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교청서, 한국은 찬밥대우…중·러·인도·대만은 '극진히'
[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일본 정부가 지난달 15일 각료회의에서 승인한 '2018년 외교청서'는 한국에서 논란을 빚었다. 지난해까지 한국에 대한 기술에 있었던 '전략적 이익울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국가'라는 표현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1일 산케이신문은 "일본 정부가 외교청서에 적는 수식어들은 양국 간 관계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며 "수식어를 살펴보면 일본이 해당 국가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 지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외교청서는 일본 외무성이 매년 발행하는 외교보고서다. 책 표지가 푸른색이라 청서(靑書)라고 부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블룸버그] |
◆ 표현이 극적으로 변하고 있는 한국
일본 외교청서에서 한국에 대한 수식어는 최근 수년 간 급격하게 변했다.
2014년판 외교청서에서 일본 정부는 한국을 "자유, 민주주의, 기본적인 인권 등의 기본적인 가치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의 확보 등 이익을 공유하는 일본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이웃국가"로 서술했다.
이 표현에는 ▲가치의 공유 ▲이익의 공유 ▲가장 중요한 이라는 세 요소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이듬해엔 "가장 중요한 이웃국가"라고 서술하는 데 그쳤다. 가치와 이익 공유가 삭제된 것이다.
신문은 "당시 박근혜 정부가 산케이신문 서울 지국장을 출국금지 시키는 등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인 데 대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2016년에는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국가"로 기술이 바뀌었다. 2017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2018년에는 세 요소가 모두 사라졌다.
신문은 "한국과 일본 관계가 '가치관도 다르고 공통 이익도 없고 관계도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런 뉘앙스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중·러
중국과 러시아는 일본과 정체 체제가 다른 탓에 자유나 민주주의, 기본적 인권 등의 '가치관 공유' 할 수는 없다고 신문은 전했다. 하지만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는 '윈윈 관계'를 구축하려 한다는 점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21세기 이후 외교청서에서 중국은 '가장 중요한 양국관계의 하나'로 표현됐다. 2015년과 2016년은 여기에 더해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라고 표현했다. 2006년엔 '고금의 역사를 통해 일본에 있어 가장 소중한 국가 중 하나'라고 기술하기도 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제1차 내각 시절이던 2006년,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중국 국가주석과 합의했던 '전략적 호혜관계'도 이후 외교청서에 등장한다. 외무성 관계자는 "전략적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양국 만의 관계를 넘어, 보다 넓은 지역 관계에서 함께 대응한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가치관은 제쳐두고 지역이나 세계 규모의 문제에 대해 협력관계를 쌓아 공통의 이익을 추구해 나간다는 뜻이다.
러시아에 대해선 2006년까지 명확한 수식어가 없었다. 하지만 2007년부터 "다양한 문제에 대해 일본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국가"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2009년 이후부턴 협력·연대가 강화돼 "양국의 전략적 이익에서 합치"라고 명기했다. 2014년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파트너"라고 승격했다. 2018년 외교청서에선 "가장 가능성을 품고 있는 양국 관계"라는 전향적인 표현이 등장했다.
신문은 "북방영토 문제 해결과 평화조약 체결에 의욕을 드러내는 아베 총리의 자세가 강하게 반영됐다"고 전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좌)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우) [사진=로이터 뉴스핌] |
◆ 호주·인도, 외교적 대우 격 높아지고 있어
호주와 인도는 전부터 일본과 '기본적 가치를 공유' 하는 관계로 표현됐다. 양 국가는 일본이 진행하고 있는 '자유롭게 개방된 인도태평양전략'의 핵심 파트너이자, 최근에는 안전 보장등 전략적 이익도 공유하고 있는 관계다.
호주는 2003년부터 "기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파트너"로 표현됐다. 2005년엔 "지역의 정치 안전 보장 상 문제에 있어 많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는 표현이 추가됐다. 2009년부터는 "기본적인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한다"고 표현이 승격됐다.
최근에는 "특별한 관계"(2015년, 2016년), "특별한 전략적 파트너십"(2017년, 2018년)으로 표현되고 있다.
인도는 2007년부터 "기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파트너"로 기술됐다. 2012년부터는 "전략적 이익을 공유한다"는 표현이 병기됐다. 2014년부터는 "가장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양국관계"로 서술돼있다.
◆ 대만, 국교는 없지만 일본의 '중요한 친구'
대만은 일본과 단교한 상태지만 친밀한 표현으로 외교청서에 기술돼 있다.
일본은 중일 국교정상화를 통해 중국을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하면서 대만과 단교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대만을 '지역'으로 분류하고 양국 간 교류는 민간단체를 통해 하고 있다.
외교청서에서 대만은 2002년엔 "비정부 간의 실무관계에서 민간에 따른 지역적 왕래를 유지하고 있다"고 표현됐다. 2003년엔 "긴밀한 경제관계를 갖는 중요한 지역"으로 서술됐다. 신문은 "무역 상대방으로서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2013년엔 "중요한 지역"에서 "중요한 파트너"로 승격됐다. 2016년엔 "자유·민주주의·기본적 인권·법의 지배 등 기본적 가치를 공유해 긴밀한 경제관계로서 인적왕래를 갖고 있는 중요 파트너이자 친구"라고 썼다.
신문은 "중요한 친구라는 표현은 다른 나라에선 등장하지 않는다"며 "아베 총리가 자신의 페이스북이나 연설을 통해 사용했던 단어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 측은 200억엔이 넘는 지원금을 보내준 대만 사람들에게 감사와 배려를 전했다.
한 외무성 간부는 "외교청서의 일부 서술만이 아니라 전체를 봐달라"며 "수식어가 양국 관계를 모두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일례로 북한 문제로 한일 간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한 현 상황은 2018년판이 아니라 2019년 외교청서에 기술된다. 신문은 "한국과 일본이 다시 '가치관과 이익을 공유하는 중요한 나라'로 돌아가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과연"이라는 말을 덧붙여 의문을 남겼다.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