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리스크 금융시장 장악
[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유럽 채권시장에 과거 입에 오르지 않았던 새로운 리스크 요인들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영국의 EU 탈퇴에 이어 프랑스와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주요국의 유로존 탈퇴 움직임이 번진 데 따른 정치권 리스크가 채권 투자자들에게 현실적인 사안으로 자리잡는 양상이다.
유로화 <사진=블룸버그> |
파이낸셜타임즈(FT)는 8일(현지시각) 유럽 투자자들이 유로화 표시 채권을 매입하기 앞서 과거 살피지 않았던 깨알만한 크기의 주석을 살피는 데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채권을 발행한 국가가 유로화를 포기하고 과거 통화를 복귀시키거나 통화 가치의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투자 조항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특정 국가에서 통용되는 모든 통화의 액면을 같은 비율로 변경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100달러짜리 지폐의 액면을 10달러로 단위를 변경하는 것이 하나의 사례다.
유로존 회원국이 2013년 1월 이후 발행한 채권의 경우 채권 투자자들의 승인 없이 액면 단위를 변경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기존에 유통되는 7조유로 규모의 국채 가운데 절반 가량은 이 같은 투자 안전 조항이 미비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투자자들의 주의 사항에 포함되지 않았던 리디노미네이션은 최대 리스크 요인으로 등장했다.
핌코의 앤드류 보솜워스 독일 포트폴리오 매니지먼트 헤드는 FT와 인터뷰에서 “과거 부채 위기 당시 화두가 됐던 통화 액면 변경 리스크가 재등장했다”고 전했다.
프랑스 10년물 국채의 독일 대비 프리미엄이 4년래 최고치로 뛰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수익률이 역전된 데 이어 시장 혼란이 더욱 가중되는 상황이다.
씨티그룹에 따르면 GDP 규모 유럽 상위 10위 국가가 발행한 기존 채권 가운데 통화 액면 단위 변경을 포함해 투자 리스크에 대한 안전 장치가 부여되지 않은 물량이 3조6000억유로로, 안전 조항이 제시된 물량 2조8000억유로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유로존 탈퇴 문제를 둘러싼 정치 리스크의 핵심 축에 해당하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국채 가운데 리스크에 노출된 물량이 상당 규모에 이르는 실정이다.
이들 국가가 실제로 유로존 탈퇴를 결정할 경우 과거 부채 위기 당시 커다란 논란이 됐던 소위 ‘헤어컷’ 역시 투자자들에게 직접적인 리스크로 재부상할 전망이다.
헤어컷은 민간 투자자들을 의무적으로 채무 조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하는 규정으로, 그리스가 위기를 맞았을 당시 뜨거운 쟁점이었다.
에니 겔펀 조지타운 대학 법학 교수는 “최근에 발행된 국채일수록 투자자에 대한 안전 조항이 부실하다”며 “해당 국가가 유로존을 탈퇴할 경우 문제는 헤어컷의 여부가 아니라 그 규모”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