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 앞둔 1세대 민영기업인, 창업보다 승계가 어려워
[뉴스핌=강소영 기자] 롯데그룹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대기업 경영권 가족 승계가 사회문제로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중국에서도 개혁개방이후 1세대 경영인 창업주의 은퇴 연령이 다가오면서 2세대 경영권 승계가 재계와 사회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유명 미디어 기업 제일재경일보(第一財經日報)와 평안은행은 최근 '중국경영자·가족승계'라는 제목의 특별 TV프로그램을 통해 연륜이 짧은 중국 민영기업이 처음 직면한 경영승계 및 상속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앞으로 중국의 1·2세대 기업가, 가족경영 기업 내의 여성의 역할 등 중국 대기업의 가족경영과 상속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이라고 밝혀 중국에서 큰 화제가 됐다.
3세대 경영권 승계 단계로 접어든 우리나라와 달리 민영기업 태동과 시장경제의 경험이 일천한 중국에서는 여전히 창업주가 기업을 경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 창업주 대부분이 50~ 60세를 넘기면서 경영권 세대교체에 대한 사회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학계의 연구도 활발하다. 중국 베이징(北京)대학 광화관리학원(光華管理學院)이 2014년 발표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2014년 7월 31일 기준 1485개 A주 상장 민영 기업 중 가족경영 기업은 전체의 50.3%인 747개에 달한다. 대부분은 창업주가 회사를 경영하고 있고, 창업주의 평균 연령은 55~75세 사이로 조사됐다. 가족경영 사상이 뚜렷한 중국에서는 기업을 아들 딸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국의 기업 전문가들은 앞으로 5~10년 중국 민영 기업의 경영권 세대교체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기업의 2세대 경영권 승계는 시기적으로 매우 민감한 시기에 진행돼 그 결과에 더욱 이목이 쏠린다. 부모 세대가 중국 경제의 고속 성장기에서 기업을 빠르게 키워냈지만, 2세대는 중국 경제 성장이 둔화되는 시기에 기업을 물려받게 된다.
중국의 차세대 경영인은 경제성장 둔화 속에서 기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하고, 산업 중심이 부동산·철강 등 전통산업에서 인터넷·바이오·첨단제조 등 신흥산업 분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게 될 전망이다.
◆ 성공적인 2세대 경영권 승계 선례를 남긴 기업
비교적 일찍 경영권 승계 작업을 성공적 마치고 2세대 경영구도를 확립한 중국 기업은 경영권 교체를 앞두고 있는 많은 기업에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 자동차 부품제조사 완샹그룹(萬向集團)은 경영권 승계를 성공적으로 마친 민간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완샹그룹의 창업주 루관추(魯冠球)는 1967년 6명의 농민과 함께 농기계 공장을 설립해 회사를 키웠다. 완샹그룹은 중국 최초로 미국 GM자동차 부품 생산업체 타이틀을 거머쥐며 명실상부한 중국의 대표 자동차 부품사로 성장했다. 현재 완샹그룹은 미국의 3대 자동차 업체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그의 아들 루웨이딩(魯偉鼎)은 1994년 23살의 어린나이에 완샹그룹의 경영권을 물려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학 MBA 출신인 루웨이딩은 총재 취임 후 사업 분야를 금융, 친환경에너지 등으로 확대하며 사세를 확장했다.
중국의 자동차 유리 제조 기업 푸야오그룹(福耀集團)은 다소 독특한 경영권 승계 과정을 보이고 있다. 푸야오그룹은 세계 2대 자동차 유리 공급업체로 명성을 얻고 있다. 현재 제너럴모터스·포드·혼다·토요타· 볼보·닛산·현대 등 세계적 자동차 제조사에 자동차용 유리를 공급하고 있고, 올해 3월에는 홍콩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푸야오그룹 경영권 승계는 창업주 차오더왕(曺德旺)의 큰 아들 차오후이(曺暉)가 2006년 9월 푸야오그룹의 대표에 취임하면서 본격화하는 듯했다. 당초 차오더왕은 이사장직을 유지하며 아들의 경영권 수업을 진두지휘 했다.
하지만 큰 아들 차오후이 체제로 굳어지는 듯 했던 푸야오그룹의 승계구도는 2015년 7월. 차오후이가 취임 9년 만에 대표직을 그만두면서 큰 변동이 발생했다. 차오더왕 창업주가 물러나고 차오후이가 기업을 장악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차오후이가 그룹을 떠나 독립회사를 차린 것이다.
차오더왕 이사장은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이 평소 자동차 유리 시장에 전자상거래 도입, 인터넷 접목 등 새로운 사업 방식에 관심이 많았다. 스스로 독립해 시장 개척에 나서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푸야오그룹은 향후 차오더후이가 설립한 회사에 투자하고, 적정한 시점이 되면 양사를 합병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 철없는 상속자때문에 몰락한 중국 기업
순조로운 경영권 승계로 사세가 확장되고 사업다각화에 성공하는 기업도 있지만, 2세대 경영체제에서 창업주의 공든탑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사례도 있다.
산시성(山西省) 최대 민영 철강 기업인 하이신철강(海鑫鋼鐵)이 대표적인 사례. 창업주 리하이창(李海倉)이 2003년 피살되면서 당시 외국 유학 중이었던 아들 리자오후이(李兆會)가 귀국해 회사를 책임지게 되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당시 22살이던 리자오후이는 부친 회사의 주력 사업이었던 철강사업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부친이 일궈낸 사업을 유지하기 보다는 막대한 자산을 가지고 주식 투기에 열을 올렸다. 리자오후이는 여러 상장사 지분에 투자해 수익을 내면 곧바로 매각해버리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큰 돈을 벌었고, 한때 산시성 최연소 부호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기업경영의 성과보다 스타급 연예인과 두 번의 결혼으로 오히려 유명세를 떨쳤다.
