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허정인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4일 경직된 표정으로 기자실을 찾았다. "오전보다 더 많이 오신 것 같네요." 총재 말대로 오후의 취재 열기는 아침보다 뜨거웠다. 한국은행이 스스로 제시한 물가 목표를 지키지 못한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가 사상 처음으로 열렸기 때문이다. 총재의 눈짓, 손짓을 담기 위해 셔터가 끊임없이 터졌다. 눈이 시릴 정도였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를 하회한 것은 국제유가 때문이고, 앞으로 유가가 오르면 물가도 오를 거라고 이 총재는 설명했다. 완화 기조의 통화정책을 유지하겠고 향후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덧붙였다. 뻔한 대답이었다.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됐다.
"통화정책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뜻인가?" "공급요인이기 때문에 통화정책만으론 한계가 있다."(이 총재)
"한은이 물가관리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뭔가?" "기본적으로 금리정책이 있다."(이 총재)
"예상과 달리 유가가 내년에 떨어지면 물가목표 변경할 의사 있나?" "금융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꿀 가능성은 적다."(이 총재)
말이 돌고 돈다. 이 총재의 눈이 딱 한 번 빛났던 때는 정부 역할을 물을 때였다. "정부정책도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물가가 목표 수준에 미달했다고 해서 통화정책의 책임만으로 보는 것은 합당치 않다."
결국 한은의 통제권 밖이란 얘기다. 사실 모두가 공감하고 있긴 하다. 통화정책 효과가 예전 같지 않고 저성장 저물가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취할 액션이 딱히 없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다만 책임지겠다고 나선 중앙은행 총재가 이렇게 저렇게 늘어놓는 설명은 궁색한 느낌이었다.
한은이 최초로 국민 청문회를 자청한 셈이지만 감동도 없고 공감도 없었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게 없다는 속담이 딱 맞았다.
이런 답답함은 '저물가'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한참 멀어져있는 물가지수 통계 탓도 있다.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소비자의 체감물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랐는데 발표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를 밑돈다. "내 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고 국민들은 아우성인데 한은은 안올랐다고 설명을 한 꼴이다. 정책한계, 지수의 결함 등등 어렵고 현학적인 설명 대신 국민이 정말 듣고 싶은 말을 정책당국자들은 해줘야한다.
정부(통계청)가 물가지수 개편을 준비중이다. 소비 트렌드의 변화를 반영해 가중치를 조정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은은 이마저도 권한이 없다. 한은 관계자는 "소비자물가는 통계청 담당이고, 생산자물가는 한국은행 담당이라 통계청이 제안하면 대부분 억셉트(accept, 수용)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아마 10월에 이주열 총재는 2번째 물가설명회를 또 해야할 거다. 그리고 몇 개 단어 바꾸지 않고 똑같이 저물가를 해명할 것이다. 다시 하나마나한 설명회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 상태로는.
[뉴스핌 Newspim] 허정인 기자 (jeongi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