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생산 재고증가, 기업경영난에 지방경제까지 휘청
[뉴스핌=이승환 기자] 중국 증시가 거시경제 불확실성으로 신음하는 사이에 실물 경제 부문 주요 산업도 극심한 불황에 빠져들고 있다. 대표적 성장 지주산업으로 꼽히는 자동차와 철강업의 생산 판매 현장 곳곳에 '비상등'이 켜지면서 중국 제조가 휘청거리고 있다. 임대료와 인건비 환경규제로 생산단가가 높아지고 시장 경쟁이 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에는 중국의 방직공장들이 치솟는 코스트를 피해 미국의 면화 생산기지로 공장을 옮기고 있다는 뉴스가 서방언론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주요 제조 산업 불황에는 코스트요인 외에도 수출 부진과 함께 내수 침체라는 요인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걱정을 더해주고 있다. 제조업 경기동향을 말해주는 구매관리자지수(PMI)도 전혀 개선될 조짐없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중국 성장의 중심축의 역할을 해온 산업들이 현재 어떤 환경변화와 영업난을 겪고 있는지 자동차 철강 등 주요 산업별로 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부동산 시장과 함께 중국의 고속성장을 이끌어 온 자동차 시장이 침체의 늪에 빠지면서 실물 경제 곳곳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산업계 전반은 물론 지역 경제에도 큰 충격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자동차 경영난이 도시 경제를 부도로 이끈 '중국판 디트로이트'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中國汽車工業協會)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6월 중국 자동차 생산량과 소비량은 전월 대비, 전년 동기 대비 모두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1~6월 상반기 중국 내 자동차 생산량 및 판매량은 전년 동기대비 각각 7%포인트 가량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에서의 자동차 판매량은 2013년 2월 이래 줄곧 성장세를 이어왔으며 올 3월까지만 하더라도 판매량이 9.4% 늘기도 했다. 이처럼 자동차 판매량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은 2013년 2월 이후 2년4개월 만에 처음이다.
중국경영망(中國經營網)은 최근 향후 수년 내 중국 자동차 시장 성장률이 3%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고 심지어 ‘제로 성장’이나 마이너스 성장시대에 돌입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21세기경제보도(21世紀經濟報道)는 3일 업계 관계자를 인용 “시장 판매량 감소로 자동차 기업이 받는 타격도 크지만, 자동차 산업과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는 산업 생태계와 지역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무너지는 자동차 산업, 내려앉는 GDP
중국 난샤(南沙) 지방정부의 한 관계자는"하이랜더의 판매량이 부진하면 난샤정부는 해당 기업보다 더 조급해 진다”고 밝혔다. 그만큼 난샤에 위치한 광치(廣汽)-혼다 공장의 주력 상품인 하이랜더 SUV차량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는 뜻이다.
상하이시는 중국내 자동차 제조 규모가 가장 큰 도시다. 2013년 초 상하이의 자동차 생산규모는 5000억위안을 돌파, 전체 GDP 2조1602억위안의 23%를 차지했다. 광저우(廣州)시의 GDP에서 자동차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25%에 달한다. 특히 이치(第一汽車)그룹이 자리잡고 있는 창춘(長春)의 경우, 지역내 전체 공업생산량의 60%를 자동차 산업이 점하고 있다.
지난 10년 자동차 시장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중국 전국 승용차 생산량은 매년 19.39%씩 성장했다. 이 같은 자동차 제조업의 발전은 중국 지역경제의 GDP성장을 견인하는 원동력으로 자리잡아왔다.
그러나 올 상반기 들어 자동차시장의 하락세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중국의 자동차 시장이 전년동기대비 1.4% 성장에 그친 데 이어, 자동차 제조 상위 10기업 모두 판매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자동차 협회는 2015년 성장 예상치를 8%에서 3%로 하향 조정했다.
자동차 시장의 침체가 뚜렷해지면서 자동차는 더 이상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원동력이 아닌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전락했다.
펑펑(彭澎) 광저우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자동차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일부 도시에서 자동차 생산량 증가폭이 20%에서 1%대로 급격하게 축소되면, GDP 성장율이 최대 1~2%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광저우 현지 매체가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광저우의 자동차 생산량이 전년동기대비 4.5% 하락할때 전체 공업 성장률의 1%포인트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자동차 호황기였던 지난 2013년 상반기 상하이의 2차산업 성장률은 6.1% 기록했었다. 그러나 상하이-폭스바겐, 상하이-GM 등 자동차 기업이 크게 부진한 올 상반기 2차산업 성장률은 1.9%까지 곤두박질 쳤다.
