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환의 문화의 향기<3> 신과 인간이 공존한 문화, 그리스·로마 문화
그리스· 로마문명은 미케네문명의 몰락 이후 기원전 8세기 중엽부터 발달하기 시작해 AD 4~5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던 고전문명을 뜻한다. 고대 그리스인은 기원전 2세기경에 그리스에서 고도의 문명을 이룩했으며, 유럽문화의 원류가 되었다. 이 그리스문명은 후에 알렉산더에 의해 오리엔트문명에 융합되어 헬레니즘 문화로서 로마제국을 비롯하여 각지에 전파되었다.
그리스의 폐쇄적인 자연조건은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필두로 도시국가인 '폴리스(polis)'를 형성시켰다. 이 폴리스에서는 상공업이 발달하여 평민의 권력이 크게 신장되면서 민주주의가 발달하였다. 이는 다른 고대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리스만의 특색이다. 그리고 민주정치는 물론 철학, 문학, 연극, 미술 분야도 발전을 거듭했는데,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뛰어난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건축술은 신전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발전했는데,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3대 건축양식이 발달했다. 이러한 건축술은 로마에 전수되었고, 로마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 원형 돔과 아치형구조의 건축물도 만들어내게 되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문명은 다양한 방면에 걸쳐 발전됨으로서 이때 와서야 비로소 고대문명과는 다른 문화의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했다.
그리스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토론문화이다. 아고라 광장에서는 끊임없이 토론이 이루어졌다. 결국 이는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토대가 되었다. 폴리스의 중심이 되는 도시는 대체로 해안으로부터 멀지 않은 평지에 위치했으며, 도시는 폴리스의 정치, 군사 및 종교의 중심이었다. 도시 안에는 그 도시의 수호신을 모신 신전이 세워진 아크로폴리스(Acropolis)가 있었으며, 그 주변에는 아고라(Agora)라는 광장이 있다. 이곳은 시장인 동시에 정치를 포함한 모든 공공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사교의 장이기도 하였다.
그리스문화의 또 다른 큰 특징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철학이 꽃피었다는 점이다. 당시 철학의 탐구대상은 처음에는 세계와 만물의 본질에 대한 것이었으나 점차 그 대상이 인간과 현실의 삶으로 조금씩 옮겨졌다. 그리고 인간 삶의 본질과 무엇이 행복인지에 대해서 스토아(Stoa)학파와 에피쿠로스(Epicurus)학파간의 불꽃 튀는 논쟁이 있었다.
스토아학파는 금욕주의 학파로 그들은 자연의 법칙, 신의 법칙을 따르는 삶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상적인 삶의 상태로 ‘아파테이아(apatheia)’를 주장했는데, 아파테이아란 모든 감정을 억제하여 어떤 것에 의해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의 상태를 뜻한다. 이 스토아학파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을 중시하는 전통을 계승했고, 로마시대에는 세네카,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에 의해 더욱 발전하게 된다.
반면, 에피쿠로스학파는 감각적 경험과 쾌락을 중시하였다. 그리고 이상적인 삶의 상태로 ‘아타락시아(ataraxia)’, 즉 평정심(平靜心)을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인간이란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다음은 당시 세계를 정복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과 세상을 미천하게 살아가던 철학자 디오게네스간의 일화이다. 알렉산더가 세상을 정복한 뒤 소문으로만 듣던 현자 디오게네스를 찾아갔다. 그 때 디오게네스는 자신의 오두막에서 햇볕을 쬐며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알렉산더가 말했다. “난 천하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다. 디오게네스여!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하라, 들어 줄 테니까!”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답했다. “아 그러신가요! 그러면 저 햇빛을 방해하지 않도록 비켜서 주십시오...”
알렉산더는 제국의 대왕답게 이렇게 응수했다. “만약 내가 정복자가 되지 않았다면 디오게네스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이후 두 사람은 같은 날 죽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저승으로 가던 중에 강가에서 마주쳤다. 알렉산더 대왕이 먼저 이렇게 인사했다. “아 당신, 다시 만났군! 정복자인 나와 노예인 당신 말이야!” 디오게네스가 대답했다. “아, 그렇군요. 다시 만났군요! 정복자 디오게네스와 노예 알렉산더가 말입니다. 당신은 정복을 향한 욕망의 노예 알렉산더이고, 난 속세의 모든 열정과 욕망을 정복한 정복자죠...”
영원할 것만 같던 그리스문화의 황금시대도 기원전 431년,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계기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후에도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페르시아와 인도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에 그리스의 언어와 문화를 전파하면서, 300년 동안의 헬레니즘 문화시대를 이어 가게 된다.
그런데 헬레니즘 문화는 동쪽으로만 간 것이 아니었다. 기원전 2세기에 로마가 헬레니즘 세계를 정복하기 시작했을 때, 그리스의 문화유산은 서쪽인 로마로 전파되어 로마인들의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문화와 전통을 잘 보전하고 또 계승해 나갔다.
이처럼 로마인들도 그리스인들이 물려준 인간 중심주의, 현실주의적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리스의 신화와 신에 대한 관념도 받아들였다. 다시 말해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신들의 존재와 인간세계에 대한 그들의 관여를 믿었지만, 신들의 본성이나 모습은 인간들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했던 것이다.
이철환 하나금융연구소 초빙연구위원·단국대 경제과 겸임교수 ('아름다운 중년, 중년예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