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정치

속보

더보기

[이영태칼럼] ‘푸른 눈의 목격자’ 힌츠페터를 기리며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광주항쟁 비디오 막전막후…“두 눈은 좌우를 보라고 있는 것”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세계에 처음 알린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 씨가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5·18기념재단은 힌츠페터 씨가 지난달 25일 독일 북부 라체부르크에서 숨졌다고 2일 밝혔다.

36년 전 독일 공영방송 ARD 일본특파원(한국특파원 겸직)으로 광주항쟁을 직접 취재한 힌츠페터 씨의 필름은 그해 5월 22일 ARD를 통해 전파되며 전 세계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광주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외부 세계에 알린 증거물은 힌츠페터 씨의 자료가 유일했다.

그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죄로 사형판결을 받은 후에는 중국특파원이었던 동료와 함께 1980년 9월 22일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제목의 45분짜리 특집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한국 군사정권의 폭정을 고발하기도 했다.

‘광주비디오’ 제작자 힌츠페터 씨를 직접 만난 것은 13년 전인 2003년 9월 서울 수유리 아카데이하우스에서다. 그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해외민주인사 초청행사 참석차 주치의이자 여자친구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스태트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힌츠페터 씨의 방한은 일부 언론에 보도되긴 했지만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의 귀국에 가려져 큰 주목을 끌진 못했다.

힌츠페터 씨는 당시 왜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했느냐고 묻자 “개인적으로 자유를 찾기 위한 민주화운동에 많은 관심이 있다”며 “두 눈이 있는 것은 좌우를 보라고 있는 것이고 코는 내가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킨다”고 답했다.

그는 한국 방문 1년 뒤인 2004년 심장병 수술을 받고 쓰러진 뒤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듬해 병세가 다소 호전된 후에는 다시 한국을 찾아 “가족의 만류로 광주에 묻히기는 어려워졌지만 다른 상징적인 방법으로 광주와 인연을 간직하고 싶다”며 한국에 대한 진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광주에 묻히고 싶은 바람을 자신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담은 봉투를 5·18기념재단에 전달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광주광역시는 당시 힌츠페터 씨가 사망하면 5·18묘지에 안장될 수 있도록 관련 조례를 개정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것이 지금도 자랑스럽다”고 했던 영원한 ‘푸른 눈의 목격자’ 힌츠페터 씨와 13년 전 나눴던 대화 내용 일부를 다시 들춰봤다.

◆ 힌츠페터 씨의 ‘광주비디오’가 나오기까지

위르겐 힌츠페터 씨를 2003년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만났다. 가운데 사진 찍는 사람이 힌츠페터 씨의 주치의이자 여자친구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스태트다.<사진=이창길 기자>

- 해외 민주인사 중 한 사람으로 한국을 다시 찾은 감상은?

“3년 전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 기념식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이번에 인천공항에 도착해보니 한국의 경제적·민주적 발전을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북한과 접경지대에 그토록 큰 공항을 세웠다는 것이 놀라웠다.”

- 1986년 서울 광화문 시위 취재 중 목과 척추에 부상을 당해 고통이 심했다고 들었는데 건강상태는?

“(목을 가리키며) 지난 5월 목뼈 속에 들어있는 플라스틱을 교체했다. 처음에는 부상으로 인해 말도 할 수 없었고 손가락을 사용할 수 없어 글을 쓸 수도 없었으며 거의 움직이지도 못했다. 지금도 목과 팔을 사용하는데 불편함을 느낀다. 밝힐 수 없는 고통도 있다.”

- 이력서를 보면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학업을 중단하고 기자생활을 시작한 이유가 뭔가?

“TV에 책임이 있다. 대학에서 의학공부를 하면서 처음에는 돈을 벌기 위해 부업으로 방송국에서 스튜디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방송국에서 일하던 중 아비투어(독일의 대학교 입학시험)를 마친 사람들을 대상으로 카메라맨을 모집해 학업을 중단하고 18개월간의 실습과정을 거쳐 카메라맨이 됐다. 당시만 해도 TV라는 매체가 뉴미디어로 각광받았었기 때문에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나와 함께 카메라맨 생활을 시작한 동료가 4명 있었는데 대학교수가 되는 등 모두 큰 사람이 됐다.”

