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견 단정은 문제" 반발 또는 협력업체 추가 고용도
경총, 대법 판결에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지 않아"
[서울=뉴스핌] 정승원 김기락 기자 =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돼 2년 이상 근무했거나 게약 외 업무를 수행한 노동자를 원청 기업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에 대기업들이 우려하고 있다.
대법원 1부는 지난 8일 현대위아 사내협력업체 직원들이 현대위아를 상대로 제기한 고용의사 표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현대위아가 하청업체 직원들에 대해 직·간접적인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보고 계약 외 업무를 수행한 하청업체 직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사내 하청업체 관련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 중인 기업들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사내하청업체 직고용 여부 문제로 재판을 진행 중인 곳은 포스코, 현대자동차, 기아, 현대제철, 현대중공업그룹, 한국GM(한국지엠) 등이다.
우선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 2010년 대법원이 양사가 사내하청업체 직원을 불법파견을 했다는 판결을 내린 뒤에 계속해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017년 현대차와 기아의 사내하청직원 37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여기에 포스코 역시 광양제철소 노동자들에 대해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한국지엠 역시 불법파견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인천지방법원은 지난 5월 한국지엠 하청업체 소속 직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한국지엠은 카허 카젬 사장은 불법 파견 혐의로 출국금지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카젬 사장은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부평, 창원, 군산공장에 노동자 1700명을 불법 파견한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출국금지 조치된 바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도 대법원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판결을 남겨두고 있다. 철강사 한 관계자는 "각 기업마다 업무 조건 및 원청과 하청 사이의 업무 프로세스 등이 제각각이므로 불법 파견으로만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의 경우 약 7000명의 협력업체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직접 채용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철강 업계는 물론 산업계 전체적으로 봐도 흔치 않은 조치다. 그런가 하면, 포스코는 지난달 '협력사 상생협의회'를 구성해 협력사 직원들의 근무 여건 개선 및 임금 격차를 해소해나가기로 했다.
반면 자동차 업계는 하청업체 직원의 직접고용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완성차 업계 한 관계자는 "업황이 좋은 쪽은 추가 고용 여력이 있을 수 있어도 자동차 업체와 같이 산업 방향이 바뀌고 있는 업종은 추가 고용 여력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며 "법리적으로만 해석해 불법판결을 내리는 면에 아쉬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업체와 정부, 정규직 및 비정규직 노동자가 참여해 논의할 수 있는 사회적 협의체라도 있으면 좋겠다"며 "회사 입장에서 무조건적 직접고용 명령은 어려움이 많다"고 밝혔다.
재판으로 넘어가지 않았지만 직접고용 문제와 관련해 노사가 대립 중인 곳도 있다. 현대건설기계는 하청업체인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은 지난해 8월 불법파견 진정서를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 접수했고 울산지청은 현대제철에 직접고용 지시명령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현대제철은 "불법파견이라고 볼 수 없다"며 이의를 신청한 상태다. 이에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현대건설기계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준비 중이다.
대법원의 현대위아 불법파견 판결에 한국경영자총회(경총)은 유감을 강하게 표명했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대기업 관계자들도 큰 틀에서 경총과 입장이 같다. 신규 채용은 앞으로 더욱 어렵게 될 것이란 볼멘소리도 나온다.
경총은 "현대위아 협력업체는 인사권 행사 등의 독립성을 갖추고 원청과 분리된 별도의 공정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파견 결정을 내린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우리나라는 제조업에 대한 파견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등 글로벌스탠다드와 부합하지 않는 강한 규제를 부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총은 "파견근로자 보호를 위한 법을 근거로 도급의 적법 유무를 재단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조치"라며 "코로나 위기 극복과 제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해 생산 방식에 대한 규제를 글로벌스탠다드에 맞게 개선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도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계 관계자는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어느 순간 정규직이 된다고 했을 때, 기존 정규직 직원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될 것"이라며 "법 보다 산업 및 국가 경쟁력을, 현재 보다 미래의 고용 시장 등을 냉정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origi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