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고법부장승진제 폐지→ 우회 개혁으로
법조계 "전향적인 제도개선 모습 보이지 못했다"
[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참혹한 조사결과로 충격과 실망감을 느끼셨을 국민 여러분께, 사법부를 대표하여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김명수(60·사법연수원 15기)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31일 전임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사건의 대법원 자체 조사를 마친 후 이렇게 말했다. 김 대법원장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내걸었던 약속은 △법원행정처 축소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 등이었다. 사법부는 1년 반이 지난 지금 얼마나 변했을까.
◆ 행정처 축소·법관 비관료화…'절반의 성공'
당초 김 대법원장은 '사법농단의 온상'으로 지적됐던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회의와 법원사무처를 신설한다는 방침이었다. 또한 법관의 관료화를 막기 위해 고등부장 승진제도도 없애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내용을 담은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좀처럼 국회 본회의를 넘지 못하면서 우회 개혁 상황에 봉착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김명수 대법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19.09.10 pangbin@newspim.com |
김 대법원장은 행정처 폐지 대신 축소를 꺼내들었다.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가 지난 9월 발간한 '2018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행정처는 법관 축소 및 권한 분산 방침에 따라 '2019년 법원행정처 법관 감축 방안'을 수립하고 행정처 파견 법관 수를 줄였다.
아울러 사법행정회의 대신 '사법행정자문회의'를 직권으로 신설했다. 대법원장이 의장을 맡고 법관 5명과 외부전문가 4명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대법원장 상설 자문기구다.
고등부장 승진제도 역시 우회적으로 폐지하는 방향을 택했다. 대법은 현행 법원조직법 개정 없이는 고법 부장판사직을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지난해 정기 인사부터 고법 부장 보임심사를 하지 않되 '직무대리' 형태로 인사를 진행해왔다.
이밖에도 수평적·민주적 인사를 위한 법원장 후보 추천제도도 도입하는 등 전향적인 개혁안을 내놨다.
◆ 검찰개혁에 가려져 '제자리 걸음' 비판도
법조계에선 김명수표 개혁안에 대해 대체로 미적지근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지난 9월 23일 국회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2년, 사법개혁 어디까지 왔나>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반성과 개혁의 축이 돼야 할 김명수 체제는 출범 2년에 걸쳐 시대적 요구에 멈칫거리는 모습으로 일관했다"며 "사법농단의 재발을 막고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를 털어버리기 위한 제도 개선 차원도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사법행정자문회의에 대해서도 "문자 그대로 자문기구에 불과해 원칙적으로 대법원장이 회부하는 안건에 대한 자문의견만 제시할 수 있을 뿐"이라며 "행정처의 사무를 그대로 둔 채 사법행정자문회의를 덧붙이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옥상옥의 비효율성을 넘어 과도한 기구설치로 인한 행정난맥 혹은 그로 인한 대법원장의 권력 강화라는 또 다른 폐해만 야기할 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개혁안을 많이 발표하기는 했지만 정확히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또 다른 법관은 "김 대법원장 혼자 노력한다고 해서 조직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검찰개혁에 비해 사법개혁은 관심도가 떨어져 아쉬운 부분도 있다"고 평했다.
한 법관 출신 변호사는 "결국 정권이 바뀌고 대법원장이 바뀌면 다시 제자리일 개혁안이 대부분 아니겠느냐"며 "무엇이 법관 독립을 위한 개혁인지 기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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