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시간 동안 환자 신체 결박...90시간 동안 격리하기도
"인권위에 진정서 내달라"는 환자 요구도 묵살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경기 안산의 한 정신병원이 환자에게 지나친 강박·격리조치 시행했다가 부상을 입힌 사실이 국가인권위원회 조사로 확인됐다. 특히 환자가 이 같은 사실을 인권위에 알리려 했으나 병원 측이 이를 묵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31일 인권위에 따르면 알코올중독 등을 앓던 A씨는 지난해 6월 9일 경기 안산의 모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됐다. A씨는 이곳에서 의료진들에게 발길질과 욕설을 했다는 이유로 강박(신체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결박하는 행위) 조치를 받았다. 이로 인해 A씨는 팔목과 발목 등에 상처를 입었으나 의료진은 지속적으로 강박과 격리조치를 시행했다. 심지어 A씨는 잠자는 시간까지도 강박 상태로 있어야만 했다.
서울 중구 삼일대로에 위치한 국가인권위원회 청사 전경. [사진=국가인권위원회 제공] |
이를 참다못한 A씨는 다른 환자의 공중전화 카드를 빌려 어렵게 이 같은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렸고 강제입원 약 2주 만에 가까스로 병원에서 퇴원할 수 있었다. 이후 A씨는 "병원 측의 과도한 강박 조치로 인해 몸에 상처를 입었고 강박 과정에서 의료진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병원 측은 인권위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지시하에 강박을 시행했고 모든 격리 및 강박은 보건복지부의 격리 및 강박 지침에 따라 시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인권위 조사결과, 이 병원은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강박 기준을 지키지 않고 무리한 강박과 격리조치를 취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병원 측은 A씨가 입원한 동안 강박 4회 격리 2회를 시행했는데 △첫 번째 강박은 12시간 30분 △두 번째 강박은 25시간 55분 △세 번째 강박은 3시간 15분 △네 번째 강박은 37시간 55분이었다. 격리시간은 1차 90시간, 2차 52시간이었다.
이는 지난 3월 개정된 보건복지부 '격리 및 강박 지침'에서 제시한 격리·강박 연속 최대시간 기준과 비교할 때 강박은 최대 4배 이상, 격리는 3배 이상을 초과한 시간이다. 더욱이 병원 측은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격리 및 강박지시서' 등도 제대로 작성해놓지 않아 구체적인 강박 사유, 지시자와 수행자에 대한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특히 A씨가 이 같은 사실을 인권위에 알리기 위해 병원 측에 진정서를 대신 제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뒤늦게 이를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시설에 소속된 공무원 또는 직원은 시설수용자가 작성한 진정서를 즉시 인권위에 보내고 위원회로부터 접수증명원을 받아 이를 진정인에게 내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병원 측은 A씨의 요청을 받은 지 한 달이 더 지나서야 진정서를 발송한 것으로 인권위 조사에서 확인됐다.
인권위는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해당 병원에 유사사례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하고 격리·강박, 진정서 발송과 관련해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직무 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아울러 인권위는 대한변호사협회 법률구조재단 이사장에게 이 사건의 손해 배상 등을 위해 A씨에 대한 법률구조를 요청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정신질환으로 입원한 환자가 사회통념 상 감내할 수 있는 신체적인 한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수반하는 강박과 격리를 겪은 것으로 판단했다"며 " 격리나 강박은 최소한으로 시행돼야 하며 가능한 대체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imb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