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용산구 쪽방촌 주민들, 매서운 한파에 '시름'
웃풍 심해 겨우내 감기..."옷 여러 겹 껴입고 방에 있는 게 상책"
"큰 사고날까 불안해"...오래된 건물 곳곳 갈라져
전문가 " 얘기 들어주는 것만으로 큰 위로...지속적 관심 필요"
[서울=뉴스핌] 노해철 기자 = “우리 같이 없는 사람들은 겨울 내내 감기 달고 사는 거지.”
아침 일찍부터 오전 내내 눈이 내리던 13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쪽방촌 주민들은 추위에 발이 묶인 채 힘겨운 겨울날을 보내고 있었다. 서울역 맞은편 남대문경찰서에서 올라가는 쪽방촌에 이르는 좁은 길은 눈까지 내리면서 주민들의 발걸음을 위태롭게 했다. 이곳에서 만난 오소예(78)씨는 “이런 날에는 옷을 껴입고 방에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13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쪽방촌에서 만난 오소예씨가 옷을 여러 겹 입고 한파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사진=노해철 기자] 2018.12.13. sun90@newspim.com |
달리 햇볕이 들지 않는 좁은 방 안에선 한기가 맴돌았다. 바닥에 설치된 전기판넬이 겨울철 웃풍까지 막을 순 없었기 때문이다. 오씨는 “건물이 오래돼 웃풍이 심하다”면서 “심한 날에는 이불 밖으로 손을 내놓지 못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이 탓에 쪽방촌 주민들은 감기를 피하지 못한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11개 방 곳곳에선 연신 기침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남대문로5가 인근 쪽방촌 주민은 약 420세대에 달한다. 대부분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이거나 독거노인 등으로 한파에 취약한 계층이다. 이들이 머무는 쪽방촌의 하루 숙박비는 6000~8000원 정도다.
쪽방촌 건물 관리인인 정순자(76)씨는 “노숙자들이 와서 하루씩 묵고 가기도 한다”면서 “나머지는 대부분 여기에서 오래 산 사람들”이라고 귀띔했다. 정씨는 겨울철 수도 동파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그는 “담요를 아무리 덮어도 추운 날에는 수도가 얼어버린다”면서 “날 풀릴 때까지 물을 틀어놓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13일 찾은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쪽방촌 한 건물의 내부 모습 [사진=노해철 기자] 2018.12.13. sun90@newspim.com |
같은 날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서 만난 김해석(50)씨는 밖에 나와 난로를 쬐고 있었다. 김씨는 “20일 넘게 감기를 앓고 있는데, 지금도 떨어지지 않았다”며 “8년 째 이곳에서 겨울을 맞고 있는데도 매번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겨울에는 이렇게 난로 쬐면서 따뜻한 인스턴트커피 한잔하면서 몸을 녹인다”며 자신의 한파 극복방법을 소개했다.
겨울철 주민들은 샤워와 빨래를 하기 위해선 쪽방을 나서야 한다. 건물 대부분은 공용화장실이 마련돼 있는데, 이곳에선 간단한 세면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주민은 “샤워와 빨래는 근처에 있는 지원센터에서 할 수 있다”며 “거기에서 옷이나 음식 같은 것도 나눠주기 때문에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13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한 건물은 곳곳이 갈라져 있었다. [사진=노해철 기자] 2018.12.13. sun90@newspim.com |
다른 쪽방촌 주민인 이춘석(59)씨는 겨울철 난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씨가 거주하는 방은 집주인이 보일러를 틀어줘야 따뜻해진다. 이씨는 “집주인이 얼어 죽지 않을 만큼만 난방을 틀어준다”며 “이렇게 추워도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다”며 불만을 내뱉었다.
그는 최근 건물 안전에 대한 우려로 밤잠을 설치는 일도 많다. 이씨는 “겨울이 되면서 건물에서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면서 “어느 날에는 잠을 자다가 소리에 놀라 일어나는 일도 있다”며 불안해했다. 그는 직접 곳곳이 갈라진 건물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러다 큰 사고 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씁쓸해했다.
한편 사회복지단체는 쪽방촌 주민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호소했다. 남대문쪽방상담소 최진형 사회복지사는 “쪽방촌 주민들에 대한 물질적인 지원만큼 중요한 게 지속적인 관심”이라면서 “대부분 혼자 사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찾아와서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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