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ICBM 재개·대화 가능성 모두 열고 대미 장기전 선포
완전한 '새로운 길' 없었다…美 대선까지 모호성 유지할 듯
새 전략무기는 다탄두 ICBM 가능성…한국 패싱, 심화
[서울=뉴스핌] 허고운 기자 = 북한은 2020년 첫날인 1일 공개한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에서 핵무기·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중단 폐기를 시사하면서도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은 열어뒀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완전히 '새로운 길'을 향하기보다는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며 장기전에 임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미국을 상대로 '충격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며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서울=뉴스핌] 노민호 기자 =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28일부터 31일까지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열린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소식을 1일 전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2020.01.01 noh@newspim.com |
◆ "北, 긴 호흡으로 버티기 위해 경제문제 집중"
김 위원장은 "대조선 적대시가 철회되고 조선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전략무기개발을 계속할 것이고 조선반도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미국이 시간을 끌면 끌수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도 경고했다.
김 위원장은 '핵무력 강화'나 'ICBM 시험중단 폐기' 등 비핵화 협상의 판을 깰 수 있는 군사행동 계획은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우리의 억제력 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조선 입장에 따라 상향조정될 것"이라며 대화 여지가 살아있음을 시사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길은 없었다"며 "미국에 명시적으로 비핵화 협상을 중단한다고 밝히지 않았고 핵·ICBM 모라토리엄 폐기와 관련해 모호한 표현을 하며 해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여지를 열어뒀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김 위원장은 장기전을 대비하겠다는 표현을 수차례 했는데 올해 11월 미국 대선까지를 1차 데드라인으로 설정하고 긴 호흡으로 가겠다는 것 같다"며 "지금 대화가 되더라도 대선 결과에 따라 합의가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일단 버텨내기 위해 전원회의에서 경제 문제에도 집중했다"고 덧붙였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핵·ICBM 모라토리엄을 깨겠다거나 비핵화 협상이 끝났다는 발언을 자제하며 여지를 남겨둔 것이 전원회의 발표 특징"이라며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큰소리를 쳤으나 미국과의 협상을 끝낼 경우 겪을 고통이 더 크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연구소는 이날 전원회의 평가자료에서 "김 위원장은 단계적 도발 제고를 예고하면서도 미국의 향후 태도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도 남겼다"며 "미국과의 대치 상황과 이로 인한 경제적 난관을 거론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력갱생 정신과 정면 돌파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고 밝혔다.
북한연구소는 이어 "북한은 2020년에 내부적으로는 전사회적 긴장도를 높이는 가운데 정면 돌파를 명분으로 한 주민 총동원체제를 강화하며 전략무기 개발에 집중할 것"이라며 "미국에 대해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담판을 모색하며 여의치 않을 경우 위성을 가장한 ICBM 발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 신형 잠수함 개발 완성 등으로 단계적으로 압박 수위를 높여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뉴스핌] 허고운 기자 =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28일부터 31일까지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열린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소식을 1일 전했다. [사진 = 노동신문 홈페이지] 2020.01.01 heogo@newspim.com |
◆ "새로운 전략무기는 다탄두 ICBM 가능성"
다만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가 먼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미국이 먼저 변화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낮은 만큼 북한의 무력 도발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지 않다. 군사력을 강화하며 경제도 건설하겠다는 북한의 이번 발표는 사실상 북미대화 국면 이전의 '핵·경제 병진노선'과 유사해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날 언급한 '새로운 전략무기'를 공개한다면 내년 3월 이후 신형 엔진을 장착한 다탄두 ICBM 등 탄도미사일 시험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말까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회피할 수 있는 인공위성 발사가 거론됐으나 이날 전원회의 내용 발표에 '우주의 평화적 이용' 언급이 없었고 정면 돌파라는 표현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은 3월 한미연합훈련 재개 때 ICBM 발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새로운 전략무기는 최근 동창리 엔진 시험장에서 이뤄진 시험을 고려하면 다탄두 ICBM일 가능성이 크고 고체연료 엔진이 나올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매년 새해 첫 날 하던 신년사를 이날은 생략하고 사실상 전원회의 결과 보도로 갈음했다. 올해 국가 주요노선을 전원회의 결과를 통해 대부분 밝힌 만큼 중복 발표를 피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정세의 불투명성을 고려해 김 위원장이 직접 발표하는 부담을 회피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 발표에는 이례적으로 한국을 향한 메시지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당 전원회의라는 특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이지만 조만간 조평통 담화를 통해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원곤 교수는 "북한이 한국 정부를 완전히 무시한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다른 가능성은 김 위원장 본인이 2018년 신년사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해 사변적인 해로 만들겠다고 직접 말했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김 위원장은 중앙과 지방의 핵심 간부들을 평양에 모아놓고 무려 4일간 안보 및 생존전략에 대해 설명했다"며 "한국 정부도 내부적으로 더욱 치열한 토론을 통해 대응 전략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한반도 정세가 2018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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