시야를 전국으로 넓혀봐도 자동차 시장 침체가 중국 경제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중국 공업 및 정보화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0년 중국의 자동차 산업 총 생산은 4조3400만위안을 기록해, 전체 경제생산 규모의 6.13%를 차지했다. 지난 4년 자동차산업의 성장률은 GDP성장률을 크게 상회했다.
21세기경제보도는 업계의 한 관계자를 인용해 “지금껏 중국의 GDP 성장을 견인해 온 것은 부동산과 자동차 산업”이라며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진 후 자동차가 성장률을 지지하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고 진단했다.
<사진=바이두(百度)> |
◆재고 증가, 자동차 산업 생태계 위협
중국 선룽(神龍)자동자는 지난달 28일부터 직원의 가족 혹은 친구가 자동차를 구입할 때 특별 할인을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회사 측은 이날 “특별한 가격 혜택을 누리는 동시에 회사에도 큰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21세기경제보도는 “선룽 자동차가 판매부진과 재고를 털어내기 위해 직원들에게까지 판매에 나서고 있다”며“중국 내 자동차 기업 대부분이 시장침체에 따른 재고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자동차유통협회(中國汽車流通協會)가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자동차 재고 경보 지수는 9개월 연속 기준선 50%를 상회했다. 지난 6월에는 64.6%를 기록, 전달대비 7.3%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고 경보 지수 50%를 기준으로 이보다 높으면 공급이 수요를 웃돌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해 중국자동차제조협회(CAAM)가 올해 자동차 수요 성장률을 기존 7% 수준에서 3%까지 하향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치-폭스바겐 등 일부 자동차 기업이 시설보수 등을 이유로 1~2주 가량 라인가동을 중단하며 재고관리에 나섰던 것으로 전해졌다.
광저우 자동차 대리점의 한 관계자는 “시장 침체로 판매 실적이 예상에 못 미치게 되면 대량의 자금이 재고에 묶이게 된다”며 “대금 지불과 은행 이자 압박이라는 이중고에 빠져 영업상태가 크게 악화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자동차시장 침체로 인한 제조업체들의 부진이 부품시장 등 중국 자동차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 특히 중·저품질의 제품이 주를 이루는 중국 부품기업들은 외국 자본의 기술력에 눌려 재고 증가에 의한 충격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자동차 부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고 규모가 8억위안에 달하는 등 10년래 가장 빠르게 재고가 늘어나고 있다”며 “20%에 해당하는 외국자본이 전체 부품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어 어려움이 더 크다”고 토로했다.
중국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시장이 자체적인 조정 주기에 진입했다”며 “자동차 구입 자금이 증시로 유입되고, 1~2선 도시의 자동차 구매 제한 정책이 수요감소로 이어지는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자동차 산업에 '올인'한 지방정부
중국 자동차시장의 하락세가 뚜렷해지면서 중국판 디트로이트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21세기경제보도에 따르면 지난 10년 중국의 도시들은 성장정책의 일환으로 자동차 산업을 앞다퉈 유치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한 곳의 완성차 제조 기업이 들어서면 인근 지역에 최대 수백개의 관련 업체와 수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경제 파급효과가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라는 것.
특히 광저우, 우한(武漢), 창춘 등 도시가 동방의 디트로이트를 꿈꾸며 자동차 산업 확대에 주력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4년 동펑(東風)-르노를 유치한 우한은 매년 23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 지역 전체 자동차 공업 생산규모가 7000억 위안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향후 충칭과 창춘의 자동차 생산규모도 각각 6000억위안, 5000억위안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자동차 시장의 과잉공급 현상이 뚜렸해지면서 지역경제의 지나친 자동차 산업 편중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지난 2012년 일찍이 중국의 자동차 업계 생산과잉 비율이 28.5%를 넘어섰지만 지방정부는 여전히 대규모 자동차 산업 관련 계획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자동차 판매량은 2349만1900대를 기록했다. 동기대비 증가율은 6.86%로, 이는 협회의 전망치인 8-10%에 못 미치는 수치다.
자동차 판매량 증가율이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인 7%를 유지한다고 가정할 경우, 올해 판매량은 2500만대 수준이 되겠지만 현재 상하이자동차와 동풍자동차•이치자동차•장안(長安)자동차•베이징자동차•장성(長城)자동차 등 일부 자동차 제조업체가 발표한 생산량만 이미 3000만 대를 넘어섰다.
시장조사전문기관인 HIS는 또한 "현재 중국 자동차 업계의 생산설비 이용률은 대략 70% 수준이지만 올해는 60%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며 "이에 따라 생산업체의 경영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자동차 업계의 한 전문가는 “과거 자동차 산업이 세수 증가와 일자리 확대를 가져와 경제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지금은 과잉생산 문제로 인해 지방정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금융위기 직후 파산한 미국의 자동차도시 디트로이트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이승환 기자 (lsh8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