- 위험을 무릅쓰고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자유를 찾기 위한 민주화운동에 많은 관심이 있다. 두 눈이 있는 것은 좌우를 보라고 있는 것이고 코는 내가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킨다. 자유를 억압받았던 당시 한국의 어려운 상황과 민주화운동은 독일을 비롯한 서방세계에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대학생들은 누구보다 빨리 민주화에 관심을 기울이며 자유를 추구한다. 나 또한 대학생들의 주장에 공감해 여러 동료들과 함께 광주비디오를 만들게 된 것이다. 압박도 받았으나 행운이 따랐다고 생각한다. 나는 민주주의가 최선은 아니지만 민중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 당시 광주에서 찍은 필름을 독일까지 보내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외국 기자가 당시 한국에 들어오면 KOIS(Korean Overseas Information Office, 지금의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에 가서 프레스카드를 받고 어디에서 무엇을 취재할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등을 밝혀야 했다. 그러나 나는 80년 5월 19일 광주 취재를 위해 한국에 도착했을 때 KOIS에 가지 않고 우회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즉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허가를 받고 광주를 취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새벽 차를 타고 바로 광주로 내려갔다. 내가 행운이 따랐다고 말하는 것 중에는 당시 김사복씨란 운전기사를 만난 것도 포함된다.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당시 차량은 독일 차인 오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광주에 도착했을 때 계엄군이 더 이상 갈 수 없다며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내가 그 때 코리아헤럴드가 보도한 한 기사를 가리키며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봐야겠다고 하자 그들은 논길로 돌아가라고 했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못 가길 바랐던 것 같다. 돌아가는 길에 운전기사가 샛길을 찾아냈고 다시 군대를 만났다. 나는 당시 우리 일행이 길이 엇갈린 부장을 찾으러 가는 길이라고 이야기를 꾸며댔는데 군인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를 들어가게 했다. 광주에서 나는 학살현장 등을 10롤의 필름에 촬영했는데 어렵게 군 검문을 통과해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마지막 순간에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당시에 공항에 있었던 한국 공무원들도 민주화를 원했기 때문에 심한 검문은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찍은 필름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알면서도 한쪽 눈을 감아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는 일본 공항에 도착해 조수에게 필름을 넘겨주었고 독일 공영방송 ARD와 협약을 맺고 있던 일본 방송이 롤로 돼있던 필름을 방송용으로 바꿔 위성으로 독일로 보냈다. 필름을 넘기면서 나는 독일 방송이 먼저 필름을 사용하고 난 후에야 다른 나라들도 방송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왜냐하면 당시 그 자료는 그야말로 왜곡되지 않은 유일한 자료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 신속히 진실을 알릴 수 있었던 일이 지금도 자랑스럽다. 테이프를 넘긴 후 바로 다음 비행기를 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전신 전화 팩스 등 모든 것이 불통이었기 때문에 한국 상황을 알기 위해선 다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언론보도들은 모든 것이 왜곡됐었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한국 언론보도도 번역을 해 읽어봤는데 모든 것들이 왜곡돼 있었다. 5월 23일 다시 광주로 들어갈 때 외국 신문들을 몰래 갖고 들어가 광주시민들에게 나눠줬다. 그후 광주에서 찍었던 필름들을 갖고 동료였던 베르트람 중국특파원과 함께 광주항쟁에 대한 45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우리는 당시 다큐멘터리를 독일 본사에 넘기면서 그 필름 중 일부라도 편집하거나 삭제하면 일을 그만 두겠다고 협박했다. 동료인 베르트람은 이번에 같이 한국에 오려했는데 호주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해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오지 못했다.”

