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강소영 기자] "화웨이를 가족에게 물려주지 않겠다".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華爲) 총재가 16일 중국 언론과 처음 가진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그는 기업 승계에 관한 질문에 "경영권을 이어받을 후계자는 너무나 많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 가족은 영원히 화웨이의 후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처럼 대기업의 '세습 경영'이 일반화된 중국에서 런 총재의 이 같은 발언은 또 다시 중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런정페이는 줄곧 기업의 가족 경영에 대해 반대의사를 밝혀 왔고, 화웨이에 최고경영자 순환 보직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의사결정권이 있는 임원이 일정 기간 마다 돌아가며 CEO를 맡는 제도로, 일인 경영 독재로 인한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한 시도다.
런 회장은 “(가족을 후계자에서 배제하는 것은) 회사 안팎의 각종 무성한 추측과 이로 인한 회사의 혼란을 막기 위함이고, 이러한 생각은 이미 공식 문서로 밝힌 바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런정페이의 슬하에는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멍완저우(孟晩舟)와 아들 런핑(任平)이 있다. 멍완저우는 현재 화웨이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고 있으며, 런핑(任平)은 화웨이 자회사 후이퉁(慧通)을 책임지고 있다.
런정페이 회장은 그간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며 '신비의 경영인'으로 불렸지만, 이날 인터뷰에서는 기자들의 질문에 거침없이 답하며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런정페이가 프랑스 등 일부 외국 매체의 인터뷰에는 응했지만, 중국 언론과의 기자회견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기업으로써 세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화웨이의 대표를 취재한다는 사실에 중국 기자들은 "베일에 싸인 런 총재를 드디어 만날 수 있게 됐다"고 흥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런 총재는 "베일 뒤의 나는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보통 사람일 뿐이다"라는 농담으로 자신에 대한 지나친 신비주의적 해석을 경계했다.
런 총재가 언론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흔하지 않지만, 그의 독특한 '경영 철학'은 이미 여러 차례 세상에 소개된 바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비상장 원칙이다. 런 회장은 이날 인터뷰에서도 이런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는 "(상장을 통해) 대규모 자본이 회사로 유입되고, 회사 조직이 다원화 되면 화웨이가 20여 년에 걸쳐 구축해온 관리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 상장을 안해도 화웨이는 매년 80억~100억 달러를 연구개발비(R&D)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화웨이는 현재 미국·독일·스웨덴·러시아·인도·중국 등 여러 국가에 16개의 R&D센터를 두고 있으며. 매년 매출의 10%를 넘는 금액을 R&D에 투입하고 있다.
런정페이 화웨이 총재 |
창립자이자 사실상 기업의 주인인 회사 대표의 보유 지분이 이토록 낮다는 것은 다른 기업에선 보기 힘든 구조다.
낮은 지분으로 어떻게 회사를 지배하느냐는 질문에 런정페이 총재는 "나는 지분을 가지고 회사를 지배하지 않는다. 나 역시 회사 내부에서 종종 반대에 부딪히곤 한다. 의견이 맞지 않으면 내 생각을 고집하거나 표결에 부치지 않고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고 답했다.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 중시, 직원에게 지분 배분, 세습 경영 반대 등 그의 경영 철학을 살펴보면 런정페이 총재가 해외 유학파 출신 혹은 선진국에서 성장한 자본가 출신일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러나 런정페이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몸소 체험하고, 극심한 가난을 겪으며 성장한 순수 토종 지식인이다.
1944년 구이저우(貴州)성의 벽지에서 태어난 런정페이는 6남매와 함께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시절 런정페이는 배가 고파서 쌀겨로 끼니를 때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배를 곯아도 자식들에게 공부를 시키려 노력했고, 런정페이를 충칭대학 공학과에 입학시킬 수 있었다.
대학 졸업을 1년 앞둔 1966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주도한 극좌 사회운동이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런정페이의 시련은 이어졌다. 그의 부친은 외양간에 갇히고, 공개비판을 당하는 등 수난을 당하면서도 런정페이에게 공부에 매진할 것을 당부했다. 부친의 말씀에 따라 어수선한 환경 속에서도 런정페이는 자습으로 컴퓨터, 자동제어 등 선진 기술을 습득했다.
이때 쌓은 지식은 훗날 런정페이 총재가 화웨이를 태동시키는 원동력이 됐고, 당시의 고생은 그에게 강인한 의지를 심어줬다. 런정페이는 "화웨이의 가장 큰 사명은 '살아 남는 것'이다. 하이테크 분야에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엄청난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난과 척박한 생활 속에서 런정페이 총재가 '살아남기 위해' 세웠던 화웨이는 설립 20여 년만에 직원 수 16만 명, 매출 2202억 위안(약 36조 700억 원, 2013년 기준)의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화웨이는 구글을 제치고 중국 청년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회사로 선정됐다.
[뉴스핌 Newspim] 강소영 기자 (js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