대서 국민이 요구하는 것이 어떤 것이며, 자신이 무엇을 '주도'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고민과 돌아봄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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