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신문관 "트럼프나 폼페이오가 너를 구해줄 것 같아?"
[서울=뉴스핌] 허고운 기자 = 지난해 북한 당국에 억류됐다 추방됐던 호주인 유학생이 체포돼 있던 상황을 자세히 밝혔다. 매일 범죄 행위에 대한 자백서를 쓰도록 강요받았고 총살 위협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호주인 알렉 시글리는 지난 1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지난해 6월 25일 간첩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북한 당국에 체포됐다 9일 만인 7월 4일 석방된 이야기를 적었다.
김일성대학 조선문학 석사과정 3학기 과정에 다니던 시글리는 기숙사에 나타난 검은색 벤츠 차량에 태워졌다. 차에 타자마자 눈이 가려진 시글리는 직감적으로 '큰일 났다'는 생각을 했다.
북한에서 유학중 구금됐던 호주인 알렉 시글리의 트위터. |
시글리는 곧장 신문 시설로 이송됐다. 시설에 도착하자마자 북한 남성은 그를 향해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 이런 범죄들을 저질러 놓고, 트럼프나 폼페이오가 너를 구해줄 것 같아?"라고 소리를 질렀다.
시글리는 "북한 소설에 관심이 있고 북한에서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으나, 신문관들은 "호주인이 그런 동기를 갖고 있는 것이 비정상적이며 아무도 그 논리를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시글리는 이후 9일간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방에서 지내며 자백서를 써야 했다. 신문관들은 "반성하지 않으면 총살당할 수 있다"고 위협했으나, 시글리는 자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지 못했다.
하루는 신문관이 "당신의 범죄를 입증할 증거가 쌓여 있다. 관대한 대우를 받고 싶다면 자백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압박하며, 시글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북한군 탱크 모형 사진을 꺼냈다. 모형 사진 게시가 '간첩 행위'라는 것이다.
시글리는 풀려나기 전 '세계 평화 위협', '북한 주권 침해' 등의 혐의를 자백하는 내용의 사과문을 카메라 앞에서 읽도록 강요받았다. 그는 "사과문에 내 인권을 존중받았다는 점을 인정하도록 강요했는데, 이런 행위 자체가 인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글리는 2012년 북한을 처음 방문했고, 이후 김일성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중국 유학 중 기숙사에서 북한 유학생들을 만난 것이 계기가 돼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지난 2018년에는 평양에서 일본인 여성과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북한에 지내는 동안 접한 주민 대다수는 예의 바르고 정직하며 성실했다"며 "북한은 세계에서 외국인 혐오증이 가장 심한 국가이지만, 이런 혐오증은 주민이 아닌 국가 체제에서 비론된 것"이라고 말했다.
heog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