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유신모 기자가 20일 정동영 장관의 북핵사 설명을 반박했다
- 오바마 시기 대화 시도는 계속됐고 북한이 협상을 깼다고 했다
- 선비핵화·9·19 관련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오바마의 부단한 대북 대화 시도와 北 거부 은폐
선비핵화·'대북 중대제안' 주장도 사실과 달라
이념 정파성 버리고 북핵 역사·현실 직시해야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과거 북핵 협상을 자주 거론한다. 1990년대 빌 클린턴 행정부의 북·미 협상이나 2000년대 북핵 6자회담 등을 예로 들면서 해법을 제시하는 식이다.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변해 과거 사례는 지금 문제 해결에 참고가 되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과거 북핵 협상의 사실관계를 다르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정 장관은 지난 17일 한 학술회의에서 "(2005년) 9·19 공동성명은 (2007년) 2·13 합의로 불씨를 이어 나갔지만 이명박 정부와 (버락) 오바마 미 정부의 전략적 인내라는 무시·방치 전략이 맞물려 좌절됐다"고 주장했다. 정 장관은 오바마 집권기인 2009년~ 2016년을 "북핵 역사에서 버린 시간" "최악의 시기"라고 주장했다.

오바마 시기에 북핵 상황이 악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원인은 오바마가 아닌 북한에 있다. 역대 미 행정부 중 오바마 행정부 만큼 적극적으로 많은 대화 시도를 했던 정부는 없었다. 오바마는 국내 비난과 정치적 손해를 무릅쓰고 한국이 미안할 정도로 북한과 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오바마는 2009년 1월 취임과 함께 북한에 대화를 제의했다. 그러나 북한은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은 4월 5일 오바마가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설파하던 날을 골라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고 한 달 뒤 2차 핵실험을 했다. 오바마의 대화 제의에 원투 펀치를 먹인 셈이다.
오바마는 북한에 수모를 당했음에도 그해 12월 스티븐 보즈워스 특사를 평양에 보내 6자회담 복귀를 설득했다. 그에 대한 북한의 대답은 천안함 사건이었다. 11월엔 미국 과학자들을 불러놓고 원심분리기를 공개하고 연평도 포격 사건을 일으켰다.
그래도 오바마는 대화를 시도했다. 한반도 전쟁 분위기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극도로 악화된 미국 내 대북여론을 감안해 이번에는 비공개로 접촉을 시도했다. 결국 오바마는 미 의회와 이명박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2011년 8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을 뉴욕으로 불러 북·미 고위급회담을 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두 번의 추가 회담을 거쳐 2012년 2월 '2·29 합의'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북한의 권력을 이어받은 김정은은 그해 4월 2·29 합의를 깨고 장거리 발사체를 쏘아 올렸다. 합의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약속을 깨버린 북한에 대한 미국의 분노는 한국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컸다. 당시 협상 대표였던 글린 데이비스는 언론을 피하기 위해 모자를 쓰고 국무부 뒷문으로 출퇴근을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한 미국의 대북 대화 거부감은 지금까지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럼에도 오바마는 대화 의지를 꺾지 않았다. 이번엔 백악관팀을 극비 방북시켜 합의 복원을 시도했다. 이 일이 공개돼 오바마는 정치적으로 큰 곤경을 겪었다. 오바마 2기도 다르지 않았다. 오바마 재선 성공 직후 북한은 장거리미사일을 쐈고 2기 취임식 직후에는 3차 핵실험을 했다. 결국 오바마는 북한 대신 이란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해 이란과 핵합의(JCPOA)를 만들어 냈다.
오바마가 대화를 위해 무엇을 더 했어야 했는지 정 장관에게 묻고 싶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는 방치와 무시가 아니라 핵실험·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폭주하는 북한을 인내하고 설득하면서 지속적으로 대화를 시도한 인고의 시간이었다.
오바마가 북핵을 방치해 위기를 극도로 고조시켰다고 매도하는 것은 관점과 견해의 차이가 아니라 '팩트'를 은폐하는 행위다. 정 장관의 주장은 한사코 대화를 거부하고 핵무장으로 질주한 북한을 옹호하면서 모든 잘못을 오바마에게 돌리는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정 장관의 북핵 역사 왜곡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 장관은 지난 7월 취임 1년 간담회에서 북핵 협상 실패 원인을 '선비핵화' 정책 때문이었다고 지적하고 "이재명 정부가 선비핵화를 폐기하고 선평화론으로 전환했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한·미는 북핵 위기 발발 이후 모든 핵협상에서 대화하기 전에 먼저 핵을 포기해야 한다는 요구를 한 적이 없다. 모든 협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도 핵시설 동결과 중유제공을 교환한 것이었고, 2005년 9.19 공동성명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의 모든 스텝에 상응조치를 제공하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이 적용됐다.
정 장관은 선비핵화 정책의 사례로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을 들고 있지만, 비핵개방 3000은 협상 전략이나 정책이 아니라 '비핵화 이후 북한의 경제 청사진'이다. 허황된 것이긴 하지만 이명박 정부도 '그랜드 바겐'이라는 핵폐기와 보상을 동시에 교환하는 협상 전략이 따로 있었다.
정 장관이 2005년 방북해 200만 kw 대북 송전 등 '중대 제안'으로 북한을 6자회담으로 복귀시키고 9·19 공동선언을 도출하는데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당시 북한은 정 장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화가 재개된 것은 북·미 간 별도의 정치적 다이내믹스가 작용한 결과였다.
북핵 역사 30년 동안 협상을 담당했던 실무자와 현장을 취재하고 기록했던 기자들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다. 더구나 검색 몇 번으로 모든 게 정리되는 AI 시대다. 정 장관은 가능하지도 않은 이같은 역사 왜곡으로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북핵 협상 역사를 이렇게 비틀어 버리면 지금의 북핵 상황을 이해할 수도 없고 앞으로의 정책 방향도 제대로 잡을 수 없다. 정 장관은 부디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이념과 정파성을 버리고 북핵 역사와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opento@newspim.com












