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한미 정상회담 계기 불필요한 용어 혼용 정리"
전문가 "대북정책서 외교 중시하는 바이든 의지 표현"
[서울=뉴스핌] 이영태 기자 = 한국과 미국이 혼용돼던 '북한 비핵화'를 '한반도 비핵화'로 통일하기로 하면서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언급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CD)'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 및 FFVD(최종적이고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가 어떻게 다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5일(현지시각)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EAP)은 최근 임명된 성 김 대북특별대표(Special Representative for the DPRK)가 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과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논의했다며 "김 대표는 후나코시 국장과의 대화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기타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공동의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전했다.
[서울=뉴스핌]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각) 한·미 정상회담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2021.05.22 photo@newspim.com |
일본 외무성도 26일 홈페이지를 통해 전날 김 대표와 후나코시 국장이 통화를 했다며 "향후 미국의 정책 리뷰(재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대북정책을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데 있어 한·미·일, 미·일이 계속 긴밀히 연계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두 사람은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와 일본인 납치 문제 등도 논의했다.
앞서 한·미 정상은 지난 21일 회담을 갖고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공동의 약속과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다루어나가고자 하는 양측의 의지를 강조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이 같은 날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한 공동성명 영어 원문은 "President Biden and President Moon emphasize their shared commitment to the 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heir intent to address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s(DPRK's) nuclear and ballistic missile programs"이다.
미 국무부가 성김 대표와 일본 후나코시 국장의 통화내용을 소개하며 사용한 단어와 한미 정상이 공동성명에서 언급한 표현이 바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CD, the 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다.
CD와 함께 북한 비핵화를 사용할 때 자주 사용해온 표현은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와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최종적이고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전날 문 대통령 방미 결과를 브리핑하면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로 달랐던 한미의 용어가 '한반도 비핵화'로 통일된 과정에 대해 "우선 지난 '2+2 회담'(한미 외교국방장관 회의) 계기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용어가 보다 더 정확한 목표라는 점을 설명드린 바 있다"며 "미국 바이든 신행정부 출범 이후 초기에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비핵화'를 혼용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한미정상회담 계기로 그러한 양측의 불필요한 오해를 살만한 용어를 통일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비핵화는 1992년 우리가 남북한 간에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했을 때부터 사용했던 용어이고, 또 2017년 4월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 한반도 비핵화의 의미를 분명히 했다"며 "즉 남북 양 정상은 한반도를 핵 위협과 핵 무기가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기로 했다고 약속을 한 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18년 6월 북한과 미국과의 정상회담 결과로 채택된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분명하게 설정했다"며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지대화'와 '한반도 비핵화'의 차이에 대해선 "큰 차이는 없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에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란 용어로 통일해 쓰고 있다. 한미 간에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비핵화란 용어가 혼용되다보니 명확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정의용 장관이 설명한 것"이라며 "CD와 CVID, FFVD 등 구체적으로 어떤 비핵화냐라는 점에 대해서는 '북핵문제'가 불거진 이후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북한 및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된 역사를 꼼꼼히 살펴봤다.
◆ 북핵관련 용어들 CVID·FFVD·CVIA·CD의 유래와 의미
[사진=로이터 뉴스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공동성명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2018.6.12 |
먼저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는 2003년 미국과 리비아 간 협상 때 만들어진 용어다.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 국무부 브리핑에서 처음 사용된 이후 북핵문제의 최종 목표를 상징하는 미국의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졌다. 반면 북한은 CVID가 패전국에게 받는 항복문서이자 일방적인 무장 해제의 의미라며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이 때문인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마친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 CVID 대신 '완전한 비핵화(CD·complete denuclearization)'라는 용어를 썼다. 당시 북미정상회담 전날까지도 미국은 북한에 CVID를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작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반발을 고려해 다소 완화된 표현으로 합의해 준 것이다.
이후 미국이 제시한 개념이 바로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최종적이고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다. 트럼프 정부는 북미 공동성명을 도출하기 위해 북한에 지나치게 양보한 것 아니냐는 미국 내 강경파의 호된 비판을 받자 FFVD란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싱가포르 회담 이후 후속 논의를 위해 세 번째로 평양을 방문하기 직전인 2018년 7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FFVD가 이루어질 때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할 것"이라며 FFVD 개념을 처음 언급했다. 결국 FFVD와 CVID는 의미는 같지만 표현만 다르다는 뜻이다.
이 밖에 북핵문제를 거론할 때 사용되는 표현으로 CVIA(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Abandonment)가 있다. CVIA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포기란 뜻이다. 지난 5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 회의 공동성명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북한의 모든 불법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포기라는 목표를 유지한다"며 CVIA를 사용했다..
CVIA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에 대응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 1718호에서다. 북한 핵무기 외에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도 CVIA를 적용한 것이다.
[런던 로이터=뉴스핌] 김근철 기자 =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과 유럽연합 대표가 5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서 G7 외무장관 회의 개막에 맞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2021.05.06 kckim100@newspim.com |
G7 외교장관회의 공동성명에서 CVIA가 사용된 것은 북한의 반발을 고려한 '맞춤형 대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즉 CVID의 'D'가 폐기(dismantlement)를 의미하는 강제성이 있는 반면, 포기(abandonment)를 뜻하는 CVIA의 'A'는 설득의 과정이 포함돼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대상이 비핵화인지, 아니면 모든 대량살상무기 및 탄도미사일을 포함하느냐에 따라 CVID와 CVIA가 사용되는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북핵문제 전문가는 "바이든 행정부가 한미공동성명과 미일공동성명 등 CVID나 FFVD 대신 CD를 사용한 것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외교로 풀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북한이 싫어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향후 북미 협상과 외교적 접근을 염두에 둔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을 상징하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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