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8시간 이상 근무 31.6%
연장 근로수당은 4.6% 불과
절반 이상 임금체불 경험
[서울=뉴스핌] 이학준 기자 = 지역 민영방송사 CJB 청주방송에서 '프리랜서 PD'로 14년 동안 일한 이재학 씨가 사망한 뒤 방송업계에 만연한 노동 악습이 수면 위로 드러났지만, 다수는 여전히 프리랜서 신분으로 장시간 또는 밤샘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강도 노동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상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과 연차 휴가를 적용받지 못했다. 불이익이 걱정돼 임금 체불에도 항의하지 못하고 근로 중 다칠 경우 사비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CJB 청주방송 고(故) 이재학 PD 대책위는 지난달 11일부터 19일까지 비정규직 방송계 종사자 821명을 대상으로 ▲근로조건 ▲코로나19 조치 ▲정부정책 및 필요조치 등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를 1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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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자의 40.6%(334명)은 프리랜서 계약을 맺는다고 했다. '계약서 없이 구두계약을 맺는다'는 응답은 40.1%(330명)로 뒤를 이었다.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59.1%(432명)이 '방송 제작현장의 관행'이라고 답했다.
주당 50시간 이상 근무한다는 응답은 58.9%(483명)로 과반을 넘었다. 주 68시간 이상 일한다는 답변도 31.6%(260명)에 달했다.
53.1%(436명)는 '장시간·밤샘 노동을 당연시 하는 업계 분위기 때문'이라고 답했고, 51.8%(426명)은 '빠듯한 제작 일정으로 인한 과도한 업무량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근로기준법상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을 받고 있는 비정규직 방송계 종사자는 4.6%(38명)로 나타났다. 연차휴가 적용은 7.3%(60명), 퇴직금 적용은 8.2%(68명)였다.
임금 체불도 만연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1년간 임금 체불이 한 번 이상 있었다는 대답은 52.3%(430명)였지만, 이들 중 62.7%(270명)는 임금 체불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32.5%(140명)는 '불이익이 우려됐다'고 설명했다.
방송 현장에서 근로 중 다칠 경우 77.8%(639명)는 '본인 자비로 처리한다'고 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66.5%(546명)였다.
이에 71.7%(589명)는 방송계 근로자를 위한 '표준 근로계약서 작성 의무화 및 강제'를 정부에 요구했다. '4대 보험 등 사회안전망 확충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62.9%(517명)를 기록했다.
이재학 PD 대책위 관계자는 "회귀분석을 실시한 결과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방송계 종사자일수록 임금 체불 경험 빈도가 상승했다"며 "연차휴가·시간외수당 등을 받지 않을수록 주당 평균 노동 시간은 유의미하게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장시간노동, 저임금,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통을 받다가 목숨을 끊은 이재학 PD가 전국의 방송국 도처에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지난 2004년부터 청주방송에서 프리랜서 PD 신분으로 14년 동안 일하다 임금 인상 문제로 회사와 갈등을 빚고 2018년 4월 해고됐다. 그는 청주방송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냈지만 지난 1월 22일 1심에서 패소, 지난달 4일 숨진 채 발견됐다.
이에 지난 2월 27일 청주방송, 이재학 PD 대책위, 유족, 전국언론노동조합 대표 합의 아래 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 관련 사건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hak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