한국 사회에 자유와 민주화를 선물한 고 힌츠페터 씨의 명복을 빈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선임기자 (medialyt@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임병택 시흥시장 무투표 당선 확정 [시흥=뉴스핌] 박승봉 기자 = 6·3 지방선거 경기 시흥시장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임병택 후보의 무투표 3선 당선이 사실상 확정됐다. 수도권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투표 없이 당선인이 결정되는 것은 지난 1995년 지방선거 도입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시흥시장 임병택 예비후보 출근길 인사. [사진=임병택 시흥시장 예비후보 선거캠프] 1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후보 등록 마감 시한인 이날 오후 6시까지 시흥시장 선거에는 임병택 현 시장만이 단독으로 등록을 마쳤다. 경쟁 후보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임 후보는 별도의 투표 절차 없이 선거일에 당선인 신분을 확정짓게 됐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후보를 내지 못한 데 있다. 국민의힘 경기도당은 추가 공모를 세 차례나 연장하며 막판까지 '임병택 대항마'를 찾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공천관리위원회가 시흥시를 전략공천 지역으로 지정하고 함진규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 등 중량감 있는 인물들에게 출마를 권유했으나 모두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흥은 과거 민선 4기 후반기 재·보궐 선거부터 현재까지 내리 민주당 계열 시장이 당선된 '보수 험지'로 분류된다. 특히 지난 21대 대선에서도 이재명 당시 후보가 경기도 내 최고 득표율(57.14%)을 기록했던 곳이라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후보 영입에 더욱 난항을 겪었다는 분석이다. 무투표 당선이 확실시된 임 후보는 이번 당선으로 '최연소 3선 시장'과 '수도권 첫 무투표 기초단체장 당선'이라는 전무후무한 타이틀을 얻게 됐다. 임 후보는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시흥시민들께서 만들어주신 역사다. 최선을 다하겠다"며 "재선 기간 물길을 바꿨다면, 이제는 그 물살을 타고 시흥을 정말 잘 사는 도시로 만들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민선 9기 최우선 과제로 '국가 첨단 바이오 특화단지 완성'과 '배곧서울대병원 본공사 안착'을 꼽으며 시흥의 대전환을 완성하겠다는 포부를 피력했다. 공직선거법 제190조에 따라 단독 후보자가 된 임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 유세차나 확성기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다만 후보자 신분은 유지하며 정책 설명 활동이나 자당 소속 시·도의원 후보들에 대한 지원은 가능하다. 지역 정가 관계자는 "거대 야당이 후보조차 내지 못한 것은 수도권 민심의 지형 변화와 인물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임 시장이 투표 없이 당선된 만큼, 향후 시정 운영에서 더욱 강력한 추진력을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1141world@newspim.com 2026-05-15 21:54
사진
李대통령 지지율 61%[한국갤럽] [서울=뉴스핌] 박찬제 기자 = 이재명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직전 조사보다 소폭 하락해 60%대 초반을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15일 나왔다. 한국갤럽이 지난 12∼14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11명을 대상으로 이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61%로 집계됐다. 2주 전 조사 대비 3%포인트(p) 하락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33차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반면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28%로 직전 조사 대비 2%p 올랐다. '의견 유보'는 11%로 집계됐다. 직무수행 긍정 평가 이유로는 '경제·민생'(26%)이 가장 높았다. 뒤이어 '외교'(10%), '전반적으로 잘한다'(7%) 순이었다. 부정평가 이유는 '과도한 복지·민생지원금', '도덕성 문제·본인 재판 회피'가 각각 10%로 가장 높았다. 뒤이어 '경제·민생·고환율'(9%), '전반적으로 잘못한다'(8%) 순이었다. 한국갤럽은 "2주 전과 비교하면 부정 평가 이유에서 도덕성 관련 지적이 늘었다"며 "이는 여당이 추진하는 윤석열 정권 조작 수사·기소 특검에 공소 취소 권한 부여 공방 영향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45%, 국민의힘이 23%를 기록했다. 민주당은 직전 조사 대비 1%p 떨어진 반면 국민의힘은 2%p 올랐다. 조국혁신당은 2%, 개혁신당은 4%, 진보당은 1%의 지지도를 기록했다. 무당층 응답자는 24%로 집계됐다. 특히 민주당이 추진 중인 이른바 '조작기소 특검법'에 이 대통령 재판을 무효화할 수 있는 공소 취소 권한을 부여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반대 의견이 더 많았다. '공소 취소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응답은 27%, '부여해선 안 된다'는 응답은 44%로 집계됐다. 의견 유보는 28%였다. 이번 조사는 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pcjay@newspim.com 2026-05-15 11:06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