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법제개선위, 민법 '부성우선주의' 폐지 권고
"기존보다 엄마 성 따르는 가정 늘어날 여지 크다"
[서울=뉴스핌] 장현석 기자 = 자녀가 원칙적으로 아버지의 성을 따르도록 규정한 '부성우선주의'가 민법에서 사라질 전망이다. 기존 혼인 신고 때 자녀의 성을 결정하도록 한 것을 출생 신고시 선택으로 늦추는 법 개정만으로도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가정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과천=뉴스핌] 백인혁 기자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1일 오후 경기 과천시 법무부에서 열린 신임검사 임관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0.04.01 dlsgur9757@newspim.com |
법무부는 8일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지난달 24일 권고안을 의결하면서 관련 법률의 신속한 개정을 권고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법제개선위는 자녀의 성·본 결정 방법에 관한 민법 제781조를 전면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해당 조항의 부성우선주의를 폐지하고 부모의 협의를 원칙으로 하자는 것이 골자다.
협의의 시점은 출생 신고 때 하는 방안과 혼인 신고 시 정하되 출생신고 때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협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법원이 자녀의 성·본 지정권자를 정해 그의 의사를 따르도록 하는 방안과 법원이 직접 정하는 방안이 나왔다.
자녀가 일정 연령 이상이 돼 성·본을 변경할 경우 자녀의 의사를 반영하자는 안에도 의견이 모였다.
또 혼인 외 자녀가 인지됐을 경우 원칙적으로 부성으로 변경하도록 하는 민법 조항을 기존의 성을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도록 개정이 추진될 전망이다. 이를 파양, 친자관계부존재확인 사건 등까지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 헌재가 위헌 판단한 '부성우선주의'...어머니 성 따를 길 열려
우리나라 민법 제781조에서는 '자(자식)는 부(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나온다.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르려면 아버지가 외국인이거나 아버지를 알 수 없는 경우에만 가능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05년 해당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당시 헌법재판관 8명 중 5명이 헌법불합치, 2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은 1명뿐이었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재판관 5명은 출생 당시 아버지가 이미 사망했거나 부모가 이혼해 어머니가 단독으로 양육하는 경우에도 일방적으로 아버지 성을 따르도록 강제한다며 이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침해한다고 봤다.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2명 역시 해당 조항이 정당한 입법 목적 없이 모든 개인이 아버지의 성을 따르도록 해 남성과 여성을 차별 취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개인의 성을 결정하는 데 있어 국가가 일방적으로 부성의 사용을 강제하는 것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 평등을 보장한다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봤다.
헌재 판단 이후 민법이 개정돼 아버지가 있는 경우에도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머니의 성을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로 남는다. 어머니의 성·본을 따르려면 여전히 자녀의 출생 신고 때가 아닌 혼인 신고 때 누구의 성과 본을 따를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가정법원‧서울행정법원 2018.02.13 leehs@newspim.com |
◆ 여전히 어려운 '모성 변경'..."출생신고 시 결정만으로도 큰 개선"
실제 혼인신고서에는 성·본의 협의 여부를 묻는 항목이 나온다. 모성을 따르기로 협의할 경우 그 내용을 증명할 수 있는 협의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이후 자녀가 태어나면 협의서에 따라 어머니 성·본으로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다. 협의하지 않을 경우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 성을 따르고 싶다고 해도 바꿀 수 없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자녀의 성·본을 바꾸려면 일단 혼인신고 때 정한 원칙을 그대로 진행한 이후 별도로 법원에 자(子)의 성본 변경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이때 범죄 경력, 신용불량, 친부의 의견 등 여러 가지 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허가받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민법상 모와 부의 성을 동시에 쓰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는 "요즘도 '김이철수'처럼 양성을 같이 쓰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법적인 이름이 아닌 사회적 이름"이라며 "부모 양성을 모두 써서 주민등록된 사례가 아직까지는 안 되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또 어머니와 아버지가 같은 경우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의 성을 다르게 할 수도 없다. 우리나라는 형제 자매간 동성동본주의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부와 모 중 원하는 성·본을 선택할 수 있는 건 성년 입양자의 경우다.
친양자 입양의 경우 미성년자의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데 가정법원으로부터 청구를 허가받으면 양부모의 혼인 중 태어난 자녀로 간주된다. 이때도 자연스럽게 아버지 성·본을 따르게 된다. 양부모가 혼인신고 때 이미 어머니의 성·본을 따르기로 합의하고 협의서를 미리 제출했다는 전제하에서만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다.
일반 입양의 경우 양자는 친생부모의 친자녀로서의 지위와 양부모의 양자로서의 지위를 모두 갖는다. 따라서 친양자 입양처럼 성·본이 자동 변경되지 않는다. 다만 이때도 법원의 허가를 받는 경우에 한해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성·본을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다.
가정법원 판사는 "법무부 법제개선위가 권고한 것처럼 출생 신고 때 모의 성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기존보다 어머니 성을 따르는 변화가 늘어날 여지가 크다"며 "혼인 이후 아이를 출생할 때까지 달라진 상황들이 반영될 수 있어 부성우선주의 폐지라는 취지에 맞는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부모가 '아이 때려도 되는 법'도 버젓이 민법에..민법 915조 징계권 삭제 추진
법제개선위는 민법 제915조의 징계권도 삭제하고 민법에 체벌 금지를 명확하게 규정하도록 했다. 아동의 권리가 중심이 되는 양육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부모의 체벌 금지를 명확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민법 915조(징계권)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다시 말해 친권을 지닌 부모가 아이를 교양지도 명목으로 폭력을 가해도 '부모라는 이유'로 용인할 수 있는 길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아동복지법 제5조 2항(아동의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하여서는 아니 된다)을 적용해 아동복지권이 국가기관 등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그럼에도 민법에서 '부모가 아동을 때릴 수 있는 권리'가 명시돼 있어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해당 민법조항의 삭제나 현실에 맞는 수정 요구가 줄기차게 이어져 왔다.
한편 법무부는 지난해 4월 30일 출생·가족·양육 분야 법제에 높은 식견과 경험을 갖춘 전문가가 참여하는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장인 윤진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중심으로 아동, 여성, 가족 분야 외부 전문가 10인으로 꾸려졌다.
이후 관련 과제를 심도있게 논의해 온 법제개선위는 여성·아동의 권익 향상과 평등하고 포용적인 가족문화 조성을 위해 필요한 법제 개선 사항을 중심으로 주요 안건을 선정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법제개선위 권고를 토대로 민법, 가족관계등록법 등 관련 법제의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여성·아동의 권익 향상 및 평등하고 포용적인 가족문화 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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