리자오후이는 주식 투기로 자산을 늘려갔지만 하이신철강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창업주인 라하이창 재임시절 하이신철강은 총자산 40억 3600만 위안, 순이익 4억 1300만 위안의 선두 철강기업이었지만, 2014년 11월 부도를 선언했다. 2015년 5월 말 1000여 명이 모인 채권단 회의에서 하이신철강의 '민낯'이 드러났다. 900여 개가 넘는 채권자가 청구한 채권규모는 234억 위안에 달했고, 이 중 확인된 채무는 143억 위안이었다. 반면 하이신철강 수중의 자산은 69억 위안에 불과해 사실상 파산을 맞았다.
중국의 유명 제약 상장사 하이샹약업(海翔藥業)은 아들의 도박으로 회사 경영권을 투자자에 뺏긴 비운의 기업이다. 창업주 뤄방펑(羅邦鵬)이 1966년 회사를 설립한 후 40년 넘게 일궈온 하이샹약업이 아들의 손에서 무너지는 데는 4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화학합성의약품 원료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시작한 하이샹약업은 2006년 12월 선전 중소판에 상장하고, 제품의 70% 이상을 수출하는 저장성(浙江省) 굴지의 중견 기업이었다. 독일의 바스프(BASF)와 벨기에의 얀센(JANSSEN) 등 굴지의 글로벌 제약사에 약품을 공급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기술력을 인정 받았다.
창업주 뤄방펑은 2007년부터 경영권을 아들 뤄위훙(羅煜竑)에 이양하기 시작했고, 2009년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뤄위훙이 회사 경영을 전담한 후 부터 사세는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2012년 의약품 원재료 수출 부진으로 매출이 급감한데다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경영권이 2세대 아들에게 승계된지 4년 만에 회사가 사상 최악의 경영 위기를 맞게 된 것. 2013년 하이샹약업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60%가 줄었고, 8년 래 처음으로 손실을 기록했다. 결국 뤄위훙은 2013년 11월 이사장직에서 물러났지만 최대 주주 자격은 유지했다.
2015년 4월 30일 뤄위훙은 회사 전체 지분의 18.31%에 해당하는 5940만 주를 둥강궁마오그룹(東港工貿集團)의 왕윈푸(王雲富)에게 매각했다. 이로써 하이신약업의 최대 주주는 왕윈푸로 바뀌었고, 창업주 뤄방펑이 일생을 바쳐 키운 회사는 뤄씨 일가를 떠나 전략적 투자자에게 넘어갔다. 경영권을 아들에게 넘긴지 6년 만이다.
항간에는 뤄위훙이 부친이 물려준 회사의 소유권을 넘기면서까지 지분을 매각한 것은 막대한 도박빚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하이신약업의 새로운 주인이 된 왕윈푸가 뤄위훙에게 도박 자금을 대준 장본인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 2세대 경영권 승계 임박 대기업, 차세대 경영인에 '스포트라이트'
중국 굴지의 민영 그룹인 완다그룹(萬達集團), 신시왕(新希望), 와하하(哇哈哈) 등은 아직 본격적인 2세대 경영권 승계를 진행하고 있지 않지만, 후계자가 사실상 확정된 상태다. 재계와 사회 전반의 관심은 당연히 후계자가 될 창업주의 자녀에게 쏠린다.
중국 대기업 창업자들 중에는 외동자녀를 둔 경우가 많아 형제자매간 경영권 다툼이 잦은 우리나라 기업과 달리 경영권 승계 구도는 총수 퇴임 전부터 정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완다그룹 창업주 왕젠린(王健林 62세)의 외아들 왕쓰충(王思聰 28세) 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중국 재계의 '황태자'다. 부친인 왕젠린이 최근 마윈 알리바바 그룹 회장을 밀어내고 중국 최고의 부호 자리를 재탈환한 후 명실상부한 중국 최고의 '푸얼다이(富二代, 재벌 2세)'로 자리잡았다.
왕쓰충은 대중의 시선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다른 재벌 2세와 달리 활발한 SNS 활동과 돌출행동으로 언론에 자주 거론되고 있다. 특히 여자 연예인들과의 빈번한 스캔들, 재력 과시 등으로 구설수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27세 생일에 우리나라 유명 걸그룹 티아라를 초청해 초호화 생일파티를 열었다는 소식은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철없는 재벌2세이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철부지 이미지가 강하지만 중국 재계 전문가들은 왕쓰충의 능력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냉철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유창한 영어로 중국 게임산업에 대한 예리한 분석을 하는 모습은 차세대 경영인으로서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부친인 왕젠린의 독특한 경영 수업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왕젠린은 왕쓰충을 완다그룹에 들이는 대신 5억 위안을 출자해 투자전문사인 '베이징푸쓰투자'설립해 아들이 운영하도록 했다. 스스로 투자 안목과 경험을 쌓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중국 최대 음료기업 와하하(娃哈哈)그룹 창업주 쭝칭허우(宗慶後 72세)의 외동딸 쭝푸리(宗馥莉 34세)와 양돈기업 신스제(新世界)그룹 회장의 외동딸 류창(劉暢 36세)도 중국 재계에서 줄곧 주목을 받는 차세대 경영인이다.
와하하의 창업자의 딸 쭝푸리는 지난 2004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와하하에 취업해 업무경험을 쌓고 있다. 쭝푸리는 기업 계승과 경영이 본인의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밝힐 정도로 경영수업에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신스시의 류창도 미국 유학을 바치고 베이징대에서 국제 MBA를 이수한 후 부친의 회사에 입사해 업무를 익히고 있다.
[뉴스핌 Newspim] 강소영 기자 (js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