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동선 사회문화부장 = <국화와 칼>.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쓴 이 책은 일본인의 성향을 직관적으로 풀어쓴 명저로 꼽힌다. 혼네(本音, 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 겉모습)로 요약되는 일본인의 속성을 완벽하게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음 속엔 칼을 차고 있으면서도 겉으로 국화를 내미는 일본인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짚은 것이다. 더구나 한번도 일본을 다녀온 적이 없는 저자가 이처럼 명쾌한 분석을 했다는 점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김동선 사회문화부장 |
일본인들의 습성인 줄만 알았던 이런 표리부동(表裏不同)이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초 터진 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내부정보를 이용한 신도시 예정지 부동산 투기가 그 시발점이다. 사달은 LH 임직원에 그치지 않고 고위 고무원과 지방공무원에서 자치단체장은 물론 국회의원까지 투기 의혹이 나오고 있다.
실제 투기 의혹을 수사하는 정부특별합동수사본부(합수본)의 내·수사는 지금까지 198건, 868명에 달한다. 수사 대상에는 국회의원 5명, 전·현직 고위공무원 4명을 비롯해 지방자치단체장 11명, 국가공무원 48명, 지방공무원 109명, 지방의원 40명이 포함돼 있다. 아직 이들의 모든 의혹이 다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이쯤 되면 윗물과 아랫물의 구분도 없는 전방위적 비리라 아니할 수 없다.
이들의 도덕적 해이에 집 한칸 마련하는 게 일생의 꿈인 일반 국민들은 허탈함을 넘어 분개하고 있다. 게임의 룰을 누구보다도 잘 지켜야 할 공공기관 임직원 및 공직자들의 일탈을 넘은 범죄행위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라고 혀를 차고 있다. 특히 겉으로는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속으로 잇속을 챙겨왔다는 그 이중성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여론이 악화되자 국회도 관련 입법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2013년 처음 제출된 뒤 8년여 표류하던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이 지난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이변이 없으면 오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뒤늦게나마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이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이 법은 직무상 비밀 또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재산상 이익을 취하는 것을 금지하고, 직무 관련 거래시 사전에 이해관계를 신고하거나 회피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또 부동산을 직접 취급하는 국토교통부·LH 등 공공기관 임직원과 가족은 업무 관련 부동산 보유·매수 시 14일 이내에 신고해야 한다. 법이 제정되고 1년후 시행되면 190만 공직자가 이 법을 적용받는다.
공정과 정의는 문재인 정부의 태생 기반이고 존립의 이유다. 벌써 5년전 많게는 수백만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매일 촛불을 들었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공정과 정의에 대한 바람 오직 그것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 공정은 희미해지고 정의는 '내로남불'로 전이됐다. 공정과 정의를 외치면서도 스스로에게는 너무나 느슨한 잣대를 대고 있었던 건 아닌지. 모름지기 국가의 녹을 받는 공무원이라면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국민을 받들어야 할 것이다.
LH 사태 초기 문 대통령은 "발본색원"을 외치고 정세균 국무총리는 "소는 잃더라도 외양간은 고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어설픈 공정과 선택적 정의로는 외양간을 고친들 또 누수가 생길 게 뻔하다. 공직사회의 통렬한 자기반성이 필요한 이유다. 표리부동과 내로남불이 판치는 한 아무리 공정과 정의를 외쳐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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